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느리게 산다는것은
포도막염과 함께 산지도 어언 6년.
나는 토끼같은 심장과 거북이같은 몸을 가지게 되었다.
강남 3구 중 사교욱의 메카라는 곳에서 공부중인 나는 남들보다도 유난히 느린 몸을 가지고 있다.
그건바로 나의 염증이야기인데, 이 염증은 내가 공부할때마다 어찌 그리도 나를 괴롭히는지 항상 골칫덩어리였다. 염증때문에 시험을 못친적이 다수이며, 시험기간에 학원이나 과외를 빠진적은 셀 수도 없다. 염증의 짜증나는 점은 제대로된 치료가 어렵다는 것인데, 나의 경우 포도막염이 생겨서 염증이 돌아다니는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염증이 포도막염으로 발현되었던 것이라서 더 복잡했다. 염증이 온 몸을 돌며 관절통, 장염, 위염, 두통 등 자잘스러운 아픔들을 내게 선사했고 나는 매일매일을 그 아픔과 함께 이겨내야했다. 바쁘디 바쁜 대한민국 사회에서 염증을 달며 사는 학생인 나는 매번 거북이같은 몸을 이끌며 뛰어갈 수 밖에 없었다. 나의 유일한 단점은 병이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게 무슨 말이냐하면 내가 아픈것을 남이 쉽게 못 알아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염증 자체가 내 몸 어딘가 깊은 면역계에서 활개를 치고 있는것이라 그런지 두통이나 미열같이 '병원을 가기엔 애매한' 증상들로 나를 괴롭혔고 원인모를 통증으로 학교를 잘 못나갈때엔 아무도 나의 아픔을 믿어주지 않았다. 부모님조차도 말이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중학교때의 수많은 아픔을 이겨내고 증상이 많이 완화되었다. 이제 병은 만성으로 접어들었고 스트레스를 받거나 조금 무리하면 열이 나고 속이 미슥거리는 정도의 아픔만이 내게 주어졌다. 하지만 몸이 살만해지니 정신이 나를 괴롭혔다. 그동안의 고통과 상처들로 인해 나의 마음은 썩어갔고 결국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에 접어들었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더욱더 성적과 미래에 대한 압박에 시달렸고, 아픔으로 인해 잃어버린 지난날 나의 학업생활과 교우관계에 슬퍼하였다. 그렇게 나는 나의 거북이같은 몸을 탈피하고 싶었다. 어쩌면 남들처럼 토끼가 되고 싶었나보다. 나도 저 자유로운 하늘을 향해 높이높이 뛰어오르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나의 병을 숨겼다. 어차피 나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내가 병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테니 말이다. 그러던 중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었다. 나를 토끼라고 생각했던 남들은 나의 아픔을 '꾸며낸 것'이라고 여겼고 나는 나의 아픔과 나의 행동 사이에 괴리 때문에 힘들어했다. 제일 많이 들은 말이 있다. "환자답지 않다" 나는 옛날부터 이 말이 너무 싫었는데, 왜냐하면 나의 긍정적인 마인드를, 애써 긍정적이게 돌려말하는 이 스탠스를 깨부수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시선으로 나를 재단하기 시작했다. 감히 토끼를 흉내낸 나는 그렇게 결국 거북이임이 들통나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나는 아직도 토끼같은 얼굴에 거북이 같은 몸을 지니고 남들과 같이 뛰고 있다.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인데 이 대한민국에서 진정으로 건강한 사람은 드물고 모두 다 저마다의 결함이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안 아픈편에 속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만 아픈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나에겐 조금 많이 위로가 되었다. 모두가 토끼인줄만 알았는데 다들 토끼탈을 쓴 거북이들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