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상황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가 있다. 아마 픽션인 드라마와 다르게 실제로 일어난 스토리를 재구성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실제상황이라는 제목을 사용하는 것 같다. 가끔 산다는 것이 꿈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의 24시간의 삶 자체가 실제상황이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진짜 순간들이 물 흐르듯 지나가고 있다. 우리가 일을 하거나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하는 것도 실제상황이지만, 나 혼자 쉬는 것도 실제상황이고 내 머릿속의 또 다른 목소리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꿈이 아니고 엄연하게 실제상황이다. 매 순간 나의 삶을 텔레비전의 실제상황 프로그램처럼 실감 나게 연기를 하면서 사는 것이 삶의 비결이 아닐까 생각한다. 살다 보면 멍 때리는 순간도 있고, 며칠 잘 나가다가 아주 망가지는 날도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간들도 나의 삶의 일부이지 결코 지울 수는 없다. 삶의 모든 순간마다 수많은 선택의 가능성이 주어져 있지만 결국 하나를 선택해서 살아간다. 만약 이 길이 아니고 다른 길을 택했더라면 오늘의 삶이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아도 소용없는 일이다. 어떤 선택을 했던 그 순간에는 내가 알 수 없는 무수한 요소들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우연한 선택일지라도 세상 전체의 차원에서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가 젊은 시절에 트럭에 치여서 죽을 뻔한 순간이 있었지만 간발의 차이로 살아났다고 한다. 만약 그때 죽었다면 2차 세계대전도 안 일어났을 것이고 세계사는 전혀 다르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영국의 처칠 수상이라는 역사적 인물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유럽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개별 인간들이 전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역사의 순간들이 정해진다. 금년 1월만 해도 코로나 19의 심각한 여파를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모든 개인의 매 순간 선택과 세계사의 흐름은 토인비가 <역사의 연구>에서 분석하였듯이 사계절의 흐름처럼 주기적으로 반복되기도 하지만,동시에 헤겔이 주장한 어떤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정점을 향해서 흘러가고 있는 실제상황이다. 우리 각자가 아무리 현명한 계획을 세워도 전체로서의 인류가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오직 매 순간을 실제상황으로 느끼고 나에게 지금 주어진 역할을 진지하게 다하며 사는 방법 외에는 대안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