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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호박 Jul 19. 2021

복도 청소를 하던 날


열여덟의 나는 여름방학이 되어도 학교에 갔다. 학기 중보다 조금 늦게 학교에 갔고, 야간 자율학습을 하지 않는 것 빼고는 똑같은 수업 일정이었다. 칠판 옆 게시판에는 1교시부터 8교시까지 과목들이 빼곡하게 줄을 서 있는 커다란 종이가 붙어 있었다. 4교시가 끝나면 점심을 먹었고, 6교시가 끝나면 청소 시간이었다.


내 기억엔 그때는 교무실 청소가 가장 인기가 많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학생이 왜 선생님의 자리를 청소하고, 컵을 설거지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때는 교무실이 가장 쾌적한 공간이었고 교실보다 깨끗해서 편안하게 청소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청소를 깨끗하게 하는 날이면 선생님께서 간식을 주셨다. 그때는 누구든 다른 사람의 반응을 민감하게 살피던 때니까, 평소 어렵게 생각하던 선생님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대화를 나누는 일도 새롭게 다가왔겠지. 


나는 복도 청소를 하는 것이 좋았다. 내 키만 한 밀대를 들고 복도가 시작하는 곳에서 끝으로 뛰어가는 일. 어쩌면 시작과 끝이 없는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그렇게 달리다 보면 내가 만지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것들이 손에 잡힐 것만 같았다. 복도 구석구석이 밀대의 물자국으로 가득해지면 그 위에 남아 있는 내 발자국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남겨진 발자국이 점점 흐릿해지면서 아주 작은 발자국이 되었다.


어린 나의 발자국이었다.


그 시절 복도는 나에게 아주 크게 느껴진 공간이었다. 초등학생이 된 후 첫겨울방학을 앞두고 나는 전학을 갔다. 자주색 점퍼를 입고 다녔던 12월쯤이었다. 나는 전학을 가면서 길었던 머리카락을 아주 짧게 잘랐다. 그전에도 종종 단발머리를 했기 때문에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었는데, 다 커서 생각해보니 머리카락을 잘라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빠가 내 머리를 손질해주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긴 머리카락을 혼자 감기 어려운 나이였고, 열심히 감아 아빠 앞에 앉아도 아빠의 서툰 손길이 불편했다. 그럴 때면 나는 불편한 티를 힘껏 냈다. 요즘 드라마나 예능을 보면 아빠들도 딸들의 머리카락을 아주 다양하게 잘 묶어 주던데. 그때도 지금처럼 유튜브가 발달했더라면 영상을 보고 아빠가 내 머리카락을 묶어 주었을까? 그건 내 동생도 모를 일이다.


내가 전학을 갔던 반은 1학년 7반이었고, 반에는 총 네 분단이 있었다. 1분단과 3분단은 여자만 앉았고, 2분단과 4분단은 남자만 앉았다. 1학년 7반에는 4분단에만 한 자리가 남아 있었다. 방학을 열흘 정도 앞두었을 때라 전학생 한 명 때문에 자리를 변경하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겨울방학이 끝나면 봄방학, 봄방학이 끝나면 금방 2학년 다른 반으로 흩어질 테니까. 남자아이만 있는 분단이라고 해서 여자 아이를 앉히지 못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교실 청소는 일주일에 한 번씩 분단별로 돌아가면서 했는데, 하필 내가 전학을 갔을 때 4분단 순서였다. 수업이 끝나고 청소 시간이 오면 나는 혼자 복도 청소를 했다. 낯을 많이 가렸던 나를 위한 선생님의 배려였을 것이다. 나는 신발장을 마른걸레로 닦고 1학년 7반 앞의 복도 먼지를 쓸어냈다. 청소를 하는 동안 시간은 더디게 흘렀고 복도는 넓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청소가 끝나고 나면 두 명의 친구와 집으로 같이 갔다.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진 않지만 집이 같은 방향이었고, 아마 담임 선생님이 그들에게 나와 함께 하교를 하라고 지시했던 것 같다. 그렇게 일주일을 어색하게 학교에 다니고, 쭈뼛쭈뼛 청소를 하고, 친구들과 함께 집에 돌아가는 것이 조금은 편해졌을 때쯤 방학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선생님은 방학까지 이틀이 남았으니 4분단 친구들이 방과 후 청소를 이어서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가 빗자루로 복도를 쓸면 선생님은 밀대로 내가 쓸어냈던 곳을 깨끗하게 닦아주었다.


복도 끝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복도 끝을 바라보았다. 복도 끝에는 엄마가 서 있었다. 나는 들고 있던 빗자루를 손에 꽉 쥐고 복도 끝으로 달려갔다. 아주 오랜만에 익숙한 냄새를 맡았다. 그날은 친구들이 아닌 엄마와 함께 집으로 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와 햄버거를 먹었고,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엄마는 햄버거를 먹는 나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고, 아이스크림을 먹는 엄마의 숟가락에는 립스틱이 묻어났다. 그날의 기억은 이것들이 전부다.


종종 길에서 엄마에게 달려가는 아이들을 볼 때면 그때의 나와 같은 마음인지 궁금하다. 너는 왜 엄마를 보고 뛰어가는 거냐고 묻고 싶다. 그리고 여덟 살의 나에게도 물어보고 싶다. 그때 엄마를 향해 달렸던 나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기뻤는지, 슬펐는지, 아니면 그냥 반가운 마음이었는지. 엄마에게 달려가 손을 꼭 잡는 아이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아마 그때 나는 반갑고 기뻤을 거라고. 속이 꽉 찬 마음이었을 거라고. 그 아이는 지금의 나보다 강하고 용감했다. 엄마에게 달려갔던 아이의 발자국은 한동안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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