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뜻한 선인장 Sep 26. 2021

어떤 학과에 가고 싶은지 왜 이제야 궁금해요?

고 3으로 올라가던 어느 겨울날

고등학교 3학년을 올라가는 겨울날 교실, 저녁을 먹고 야간 자율 학습을 시작하기 전 선생님이 진지하게 운을 떼셨다.


"이제 내년에 고3이 되기 전에, 진짜로 너희가 어떤 대학, 어떤 학과에 지원하고 싶은지 확실히 정해야 할 거야."


아침 7시부터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반쯤 잠에 취해 밥을 먹고 학교에 가고 나면,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은 10시까지 학교의 작은 책상 위에 쪼그려 앉아 있는 삶을 고등학교라는 곳에 올라와 2년째 살아가던 중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혹은 알아야 하는 것은 내신과 수능 공부뿐인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전공이라니. 어떤 전공, 그러니까 내가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를 왜 이제야 물어보는 걸까? 전공이라는 것, 대학이라는 것을 초중고를 다니던 10여년 동안 제대로 알려준 적이 있었나? 대학을 꼭 가야하는 건가? 그 전공이라는 것은 어떻게 선택하는거지?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면 되나? 그런데 전공은 내가 평생하고 싶고 또 나중에 사회에 나가면 일로도 하게될 가능성이 높을텐데 단순히 좋아하는 과목을 혹은 그냥 점수에 맞는대로 전공을 선택해도 되는건가?


수능이 인생을 좌우하고 그 수능 결과로 들어가는 대학의 전공이 나의 직업과 미래를 좌지우지 할지도 모른다는데, 수능 성적만 잘 받으라고 하고 정작 전공은 무엇이고 그렇게 중요한 전공을 어떻게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걸까? 지금까지 시키는 대로, 정해진 대로만 공부하라고 이렇게 갇힌 공간에 집어넣어 놓고 무슨 뜬금없이 갑자기 내가 하고 싶은 것이 궁금해진 걸까? 진짜로 궁금하긴 한 걸까?’


펼쳐나는 부채처럼 접혀진 질문들이 주르륵 늘어났지만 제대로 된 답을 들을 순 없었고, 오히려 그러면 뭐하나, 어쨌든 정말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하는 현실감만 남져진 느낌.


그나마 나에게 우리 집은 안식처이자 쉴 수 있는 곳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한 번도 나에게 무엇을 해야 한다고 시키거나 더 강요하지 않으셨다. 동절기에는 해가 뜨기 전부터 일어나 그 해가 다시 꼭꼭 숨을 때까지 학교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 것을 아셨으니까. 아직 평준화가 되지 않던 시절, 내가 어떤 중학교, 고등학교에 들어가든, 어떤 성적을 받든 부모님은 어떤 결과에도 그걸로 충분했다. 학교는 가야 하고, 힘들어도 야간 자율학습은 해야 하는 것이니 했고, 그나마 나에겐 내가 좋아하는 문학이나 역사, 지리, 사회가 교과과목 중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워낙 엄마 아빠, 그리고 나까지 성적이나 경쟁을 신경쓰지 않았다보니 딱히 수시나 수능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스마트폰도 없던 때라 인터넷에 진학사나 내신 관리, 수능 관리 등에 대한 내용들을 스스로 검색해볼 수도 있었을 텐데 별 관심이 없었다. 저녁을 먹고도 학교에서 10시까지 책상에 앉아 보게 하는 것이 EBS 방송이었으니, 내가 어떤 전공을 공부하고 싶은지 스스로 찾아볼 수 있을지언정 학교가 끝나면 너무 피곤해서 집에 가면 잠에 빠져 금방 잊어버렸다.


그래서 나에겐 전공이라는 단어가 충격이었다. 그렇기 중요한거면 처음부터 우리에게 성적대로가 아니라, 수능대로가 아니라, 내가 진짜 좋아하고 하고 싶은게 무엇인지 물어봐주지. 어떤 대학교만이 아니라 어떤 전공을 선택할 것인가. 다행히 내게는 전공이고 성적이고를 떠나 좋아하는 학교 과목들이 몇몇 있었다. 하지만 그게 대학에 들어가서 4년을 더 공부하고 싶을 만큼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가?


선생님의 입에서 '전공'이라는 단어가 나온 순간부터, 내 머릿속에서는 어떤 전공, 무슨 학과가 머릿속에 가득 찼다. 대학마다 수많은 전공들이 있었지만, 그 단어 하나 하나의 이름 안에 내 삶이 과연 어떻게 연결될 것인지, 어떤 연관이 있을지 그려지지 않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전공인지, 학과인지에 대한 답이 희미해질수록 오히려 새롭게 떠오르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내가 왜 태어났는지였다.



이전 02화 마법세계에 가지 못한다면 인간 세계라도 가야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