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면역에 이상이 생겼다
나에게 포도가 찾아온 그 날은 어느 하나 특별할것이 없는 하루였다. 중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남들과 다를바 없이 코로나로 인한 온라인 수업에 지루함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온라인 수업도 매일 지각하는 내가, 등교하면서도 꾸벅 졸던 내가 아침 6시에 눈을 떴다.
평소에는 맡아보지 못했던 새벽의 끝같은 향기가 코를 통해 들어왔고 나는 자연스레 교정기를 빼고선 거실로 향했다. 아니 정확히는 향하고 싶었다. 교정기를 빼려 거울을 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왜 그토록 아침잠이 많던 내가 6시에 일어나야만 했는지,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말이다. 거울로 본 나의 눈은 영화에서나 볼것 같이 새빨개져 있었다. 충혈된 눈으로 인해 시야가 흐렸고 올라간 안압으로 인해 머리에 두통이 심했다. 시야가 흐려지니 중심이 안 잡히고 눈이 굉장히 간지러웠다. 하지만 중학교 1학년인 여자아이가 도대체 무엇을 알 수 있었으랴. 나는 그것이 그저 눈병인 줄로만 알았다. 동네안과에 가기 전까지는.
부모님이 일어나시고 우리는 다함께 병원에 도착했다. 도착하기전까지는 정말 화기애애했다. 나는 눈이 아팠지만 눈이 빨개진 경험이 너무나 신기했고 나의 눈을 보며 '안 씻어서 눈병이 걸렸다'고 놀리는 부모님과의 대화가 즐거웠다. 아버지는 내게 눈병은 잘 씻고 병원에서 준 약만 잘 먹으면 금방 나을거라고 하셨다. 나도 그럴줄 알았다. 그랬다면 좋았겠지만 안과에 간 나는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된다.
"포도막염 같으니 얼른 근처 대학병원에 가보세요"
포도막염?내가 포도막염이라니.
중학교 1학년이었던 나에겐 포도막염이라는 질환 자체가 생소했다. 이름부터가 내가 좋아하는 포도인것이 웃겼고 사람의 눈에 '포도막'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근데 나와 해맑던 나와 달리 부모님의 안색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그때 부모님은 아셨던걸까?나의 이 병이 나의 학생시절을 함께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급한대로 찾아간 세브란스 안과에선 여러가지 검사를 했다. 안압측정, 시력검사 등등 기초적인 것부터 특수한 장비를 쓰기까지. 늦은저녁타임이라 그런지 포도막염을 담당하시는 교수님이 하필이면 자리에 안 계셨고 나의 초진은 치프라고 불리는 의사선생님께 맡겨졌다. 치프선생님은 여기저기 나의 눈을 확인해보시더니 갸웃거리면서 말씀하셨다.
"포도막염 자체가 특수하거나 희귀한 질환은 아니지만 이 어린 나이에 원인도 없이 걸렸다는건 좀 의문이네요. 교수님과 예약잡고 다음에 오시는게 좋으실것 같아요."
이야기를 들은 나는 마음 어딘가가 텅 빈것처럼 느껴졌다. 이 병이 마치 나의 벌같았기 때문이다.
어릴때 다른곳에서 살다가 중학교를 들어가며 사교육의 메카라는 강남3구에 이사 온 나는 강남의 아이들이라면 어릴때부터 밥먹듯이 다닌 학원을 등록하게 되었다. 일주일에 고작 한번뿐인 정규수업과 수업내용을 압도하는 숙제들 그리고 시도때도 없이 부르는 클리닉이라는 이름의 자습이 나에겐 생소했다. 그도 그럴것이 초등학교때까지만 해도 나라는 사람은 공부는 커녕 소설과 영화를 사랑했으며 수학이나 과학보다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창의적인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어느날 한번은 학원이 너무 가기 싫어 하늘에 빌어도 밤새 울기도 했었다. 그러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난 뒤 나는 현실을 깨닫는다. 내가 학원가기 싫다고 징징거릴 동안 내 또래 친구들은 이미 '의대반'이라는 곳에서 고등학교 수학까지 풀고 있었다는 것을. 중학교에 올라간뒤 나는 초등학교때의 과오를 씻기 위해 더욱더 열심히 공부를 했다. 뒤처진만큼 따라잡으려 노력했고 매일매일 밥먹듯이 학원을 갔다. 그러던 중 어느날처럼 그냥, 평범하게 그리고 또 당연하게 길을 건너는데 다가오는 트럭에 물러서지 않는 나를 보고 나는 알게 된다. 내 어딘가가 망가져버렸다는 것을. 태초부터 자유로웠던 인간이어서 그랬을까?내가 원해서 한 그 생활이 어린 나에겐 너무나 큰 독이었다. 하지만 어리고 미련했던 나는 공부와 학업스트레스가 문제인지 몰랐고 그냥 내가 모두가 흔히 말하는 중2병 혹은 우울증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그때 매일밤 자기전 하늘에 이렇게 빌었던 것 같다.
'하느님, 저에게 계속 이러한 우울을 주실거라면 차라리 엄청난 불행을 가져다주세요. 제가 그 불행을 통해 나의 우울을 정의할 수 있게, 차라리 탓할 수 있는 불행을 제게 주세요.'
괘씸한 소원을 빌어서일까. 신은 나에게 소원을 들어줬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교수님은 내게 원인이 불명하나 아마 스트레스 때문일거라고 하셨다. 언제나 밝은 모습만 보셨던 부모님은 교수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나 또한 '원인불명'의 낙인이 너무나 무겁게 받아들여졌다. 사실 아직도 생각하곤 한다. 그때 병에 걸리기 전 차라리 먼저 마음의 병을 치유했다면 염증도 사라지지 않았을까?하고...
병을 진단받은 뒤 나는 스테로이드계열 약을 먹기 시작했다. 처음먹는 독한약과 하루에도 몇십번씪 넣어야하는 안약들이 나에겐 너무 귀찮은 일이었다. 부모님은 발병초기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셨다. 걱정을 하시긴 했으나 '약만 잘먹고 잘 쉬면 나을거야'하는 생각이셨던 것 같다. 물로 어린 나도 그랬다. 길어봤자 한달이나 두달이라고 생각했고 큰 알약을 못 삼키거나 안약넣기를 무서워하는 내가 큰 문제가 되지 않을거라고 여겼다.
그렇게 나에게 포도막염이 찾아왔다. 큰 알약조차 못 삼키던 나는 12개의 알약도 한번에 넘길 수 있는 슈퍼걸이 되었고 주사맞기를 무서워하던 나는 매번 손등에서 피를 뽑는 철인이 되었다. 또 그 외에 안약을 넣는것도, 매일 약을 챙겨먹는 것도 모두 나에게 익숙한 일이 되었다. 이 글은 나에게 처음 포도막염이 발병했을때를 기억하며 쓴 글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아픔을 견뎌내었는지 참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 아픔들로 인해 성장한 나를 보면 그 기억들이 마냥 징그럽지만은 않다. 포도를 좋아하던 나에게 찾아온 염증은 그때부터 나의 삶을 완전히 바꾸었다. 나의 성향, 취향, 외면까지. 나는 그렇게 지금까지 염증과 함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