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풍 Aug 23. 2020

존재의 답답함

70년대 한국 영화 중에서 '지구여 멈춰라 내리고 싶다'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필자에게 영화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이 영화의 제목은 그 후 수십 년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그 후 청년 시절에 접하게 된 이상의 <날개>와 카프카의 <변신>을 읽으면서 추가적인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 '날개가 돋는다'라는 느낌과 '벌레로 변한다'라는 묘사에서 왜 천재 작가들이 공통으로 인간이 정신적으로 힘들면 더 나은 영적인 존재로 변하기보다 벌레나 새로의 회귀를 희구하는지가 궁금했다. 두 작가 모두 혹시 진화론의 영향을 받은 걸까도 생각해 보았다. 현재 모습의 인간이 수많은 고통과 아픔에 시달리다 보면 다양한 탈출구(자기 방어기제, 약물, 다양한 중독 등)를 찾게 되는데, 심지어  동물적인 본능(매니멀), 그리고 나아가서 곤충이나 단세포 생물까지로 돌아가는 희망을 통해 이기적 유전자의 노예로 살아가는 다세포 생명체의 삶을 포기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라고 추측해 본다. 프로이트는 탄소, 수소, 산소, 질소라는 무기물이 인간이라는 유기체를 형성하면서 다시 무기물로 회귀하기 전까지는 긴장상태가 발생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긴장상태가 인간에게 주어진 답답함의 근원 인지도 모르겠다. 과거 서양의 감옥은 죄수를 외부세계와 철저하게 차단시키기 위해 성탑의 꼭대기 방이나 지하의 어두운 방(dungeon)을 이용했다고 한다. 마치 인간의 뇌가 해골 속의 어두운 공간에 갇혀서 직접 외부세계를 체험하지 못하고 감각을 통한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의 간접적인 느낌을 갖고 사는데, 습하고 어두운 지하감옥의 답답함이 느껴진다. 인간의 뇌가 시각, 청각, 촉각의 신경회로 작업을 중단하고 직접 뇌 밖으로 나와서 마스크를 벗고 호흡하는 것처럼 시원한 공기를 마시는 방법 또는 골방에서 동영상이나 사진을 보는 대신 실물을 보는 방법이 있을까 궁금하다. '지구여 멈춰라 내리고 싶다'라는 영화 제목을 필자는 아마도 다람쥐장 속에서 평생 빙빙 돌아야 하는 쳇바퀴도는 다람쥐의 탈출 소망으로 연결해서 본 것 같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소설, 영화, 던져진 존재로서의 인간을 그리는 실존주의 철학의 답답함이  필자나 주변 지인들의 삶 속에서 서서히 펼쳐지는 현실을 목격하면서, 그들이 말한 답답함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뇌 속의 암실에서 현상된  사진만을 보고 진짜 체험할 수 없는 실물을 사랑할 수 있을까. 쇼펜하우어도 분석 이유는 필자와 다르지만, 유사한 결론에 이른 것 같다. 진정한 사랑과 정의도 실제 삶에서 구현되기가 어렵기 때문에 문학작품이나 영화 속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점이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포장된 사랑이나 정의는 가능하겠지만. 필자는 이러한 관점이 진정한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노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던져보는 단지 하나의 견해일 뿐이다. 파스칼이 말한 '생각하는 갈대'가 뇌 속에서 너무 가상현실적인 생각만을 하고, 연약한 갈대의 물리적인 한계를 너무 쉽게 간과하는 것이 현대인에게 강요되고 주어진 삶의 방식, 문화, 문명으로 여겨진다. 특히 인공 기기를 통해서 인간의 모든 물리적인 약점(생명까지도)을 극복할 수 있다는 인간의 방향성(유전자 편집, 인공장기, 2045년 경이면 인공지능이 전체 인류의 지성을 초월한다는 기계적이고, 알고리즘적 사고방식의 유행), 유물론을 배격하면서도 유물론이 구축한 현대 문명 기기(화학약품이나 스마트폰 등)를 사용하면서 유심론을 지지하는 모순적인 사람들이 너무 많다. 유물론의 핵심인 돈과 권력(큰집, 큰 차, 대기업, 키 큰 사람 등)을 내심 추구하면서도, 입으로는 신, 영혼, 정신의 힘을 강조하는 이원론적인 정신세계가 간혹 답답하기도 하다. 이미 유물론적인 문명이 지배하는 삶 속에서 순수한 영혼과 정신의 존재나 힘을 말하는 유심론이 지향하는 구체적인 방향은 어떤 것일까.

작가의 이전글 바이러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