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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호박 Jul 27. 2019

봉선화 물든 날

나의 눈물은 소금을 닮았고, 색은 더 깊게 물들 것이다.


잊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그때 함께 있던 사람, 주변의 소음, 희미하게 남은 냄새까지 기억하고 싶은 날이 있다. 할머니는 봄이 되면 봉선화를 심었다. 여름에는 봉선화 잎을 절구에 넣고 빻았다. 잎을 빻을 때는 소금을 넣었다. 소금을 넣으면 색이 깊게 물든다고 했다. 할머니는 빻은 잎을 내 작은 손톱에, 당신의 낡은 손톱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천으로 감싸 실로 단단히 고정시켰다. 이 일이 끝나면 우리는 함께 누웠다. 나는 그렇게 하고 잠에 드는 것이 좋았다. 다음 날 눈을 뜨면 실을 풀고 손을 씻었다. 손톱은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붉은색에는 사랑한다는 말이 담겨 있었다.


유난히 춥지 않았던 겨울, 의사는 할머니가 겨울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했다. 암세포가 뇌와 뼈까지 전이된 상태라고 했다. 할머니는 우리에게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날 나는 많이 울었다. 할머니의 팔목과 연결되어있던 링거병에서는 약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할머니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호스피스 병동에 머물렀다. 그때 나는 호스피스의 사전적 의미를 처음 알았다.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와 그의 가족을 사랑으로 돌보는 행위’라고 했다.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는 데는 몇 가지 조건이 있었는데, 그중 한 가지는 언제나 보호자나 간병인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호스피스 병동에 있는 환자들은 늘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 우리 할머니는 간병인과 지내게 되었고, 앞자리에 있는 아줌마는 그녀의 엄마와 함께 있었다. 그 옆에 있는 또 다른 할머니는 간병인과 지냈다. 그들은 그들의 병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음식을 나누어 먹기도 했다. 환자의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환자의 죽음을 기다리는 일만 있었다. 앞자리 아줌마의 엄마는 화분이 죽지 않도록 물을 주고 먼지를 닦았다. 그 옆에 있는 할머니는 매일매일 기도를 했다.


나는 할머니를 만나러 매일 병원에 갔다.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고 며칠 만에 할머니의 표정은 환해졌다. 매주 화요일, 목요일에는 환자의 심리를 치료하는 목적으로 예술 활동이 진행되었다. 하루는 할머니가 서랍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예술 활동에서 만든 배지였다. 배지는 동그란 모양이었고, 그 위에는 압화가 붙어있었다. 나는 배지 위에 눌린 꽃들을 봤다. 압화 밑에는 사랑한다는 말이 쓰여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병실에 있던 다른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며칠 후에는 앞자리에 있던 아줌마가 돌아가셨다. 누군가 돌아가시는 날이면 조용한 병동 한 구석에서 울음소리가 났다. 이런 일들은 호스피스 병동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할머니도 그들과 똑같은 모습을 보였다. 숨 쉬기가 힘들어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간호사는 수면제와 진정제를 습관처럼 투여했다.


그렇게 할머니는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는 상태로 잠만 잤다. 할머니가 병동에 계시는 동안 할머니가 하던 집안일은 대부분 내가 하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족을 위해 밥을 차렸고, 청소와 빨래를 했다. 매일매일 하는 사소한 집안일은 쌓이고 쌓여 몸과 정신을 지치고 힘들게 만들었다. 내가 스스로 해왔다고 생각한 일들은 모두 할머니의 손을 거친 것이었다.


할머니가 떠난 지 열 계절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앞으로는 더욱더 많은 것을 스스로 해내야 한다. 종종 거리에서 봉선화를 보면, 붉은색으로 물든 누군가의 손톱을 보면 할머니가 생각난다. 언젠가 할머니와의 기억이 잊힐 것 같은 봄이면 봉선화를 심을 것이다. 여름이 되면 봉선화 잎을 누를 것이다. 그리고 손톱에 올릴 것이다. 나의 눈물은 소금을 닮았고, 색은 더 깊게 물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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