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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동 Jun 23. 2020

노오력에도 방법이 필요하다, 다르게 보는 <아마데우스>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은 자신의 왕성한 투자 비결 중 하나로 이것을 꼽았다.


열등감.


심리학에서는 열등감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수치심을 발판 삼아 건강한 자기 발전을 이뤄내는 열등감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는 열등감이다. 전자의 대표적인 경우가 워렌 버핏이라면, 후자의 대표적인 경우는 영화 <아마데우스>의 살리에리라고 할 수 있다. 살리에리는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에게 뼛속까지 깊은 열등감을 갖고 있다. 그의 열등감은 자기 발전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데 그치고 만다.


(주의: 본 게시물은 영화 <아마데우스>에 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살리에리는 처음에는 그저 자신에게도 모차르트와 갖은 재능을 달라고 신에게 기도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의 열등감은 증오보다는 선망에 가깝다.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살리에리는 자신이 흠모한 여성이 모차르트와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이를 계기로 그의 열등감은 증오로 바뀌게 된다. 더 이상 살리에리의 기도는 자신에게도 모차르트와 같은 재능을 달라는 내용이 아니다. 대신 그는 모차르트가 저주를 받게 해 달라는 기도를 빈다. 신으로 하여금 모차르트가 망하게 해달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는 또다시 한 사건을 겪은 후 더 이상 신을 믿지 않기로 결심한다. 모차르트의 아내가 모차르트를 위해 살리에리 자신에게 몸을 팔러 온 것이다. 충격을 받은 살리에리는 십자가를 불태워버리고 더 이상 신을 믿지 않기로 한다. “당신(신)을 매장시키겠소”라고 말한 살리에리는 이후 모차르트에 대한 저주를 직접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한다.


<아마데우스>


살리에리의 저주는 성공적이었다. 모차르트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늘 가난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다. 급기야는 살리에리의 저주 때문에 모차르트는 환영에 시달리게 되고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살리에리는 그토록 원해왔던 모차르트의 불행을 이뤘음에도 행복해하지 않는다. 모차르트가 죽고 나서도 그는 평생 열등감에 시달린다. 그와 함께 한 사람의 삶을 망쳤다는 죄의식은 평생 동안 그의 인생을 갉아먹는다.


살리에리의 불행은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모차르트를 깎아내리는 데 혈안이 된 데서 시작됐다. 모차르트에 대한 강한 열등감이 살리에리의 한평생을 비극으로 이끈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자존감과 자존심을 다른 것으로 보고 있다. 자존감은 자신이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이다. 자존감이 높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에 대해 만족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자존감은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 이와 달리 자존심은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이다. 자존심이 강하면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에서 만족을 느낀다. 때문에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존심이 센 경우가 많다. 자신이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이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에서 만족감을 얻으려 하거나, 낮은 자존감을 숨기기 위해서 방어기제로서 타인의 시선에 지나치게 반응하는 경우다. 시쳇말로 ‘센 척’이다. 자신의 몸을 명품으로 과하게 꾸미거나 (패션의 목적이 아닌) 문신을 과도하게 새겨 넣는 것도 이러한 심리라고 볼 수 있다. 자존심은 너무 약해서도 안 되지만, 너무 강한 것도 좋지 않다.


자존심이 센 사람은 타인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거나 창피를 당했을 때 불같이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지나치게 의식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살리에리는 자존심이 강한 캐릭터다. 모차르트에 대한 열등감이 그의 자존감을 갉아먹은 결과다. 실제로 그의 삶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그는 음악가로서 능력을 인정받았고, 궁정 음악가로서 높은 사회적 지위도 누렸다. 모차르트도 결코 그를 대놓고 무시한 적이 없었다. 모차르트는 살리에리가 자신보다는 못해도 뛰어난 음악가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정작 살리에리 자신은 스스로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모차르트와 스스로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자신의 자존감을 낮추었기 때문이다.


