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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풍 Jun 07. 2024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책리뷰,음성본 첨가).

인도 출신 명상가인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저서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소개한다. 저자는 인간의 자유에 대해 독특한 개념을 제시한다. 그가 말하는 자유란 우리가 보통 말하는 인식범위 내의 자유가 아니다. 저자에게 자유란 인간 인식의 영역 밖에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자유는 우리가 배운 교육, 사상, 이념 등 외부적 권위와는 무관하다.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기억과 사고라는 인식활동에 의한 자유는 결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진짜 자유란 인간의 인식이나 사유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존재하고 있고, 인간 존재의 출발이자 끝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인간의 인식 밖 영역에 있는 자유에 대해 인간이 인식 수단을 통해 접근하거나, 사유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크리슈나무르티는 역설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기존에 배운 모든 앎과 지식을 내려놓음으로써, 마지막 남은 상태가 진정한 인간의 자유 상태라는 것이다. 인간이 성장하면서 배운 모든 아는 것을 지우면, 결국 인간의 진짜 본성인 자유의 상태만이 남을 것이라는 관점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인식활동이란 과거 기억에 대한 뇌의 심리적 반응일 뿐이다. 그래서 이러한 제약적인 사고와 인식활동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이자, 진정한 자유라는 것이다. 잘 살펴보면, 과거의 기억이란 다름이 아니라, 외부나 타인으로부터 나에게 알게 모르게 주입된 내용들이다. 모든 교육, 경험, 전통, 외부의 권위 등이 주입의 수단이다. 저자는 이처럼 외부로부터 주입되어 알게 된 내용을 자신의 앎이라고 믿고 사는 사람을 중고 인간이라고 규정한다. 저자가 말하는 진정한 자유는 사람의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모든 외부적 권위를 부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런 부정을 통해서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한다. 다르게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생각이나 느낌에 대해 더 이상 옳다, 그르다고 판단하지 말고, 다만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을 중립적으로 관조만 하라는 것이다. 모든 판단이 사람을 그 방향으로 구속하게 된다. 따라서, 더 이상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는 마음의 상태란 아무것으로부터도 구속되지 않고, 다만 현재 일어나는 일들에 주의를 집중하는 상태이다. 이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인간 본성과 진정한 자유에 이르는 길이라고 한다. 다만, 그는 자신이 언급하는 내용도 결국 또 다른 외부의 지식이나 권위가 될 수 있는 위험성을 지적하고, 자신의 언급 내용을 무조건 따르지 말고 독자가 스스로 생각해서 깨닫기를 권유한다.

지금부터는 저자의 생각이 담긴 책 속의 구절들을 인용한다. 어떤 사물을 분명하게 보고자 할 때는 편견, 내면의 속삭임, 상상의 이미지 등 모든 마음의 방해물들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살아있는 마음은 고요한 마음이며, 중심도 시간도 공간도 없는 무한한 마음이다. 생각이란 구부러져 있고, 무엇이든 만들어내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볼 수도 있고, 대단한 속임수를 쓰기 때문에 의존할 수가 없다. 모든 인간관계는 실상의 관계가 아니고, 생각이 만들어낸 이미지의 관계일 뿐이다. 우리는 자기 중심주의, 편견, 증오, 민족주의 등 그릇된 가치관 때문에 지금 같은 혼란 상태의 세상을 만들었다. 또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이런 무질서를 필연으로 수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람은 어떤 경험을 하게 되면, 과거에 기반한 조건적인 생각에 따라 좋다, 나쁘다, 아름답다, 성스럽다고 다양하게 받아들인다. 두려움, 종속, 질투심, 소유욕, 책임과 의무, 자기 연민, 사랑받지 못하는 고통 등은 사랑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찢어진 사막의 세계에는 쾌락과 욕망이 지배하고 있기에 진정한 사랑이 없다. 사랑이 없으면 삶에 의미가 없고, 아름다움을 모르면 사랑을 느낄 수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을 편안함, 안전함, 지속적인 감정의 만족을 보장해 주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사랑이란 새롭고, 신선하며, 살아있는 어떤 것이다. 사랑은 어제나 내일이 없고, 생각의 혼돈을 넘어서 있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안전에 대한 요구는 반드시 슬픔과 두려움을 잉태한다. 인간은 죽음을 삶으로부터 분리시켰다. 삶과 죽음 사이의 간격이 두려움이다. 마치 매일 새로운 사랑인 것처럼, 완전하게 산다는 것은 어제의 모든 것에 대한 죽음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기계적으로 사는 것이며, 기계적인 마음은 사랑이나 자유를 모른다. 우리는 삶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한다. 사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죽는 법도 모른다. 죽는다는 것은 매일의 바람, 쾌락, 고통으로부터 마음을 비우는 것을 의미한다. 시간이란 인간이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어 놓은 움직임이다. 시간을 나누는 한 계속해서 갈등이 있게 된다. 인간은 시간에 따라 산다. 미래를 발명한 것은 현재에서 탈출하기 위한 게임이다. 혼란한 마음에 빠지면, 무엇을 해도 혼란한 상태에 있게 된다. 혼란스러울수록 주변을 둘러보고, 요구하고, 애걸하고, 추구한다. 가족, 국가, 문화 등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되면, 아웃사이더가 된 느낌이 든다. 이런 아웃사이더는 순진한 마음을 갖게 되며, 순진함이 마음을 슬픔에서 해방시킨다. 살인만이 폭력이 아니다. 날카로운 말, 사람을 무시하는 행동, 두려움 때문에 복종할 때도 폭력이다. 기억에 의해 절름발이가 되지 않는 마음이 진정한 자유를 가지고 있다. 내가 언제나 타인과 비교하고, 타인처럼 되고자 애쓰면, 현재의 나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 된다. 그러면 나는 헛것을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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