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의 세계는 부모일까

도피처가 집인 사람도 있다

by 파이썬
자식의 세계는 부모이다


지독했던 여름감기가 끝난 후 오랜만에 학교를 등교했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얼굴들과 여전히 에어컨을 틀어도 더운 학교가 여전하다고 생각했다. 공부를 하다가 문창과 입시 준비를 하는 친구의 글을 읽게 되었다. 우리는 예전부터 여러 이야기를 하던 사이인데, 그 이유는 서로의 아픔이 닮아서일까 말이 여러모로 잘 통한다. 그 아이의 글은 항상 정갈하면서도 날렵했다. 내가 오늘 본 글의 주제는 '세계와 갈등하는 주인공'이었는데 친구는 그 제시어를 보자마자 자식의 세계는 부모라는 말이 떠올랐다고 한다. 나도 한 번쯤은 들어본 그 말, 근데 그 말이 정말 사실일까?


나의 경우에는 자식의 세계는 자식 본인만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들과 자식들이 그것을 모르고 살아가기 때문에 자식과 부모의 세계는 거의 동화된다. 그렇다면 부모의 세계에서 추방당한 이들은 어떠할까? 그들에겐 세계가 없는 것인가? 내 생각엔 전혀 아니다. 세계에서 추방된 이들은 혹은 자발적으로 걸어 나온 모험자들은 자신들만의 도피처를 만든다. 누가보기엔 초라한 캠핑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들에겐 그곳이 집이다. 나는 옛날부터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 좋았는데, 그 시간에는 아무 구애도 받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억압은 자식을 위축시킨다. '사랑해서'라는 말로 우리는 쉽게 우리의 죄를 지운다. 한때 어머니 때문에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그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어머니께 '네가 나 없이 잘 살 것 같아? 넌 나 없이 못 살아'라는 말을 듣고 난 후였는데 오랫동안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를 지켜본 나의 입장에서는 참 의아한 발언이었다. 만약 자식의 세계가 부모라면 부모라는 세계 안에서 자식이 나가도 부모의 세계는 유지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물론 자식의 세계가 부모라는 말은 더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이해한 세계처럼 자식이 부모라는 세계에 들어와 있는 존재라면 자식의 독립을 무서워하는 부모의 행동은 이해 가지 않는다. 어느 세상이 떠나는 사람을 붙잡아주었나? 떠나는 사람조차 자신을 붙잡지 못했을 텐데.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나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자식이 무조건적으로 부모만을 바라본다고 생각한다. 내가 본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이렇다.
'자식은 부모 없이 살 수 있지만 부모는 자식 없이 살 수 없다'

나는 존재의 고독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자식의 독립은 나에게 고독으로 향하는 길로 느껴진다. 하지만 남겨진 부모는 그것을 결핍처럼 느낀다. 마치 자신의 팔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아파한다.

아마 여기서 나의 글이 불편하게 와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내가 방금 그랬다)

부모가 자식 없이 살 수 없다고 해서 자식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관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쉽게 미련하게 행동한다. 집착하고, 서로를 욕하고, 때리고... 하지만 그 모든 게 사랑이라면 우리는 사랑을 왜 해야 하는가?

할 때마다 아픈 게 사랑이라면 도대체 사랑과 자해의 차이는 무엇인가.

따라서 나는 진정한 사랑은 관조라고 생각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적절한 관계이다. 적정거리가 있는 인간관계가 나에겐 최고의 즐거움과 사랑이다. 나의 개인공간을 침범당하고 싶지 않은 나의 성향도 있겠지만 나라도 사랑하면 누군가를 더 알고 싶다. 속속들이 탐구하고 분석하고 읽어내고 싶다. 하지만 과연 내가 그 사람의 그 모든 것을 본다 한들, 더 사랑할 수 있을까? 나와 비교하지 않고, 그 사람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말이 안 되기에.

오히려 그래서 더 사랑하는 것 아닐까?

평생, 죽을 때까지 나는 이 한 사람 혹은 이 많은 사람들을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그리고 나 또한 영원히 이해받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힘들고 아픈 부모 밑에서 열심히 버티고 있는 딸들에게.

당신의 아픔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또한 당신의 세계는 당신의 부모가 아니다.

만약, 당신의 세계가 부모만으로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괜찮다.

부모로부터의 독립이 무조건적인 외로움과 소외로 귀결되지 않는다.

당신은 앞으로 살면서 당신만의 세계를 개척하고, 탐험해 나갈 것이며 당신의 도피처는 언젠가 당신의 집이 되어 당신을 반겨줄 것이다. 현실세계는 아름답지 못하다. 추악하고, 더럽다. 하지만 당신의 세계는 충분히 아름다워질 수 있으며 우리들의 세계가 하나둘씩 모여 조금이라도 아름다운 세상이 탄생할 수 있다.

그러니 그대 아름다워지기를 멈추지 마라.

아름다워진다는 것은 결국 나다워진다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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