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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호박 Nov 22. 2021

모두가 안녕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여덟 살 때부터 할머니와 살았던 집은 나란히 붙어 있는 세 채의 주택 중에서도 가운데 자리였다. 오른쪽 집에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살았고, 왼쪽 집에는 딸, 아들이 있는 부부가 넷이서 함께 살았다. 내 방은 왼쪽 집의 딸인 언니가 쓰던 방과 붙어 있었다. 언니가 창문을 열면 아담하고 연한 갈색을 띤 피아노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귀여운 동물 인형이 있었다. 창문을 통해 인형이 보이는 게 부러워 나는 창가에 뿌까 인형을 올려놓았다.


우리 집 뒤에는 반은 주택가, 반은 오래됐지만 꽤 큰 아파트가 있었다. 나는 그 주택가에 사는 아이들과 같은 피아노 학원에 다니며 늘 주택 골목을 차지하고 놀았다. 그 시절의 주종목은 땅따먹기였다. 피아노 연습이 끝나면 주택가 골목으로 가서 억센 돌멩이로 바닥에 땅따먹기 지도를 그렸다. 해가 질 때까지 게임을 하다 보면 골목가 중심 주택에 사는 친구의 할머니가 나와 저녁을 먹자고 말했다. 그러면 우리는 내일 또 만나, 전화해, 라는 말도 없이 "안녕"하고 손을 흔들며 각자의 집으로 갔다. 우리는 어차피 내일 다시 만날 거니까. 새벽에 비가 내리면 땅따먹기 지도는 흐릿해져 있었다.


나는 그 집에 살면서 새 가족을 만나기도 했고 함께했던 가족을 떠나보내기도 했다. 그 집을 떠올릴 때면 마음의 진동이 이상해진다. 꾸물꾸물한 지렁이가 지나가는 것처럼. 스무 살이 되던 해 우리 집에는 하얀색 강아지가 왔다. 아빠는 그 강아지가 토이 푸들이라고 했다. 3kg 정도까지 크는 강아지라고. 그런 강아지가 8kg가 되도록 커질 줄은 아무도 몰랐지. 지금은 지나가는 모든 강아지와 인사를 하지만 사실 나는 강아지를 무서워했다. 정확히 말하면 동물을 무서워했다. TV에서 자연 다큐멘터리를 방영해 줄 때면 자연 속에 사는 동물들의 모습이 무서워 채널을 재빠르게 돌리곤 했다. 그렇게 해도 잠들기 전에 머릿속에서는 TV 속 동물들의 모습이 사납게 그려졌다.


우리 집에 온 강아지의 등을 살살 만졌고, 다음 날에는 머리를 만졌고, 또 강아지가 내 무릎에 올라오는 날에는 눈가에 있는 눈곱을 떼 주었다. 할머니는 강아지가 온 첫날 '개 냄새'가 난다고, 가족 빨래를 하기도 힘든데 강아지 뒷정리는 어떻게 하냐고 걱정했지만, 한 계절이 지나자 낮 시간에는 온종일 강아지가 할머니 방에 있을 만큼 그들은 둘도 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5년이 지나고 할머니가 병실에 계셨을 때는 강아지가 보고 싶다고 했고, 이틀 정도 집에서 시간을 보낸 날에는 할머니가 몸이 안 좋다는 걸 아는 건지 강아지는 그날따라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인천 끝자락에 위치한 집은 타지에 있는 직장에 오가기에 어려운 위치였다. 자연스럽게 나는 그 집에서 나오게 되었다. 집에서 나온 지 일 년이 지나자 아주 작지만 내 모든 것이 담겨 있던 방은 동생 방으로 바뀌었고, 또 동생 방은 컴퓨터방이 되었다. 한 달에 한두 번 집에 갈 때마다 이제는 그곳에 내가 온전히 누울 곳은 없는 것만 같다. 할머니가 좋아하던 하늘색 꽃무늬 이불, 초등학생 때부터 모아 둔 친구들이 써 준 편지들. 그리고 집 곳곳에 배어 있는 강아지 냄새. 집에 들어가면 꼭 확인하게 되는 강아지가 누워있던 방석의 온기. 그런 것들이 내 두 발을 집으로 향하게 한다.


귀여운 인형과 피아노를 가지고 있었던 언니는 변호사가 되어 결혼을 했다. 그리고 종종 창문을 열어두면 언니가 아이들과 함께 부모님을 만나러 오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얼마 전엔 집에 갔더니 왼쪽 집의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이사를 간다고 했다.  집은 다른 사람에게 팔았으며 2 집으로 만든다고 했다. 허전했다. 할머니를 떠나 보내고 한동안  집에서 누군가를 보낼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대문 열쇠가 없으면 왼쪽  초인종을 누르고 담을 넘어 집으로 들어가기도 했는데.  번도 감사하다고 인사하지 못했지만 마지막까지인사하지 못했다. 언젠가 우리도  집을 떠날 날이  것이다. 그때가 되면  집에서 만났던 사람들에게  쿨하게 인사할  있을  같다. 모두가 안녕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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