살리에리는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모차르트를 깎아내리겠다고 결심한다. 그는 자존감은 낮은 반면 자존심은 강하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에 취약하다. 이것은 악순환의 시작이었다. 타인의 평가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심리는(모차르트와 항상 비교되므로) 더 큰 열등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살리에리가 타인의 평가에 대해 모욕감이나 수치심을 크게 느끼는 장면이 자주 묘사된다. 이로 인해 그의 자존감은 더 크게 떨어지게 되었다. 흔히들 남과 비교하는 삶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살리에리는 점점 더 불만족스럽게 느껴지는 자기 자신의 모습에 대한 방어기제로서 모차르트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열등감이 타인에 대한 시기와 질투라는 공격성으로 표출된 것이다. 그와 달리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면 그것을 자신의 발전을 위한 발판으로 삼는다. 앞서 말한 ‘건강한 열등감’이다.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한다고해서 모두 자존심이 센 것은 아니다. 자존심이 강하면 타인의 시선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다른 이유로도 그럴 수 있다. 선천적으로 낯가림이 심한 성격이거나 부모의 엄한 교육 방식하에서 자라난 경우 등 다른 설명 요인이 많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살리에리의 공격성보다 그가 느낀 슬픔과 한에 더 집중했을 것이다. 영화의 전개가 살리에리의 1인칭 시점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살리에리의 관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 흐름은 살리에리에게 감정 이입하게 만든다. 그래서 <아마데우스>는 대표적인 ‘노력형 천재의 비극’으로 꼽힌다. 살리에리의 공격성은 점점 더 강해져 모차르트를 죽음에 이르게 하지만, 관객들은 그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신부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영화적 장치는 그의 비극에 함께 공감하여 슬퍼하도록 유도한다.


<아마데우스>


하지만 조금만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이는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임을 수 있다. “누군가에 대한 강한 열등감이 한평생을 비극으로 만들었다.” 바꿔 말하면 이렇다. “만년 전교 2등만 하던 학생이 전교 1등만 하는 학생을 질투하여 결국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죄의식으로 한평생을 고통을 받으며 살아간다.”  


현실에서는 '살리에리는 노력형 천재이고, 모차르트는 타고난 천재였다'의 대결구도는 잘못됐다. '노력형 천재는 타고난 천재를 따라가지 못하고 좌절을 느낀다'는 설정도 맞지 않다.


“손에 꼽을 정도의 소수의 걸작을 작곡한 모차르트는 35세에 세상을 떠나기 전가지 600여 곡을 작곡했고, 베토벤은 평생 650곡, 바흐는 1000곡 이상을 작곡했다.”


창의성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를 한 애덤 그런트는 저서 '오리지널스'에서 이과 같이 밝혔다. 애덤 그랜트가 <아마데우스>를 보았다면, 아마 살리에리에 대해 혹평을 했을 것이다. 그는 창의성에도 노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분석해 책으로 담아냈다. 그는 창의적인 천재들의 삶을 분석해 다음과 같은 방법을 제시했다.



①창의성의 가장 큰 특성은 현상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하겠다는 결심이다.


“독창성이란, 특정한 분야 내에서 비교적 독특한 아이디어를 도입하고 발전시키는 능력, 또는 그런 아이디어를 개선할 수 있는 잠재력을 말한다. 창의성의 가장 큰 특성은 현상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하겠다는 결심이다.… 출발점은 호기심이다. 호기심은 왜 애초에 현재 상태가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의문을 품는 행위이다. 우리는 ‘기시감’의 정반대 현상인 ‘미시감’을 경험할 때 현재 상태에 의문을 품게 된다. 기시감은 우리가 새로운 것을 접했을 때 전에 본 적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현상을 말한다. 미시감은 그 반대다. 늘 봐온 익숙한 것이지만, 그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써 기존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함을 뜻한다.”


애덤 그랜트는 창의성의 출발은 ‘다르게 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겉으로 보기엔 당연해 보이는 말이지만, 영화 속에서 살리에리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항상 해오던 틀 내에서 작곡하는 것을 고수했다. 궁정 음악가답게 항상 황제가 좋아할 만한, 혹은 궁정에서 정해진 규율에 딱 맞는 음악만을 만들었다. 모차르트는 이와 다르다. 그는 새로운 형식, 파괴적인 내용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그는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것이라도 굴하지 않고 다르게 보기를 추구했다. 비록 황제가 금지한 것이라도 그는 자신의 새로운 시도를 포기하지 않고, 되레 황제를 설득하려 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살리에리는 기본적인 마음가짐부터 모차르트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데우스>, 황제를 설득하는 장면

  


➁성취 욕구가 하늘을 찌르면 독창성은 밀려난다. 성취에 높은 가치를 부여할수록 실패를 두려워하게 된다.


“강한 성취 욕구는 신동들의 발목을 잡는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들 뒤에는 성취 욕구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성취 욕구가 하늘을 찌르면 독창성은 밀려난다. 성취에 높은 가치를 부여할수록 실패를 두려워하게 된다. 성공하겠다는 욕구가 강하면, 나만의 독특한 무엇을 달성하기보다는 성공이 보장된 길을 택하고 싶어 진다.… 우리는 표면적으로만 독창적인 듯 보이는 길을 택한다. 이를테면 나비넥타이를 매거나, 새빨간 신발을 신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정작 위험을 감수하고 정말로 독창적인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머릿속에는 대단한 생각을 담고 마음속에는 중요한 가치를 간직하고 있어도, (강한 성취 욕구 때문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검열한다.”


