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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Sep 29. 2021

전공은 어떻게 살리는 건가요?

방학하고 뭐하지



“누가 인내를 달라고 기도하면 신은 그 사람에게 인내심을 줄까요? 아니면 인내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려 할까요?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면 용기를 주실까요? 아니면 용기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려 할까요?”


노아의 방주를 모티브로 한 영화 에반 올마이티에는 위와 같은 대사가 나온다. 내가 이 영화를 먼저 봤었다면 그때 나의 기도는 달라졌었을까?


우리 집 침대 밑 서랍 한 칸에는 나의 초등학교 성적표, 상장부터 중고등학교 때 입었던 교복, 그리고 대학 입학 시절 적어냈던 자기소개서와 지원동기서까지 고스란히 남아있다. 나의 대학 지원동기서의 첫 줄은 이렇게 적어져 있었다.


“저는 용기를 가지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옳지 않은 일들이 자주 일어나는데 우리 사회는 아직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제법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것 같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도 그 영화 대사가 맞는 것 같았다. 신은 용기를 달라고 하면 용기를 바로 주시기보다는 용기를 얻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주신다는 말. 다만, 당사자들은 그 용기가, 그 상황이 어떻게 자신에게 찾아오는지는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말이다.


그렇게 나는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다. 물론 대학에서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들어야 하는 몇몇 필수 전공이나 교양 과목들이 있기도 했지만, 중고등학교 시절처럼 아침부터 밤까지 작은 책상 안에 하루 종일 구부려 앉아 있지 않아도 되었고, 그동안 내가 잘 알지 못했던 주제들이 더 세밀하게 분화된 과목들을 듣게 되어 신기하고 들뜬 기분도 있었다.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옮겨 가기까지 겨우 일 년이 지난 것뿐이었는데 일년 전에는 못하던 것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꿈인 것 같기도 했다. 친구들과 공부하고 싶을 때 공부하고, 산책하고 싶을 때 산책하고, 공강 시간에 밥을 먹고, 같은 흥미를 가진 친구들과 모여 공부를 하고 놀 수 있다는 것이 나는 무엇보다 좋았다.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을, 왜 초중고 학교때는 그렇게 하면 안되는 걸로만 붙잡아 두었을까.


그러나 모든 삶의 챕터들이 그렇듯, 대학생으 해가 지나고 그렇게 자유롭게 느껴지던 ‘대학생활도 다시 ‘학교생활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것들이 있었으니 바로 전공의 의미였다. 국제관계, 국제정치라고는 했지만 어찌 보면 뿌리는 정치학에서 오는 것이었는데, 정치를 전공하면 정치인이 되는 건가? 정치가 아니면 도대체 어디에  전공을 써먹을  있지 싶은 현타가 찾아왔다.


국제정치라 하면 반짝이는 유엔이나 화려한 국제기구에서 일을 하거나 북한 관련 일을 하려면 통일부나 정부기관에 들어가야 하는 건가 싶었지만 나는 수도권도 대학 덕분에 처음 올라와 살아본 지방 토박이였다. 말을 하는 나도 들리지 않는데 친구들은 귀신같이 내 사투리가 잡아내서 나는 서울말도 적응해 가는 상황인데, 영어는 물론 제2, 3 외국어까지 요구하는 국제기구를 지원한다면 나같은 사람은 외국어는 커녕 모국어에서부터 걸러질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가 원하는 것이 정말 공부만 많이 하고, 논리만 가득해서 글만 수려하게 잘 써 내려가는 그런 사람들과 높은 자리에서 일하는 것이었나 생각하면 그건 아니었다. 나는 전공을 살려 모험을 하고 싶었다. 단순히 잠시 여행을 떠나 이곳저곳을 짧게 돌아보고 오는 여행이 아니라 그곳에 현지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면서 그 나라와 사람들에 대해 알고 싶었다. 외국인들은 몰라도 내국인들이 그래도 이 사람 우리에 대해 더 알고 배우려고 노력하네라고 조금은 인정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국인이 되기에는 한국인이라는 나의 정체성이 너무 깊어 부족하겠지만 외국인이라고맘 말하기엔 현지사람들이 섭섭해할 내국인과 외국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여행자가 되고 싶었다. 나에게 지구별 여행은 단순히 여행만이 아닌 여행과 모험, 그리고 삶 그 사이 어딘가여야만 할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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