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풍 Nov 28. 2023

인간종에 대한 음모(책 리뷰)

공포 소설가인 토머스 리고티(Thomas Ligotti)는 <인간종에 대한 음모, The Conspiracy against the Human Race, 2010년 출간>에서 인간 존재에 대한 비관과 방만한 의식이 일으키는 공포를 주제로 자신의 철학을 전개한다. 우주적인 공포, 인간 존재의 허무함, 그리고 인간의식 자체가 부담이라는 생각이 강조된다. 리고티는 인생이 본질적으로 고통으로 가득 차 있으며,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시도가 궁극적으로 헛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비록 실현 불가능하다고 보지만, 인간종의 번식에 반대하며, 새로운 생명을 세상에 내려보내는 것이 고통과 비극의 본질적인 투쟁을 계속 확산시키기만 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인간의식이 가져다주는 공포의 심리적이고 존재적인 측면을 찾고 있기 때문에 인생에 대한 낙관주의적 경험과 대다수 전통적인 입장을 부정한다. 필자는 저자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지만, 호모 사피엔스에 대한 철저한 비관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알기 위한 차원에서 이 책을 소개한다. 참고로 필자는 인생이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어떻게든 열심히 잘 살아가자는 입장이다. 저자가 보기에는 기본적으로 대자연의 꼭두각시일 뿐인 인간의 의식이 급속하게 확장한 것은 자연의 큰 실수(nature's blunder)로 인한 돌연변이이자 저주이며, 자연은 언젠가는 다시 자신의 실수를 회수(인간종의 멸종을 의미) 하리라고 본다. 인간을 '악성으로 쓸모없는(malignantly useless)' 존재라고 묘사한다. 삶의 무대 뒤에 우리 세계를 악몽으로 만드는 위협적인 무엇이 있다는 생각이 드러난다. 저자의 생각대로라면, 구체적으로 우리는 DNA의 꼭두각시이고, 예를 들어 성욕이나 문득문득 튀어나오는 생각들은 우리의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라 DNA가 일으키고 있다. 최근 들어 신경과학자와 유전학자들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대부분 우리 개인 혹은 우리라고 생각하는 개인에 대한 인격적 통제의 결과라기보다는 신경망과 유전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조금씩 밝혀나가고 있다"라고 소개한다. 저자는 인간이 오인된 정체성을 지닌 사물에 불과하다는 끔찍한 느낌을 갖고 있다. 

여러 비관론자들의 저술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서술한다. 인간 고통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해결되지 않은 채 남을 것이라고 보며, 비존재는 누구에게도 해롭지 않지만 존재는 모든 이에게 해롭다는 기본 인식을 표출한다. 인간이 다른 동물종들보다 훨씬 의식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 의식은 결국 불필요하게 죽음과 미래를 걱정하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고, 이는 인간에게 참을 수 없는 공포만을 일으키고 있다고 여긴다. 저자에 따르면, "죽음을 늦추는 수단으로써 건강에 유의하는 것보다 더 해로운 것은 없다. 우리가 마지막 가쁜 숨을 미루려 온갖 노력을 다하는 것은 그저 죽음이라는 사건에 대한 병적인 두려움만 보여줄 뿐이다"라는 것이다. 즉 자신이 죽게 되리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채 사는 것이 죽음 자체보다 더 나쁜 운명이라고 본다.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진리는 아무리 절대적인 진리라고 주장을 해도 실제로는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에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고 평가한다. 고통스러운 현세든 영원한 복락을 약속하는 내세든 결국 모두 상대적 준거틀에서 나온 것이지, 절대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쓸모 있는 것이 아니다는 시각을 보여준다. 저자는 공포소설가로서 우주의 광대하고 무관심한 세계에서의 인간의 무의미함을 발견한다. 그에 따르면, 우주가 본질적으로 인간의 존재에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인 것으로 여겨지, 그래서 존재의 공포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의 핵심적 생각은 인간의식이 인간종이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확장된 탓에 오히려 인간에게 해롭다는 점이다. 너무 비대해진 의식 자체가 인간에게 부담이 되고 있고, 이로 인해 불안과 고통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의식이 가져다주는 자아인식의 가치를 의문시하며, 차라리 무지(ignorance)가 우주에서 자신의 위치를 이해하는데 따르는 존재적 고뇌보다 더 낫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무언가를 성취하려고 애쓰는 것이 헛된 일이며, 궁극적으로 우주의 큰 그림에서는 무의미하다"라고 다. 


인간이 의식의 본질과 존재의 헛됨을 보지 않으려고, 여러 가지 회피 기제장치를 사용한다고 분석한다. 특히 노르웨이 철학자 페테르 베셀 삽페(Peter Wessel Zapffe, 1899~1990)의 철저한 비관주의를 인용한다. 삽폐는 <마지막 메시아, Last Messiah, 1933년 출간>에서 "인간 의식이 우리 종이 감내할 수 있는 속성을 한참 넘어서는 지점에 다다랐다"라고 보고, 이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4가지 전략(고립, 고착, 산만함, 승화)을 파악한다. 즉 자기기만과 의식의 억압을 위한 기제장치이다. 1. 고립(isolation): "살아있음이라는 끔찍한 사실을 우리 마음속 외딴 구석에 밀어 두고 고립시킴으로써, 우리는 불안의 자유낙하로 빠져들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2. 고착(anchoring): "폭풍우 몰아치는 혼돈의 바다에서 삶을 안정시키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를 공인되고 믿음직하며 편안하다는 느낌에 도취되도록 만드는 진리들(신, 도덕, 자연법, 국가, 가족 등)에 고착하기로 공모한다". 3. 산만함(distraction): "우리 마음이 공포로 가득 찬 세상에 관해 깊이 생각하지 않도록, 우리 마음을 사소하거나 중대한 쓰레기로 돌려 주의를 산만하게 한다(고용, 체육, 텔레비전, 국가정책, 과학연구, 경력, 입지 등)". 4. 승화(sublimation): "자신의 공포를 공공연히 전시함으로써 승화시킨다(사상가, 예술가 등)". 어찌 되었든 인간이 행복해지려면 이러한 착각(delusion)에 의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평범한 실존의 한계를 초월하고자 하는 인간 정신을 부정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인간존재를 바라보는 세 가지 존재 양식이 있다. 1. 비관론자: 저자, 삽폐, 쇼펜하우어처럼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해 철저하게 비관적이며, 심지어 인간종의 멸종만이 해답이라는 입장, 2. 영웅적 비관론자: 현실의 황당함은 인정하지만, 어떻게든 살아가자는 주의, 우나무노, 딘스태그, 브래시어, 알베르 카뮈, 대다수 종교적 가르침(고통의 세속에서 구원을 추구), 3. 낙관론자: 신사고('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라는 신념) 주의, 긍정심리학, 소수의 행복한 권력자들, * 기타 비관론자에서 떠난 무관심주의자(indifferentist): 물리적 우주에서 악의가 아닌 중립적인 입자의 흐름만을 보는 자: 러브크래프트(비관론자에서 전환). 저자의 주요 인용구를 소개한다: "우리는 태어나지 않는 것을 선택할 수 없다. 그렇지만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우주는 무관심하며, 우리의 모든 업적은 그저 먼지 속에서 사라질 뿐이다, 의식은 우리의 심장 밑에 누워있는 무한한 악몽이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고 모든 노력은 헛되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비참하다, 인간은 행복의 작은 순간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결국은 그 행복도 잠시일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마법은 없었다(책 리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