애덤 그랜트는 성취물의 결과에 집착하면, 오히려 독창적인 창작물을 만들기가 어려워진다고 지적한다. 결과물에 집착하면 자유로운 사고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살리에리는 자신의 결과물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어떻게 비칠까 지나치게 의식한다. 누군가 칭찬하면 뛸 듯이 기뻐하고, 그렇지 않으면 크게 실망한다. 다른 사람의 반응을 살피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에 매몰돼 압박감을 느끼면 자유로운 사고가 어렵게 된다. 자존심이 센 살리에리의 성격이 창작 활동에도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모차르트에 대한 열등감은 살리에리의 독창성마저도 갉아먹었다.

 

<아마데우스>



③손에 꼽을 정도의 소수의 걸작을 작곡한 모차르트는 35세에 세상을 떠나기 전가지 600여 곡을 작곡했고, 베토벤은 평생 650곡, 바흐는 1000곡 이상을 작곡했다.


“딘 사이먼튼은 평균적으로 볼 때, 창의적인 천재들이 같은 분야의 동료 집단보다 질적으로 우월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단순히 훨씬 많은 양의 아이디어를 낼 뿐이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다보면 독창성을 달성할 확률이 높아진다./ 손에 꼽을 정도의 소수의 걸작을 작곡한 모차르트는 35세에 세상을 떠나기 전가지 600여 곡을 작곡했고, 베토벤은 평생 650곡, 바흐는 1000곡 이상을 작곡했다.… 독창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면, “작업량을 늘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 말이다”라고 라디오 프로그램 ‘디스 아메리칸 라이프’와 팟캐스트 ‘시리얼’ 프로듀서인 아이라 글래스는 말한다./ 업워디는 하나의 기발한 제목을 정하기 위해 적어도 25개의 제목을 생각해내야 한다고 한다. 초기의 아이디어로 되돌아가는 형태를 연구한 자료들을 살펴보면, 독창성이 뛰어난 사람들은 때때로 창의적인 작업 과정의 초반에 참신한 아이디어를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 같은 일반 사람들의 경우에는 초기에 생각해낸 아이디어일수록 이미 존재하는 것과 가장 비슷할 가능성이 높다. 뻔한 아이디어를 배제하고 나서야, 비로소 보다 희소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낼 만큼 사고가 자유로워진다. 업워디의 직업들은 다음과 같이 경험을 전한다. “절박해지면,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24번째 제목이 진짜 형편없어도, 곧이어 생각해낸 25번째 제목이 당신을 전설적인 인물로 만들지 모른다.””


애덤 그랜트는 천재적인 창작자들의 다작(多作)에 주목한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애덤 그랜트는 타고난 천재 모차르트도 엄청나게 많은 작품을 남겼다고 주장한다. 그가 작곡한 수백 개의 곡 중에 우리에게 정말 명작이라고 알려진 작품은 소수라는 것이다. 영화에서도 그가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는 사교계를 즐겼지만, 동시에 작곡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반면 살리에리가 곡을 쓰는 장면은 몇 안 된다. 모차르트는 겉으로 보기에는(살리에리의 시각에는) 타고난 천재였지만, 그 뒤에는 수많은 버려진 곡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살리에리가 노력형 천재라는 말은 잘못됐다. 모차르트의 천재성 뒤에는 살리에리보다 훨씬 더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아마데우스>



④사람들이 독창성의 절정을 맞는 시기와 절정기의 지속 기간은 사고 유형에 따라 결정된다. 창의적인 인물들을 연구한 결과, 혁신에는 서로 크게 다른 두 가지 유형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왜 어떤 사람은 일찍 절정기를 맞고, 어떤 사람은 대기만성일까?/ 갤런슨은 창의적인 인물들을 연구한 결과, 혁신에는 서로 크게 다른 두 가지 유형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개념적 혁신가들은 대단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그 개념을 실행하는 데 착수한다. 실험적 혁신가들은 시행착오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면서 지식을 축적하고 진화한다. 그들은 특정 문제를 다루면서도 처음부터 특정 해결책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실험적 혁신가들은 미리 계획하는 대신 일을 진행시켜가면서 해결책을 찾는다.… 갤런슨에 따르면, 개념적 혁신가들은 단거리 주자인 반면, 실험적 혁신가들은 마라톤 주자이다. 갤런슨이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들을 연구한 결과, 개념적 혁신가들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연구를 평균 43세 전에 한 반면, 실험적 혁신가들은 평균 61세에 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유명 시인들의 작품 가운데 가장 자주 인용된 시들을 분석했더니, 개념적 혁신가들은 최고의 작품을 28세에 지은 반면, 실험적 혁신가들은 39세에 지었다./ 나이가 들고 전문성이 축적되어도 독창성을 유지하려면 실험적 접근 방식을 취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창작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미리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여러 가지 잠정적인 아이디어나 해결책을 실험해보는 일부터 시작하자.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면 결국 참신하고 쓸모 있는 뭔가를 생각해내게 될지 모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실험적 접근 방식으로 덕을 봤다. 그는 마흔여섯 살에 ‘최후의 만찬’을 완성했고 50대 초잠에 ‘모나리자’를 그리기 시작했다. “다빈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나서야 자신이 원하는 것이 뭔지 깨달았고 목표가 분명해졌다”라고 한 학자는 말했다."


애덤 그랜트의 관점에 따르면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와 같은 재능을 원했다면 좀 더 인내심을 가졌어야 했다. 그는 모차르트와 같이 젊은 나이에 독창적인 결과물을 내놓는 개념적 혁신가가 있는 반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이 나이가 지긋하게 든 먼 훗날 창조적인 성과물을 내놓는 실험적 혁신가도 있다고 주장한다. 살리에리는 자신의 인생을 지나치게 빨리 포기했다고 할 수 있다. 살리에리는 오히려 창조적인 성과물을 만들어내는 데 모차르트보다 더 나은 환경을 누리고 있었다. 그는 궁정 음악가로서 안정적인 수입을 얻고 있었고, 작품 활동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도 훨씬 많았다. ‘오리지널스’의 다른 부분에서는 세상을 바꾼 위대한 혁신가들 중 다수가 위험 포트폴리오를 관리하고 있었음을 말한다. 창조적인 혁신을 위해 인생 전부를 걸고 거기에 전념한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면서 창조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새로운 아이디어로 사업을 시작할 때 바로 그것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 생업을 유지하면서 조금씩 사업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살리에리는 실험적 혁신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안정적인 생활을 바탕으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나갔다면 세상을 놀랠 만한 창작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모차르트에 대한 열등감은 이 모든 잠재력을 깡그리 무너뜨리고 말았다.


<아마데우스>, 하인을 사주하여 모차르트에게 저주를 내린다.



영화에서 살리에리는 재능이 부족한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단지 모차르트보다 선천적인 재능이 조금 모자랄 뿐이었다. 시대를 넘나드는 천재와 동시대에 살았다는 것은 인생을 살면서 겪을 수많은 불행 중 그저 하나에 불과하다. 그 한 가지 불행 요소에 자신의 인생을 무너뜨릴 것인가, 혹은 평생 남 탓만 하며 소중한 인생을 허비할 것인가. 살리에리는 그랬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의 분수를 너무 빨리 규정해버렸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할 필요가 있었다.


열등감 자체는 나쁜 게 아니다. 인간이라면 질투의 감정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거기에만 매몰돼 다른 잘난 사람을 욕하며 살기엔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도 짧다. 똑같은 2등에도 급이 있다. 열등감을 공격성으로 발전시켜 남을 깎아내리는 이류 2등과 묵묵하게 자신의 할 일을 하며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일류 2등이다. 후자는 언젠가 1등을 넘어선 결과물을 만들어낼뿐더러, 다른 의미에서도 진정한 1등이라고 할 수 있다. “난 적어도 내 인생에 최선을 다했어.”라는 자부심은 그 어떤 결과물로도 살 수 없을 것이다. 


노력도 올바른 방법만 알고 있다면 언젠가 빛을 바랄 날이 올 것이다. 1만 시간의 법칙으로 유명한 '아웃라이어'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 '그릿'의 저자이자 긍정심리학의 대가인 앤절라 더크워스도 그와 같이 말했다. 이들은 노력에 대한 각자 다른 혜안을 제시하지만, 애덤 그랜트만큼 그 방법에 대해 깊이 통찰한 이는 없을 것이다. 유튜브를 비롯한 SNS의 발달로 전문 창작자와 일반인들의 경계가 허물어져가고 있다. 단순하게 무작정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다. 노오력에도 방법과 요령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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