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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Aug 26. 2021

에필로그_내가 기억하는 가장 추웠던 8월

서른다섯, 스물

스무살이었던 8월의 여름날, 나는 태어나서 처음 인천공항 앞에 서있었다. 그날은 내가 처음 대한민국 밖을 나서는 순간이었고, 내가 향하는 곳은 지구 저 반대편의 나라,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 타운이었다.


처음 떠나보는 해외여행의 비행시간은 환승시간을 제외하고도 무려 23시간. 한국에서 홍콩을 경유한 비행기는 연료를 두둑이 채워 넣고 남아프리카의 수도  하나인 요하네스 버그까지 무려 18시간의 비행을 이어갔다. 그리고 다시 요하네스버그에서 국내선으로 환승해서 도착한 곳이 바로 케이프타운. 그때   비행의 시간이 너무도 길었기에 훗날 나는 웬만한 비행에서도 지루함이나 따분함 같은 것을 쉬이 느끼진 않게   같다.


케이프타운 공항에 처음 발을 내리던 순간, 나는 내가 유라시아 대륙 가장 동쪽에서 가장 서쪽으로만 날아온 것만이 아니라, 지구별의 북반구에서 가장 남반구로 내려온 것도 실감할  있었다. 그날은 내가 기억하는 8월의 날씨 중에 가장 추운 여름, 아니 겨울이었다.


아프리카의 겨울이 추워봤자 아프리카겠지 싶었던 나의 오판은 얇은 티셔츠가 무색하리만큼 살을 에는 바람에 후회를 불러오고 있었다. 되는대로 기내 수화물  여분으로 담아왔던 티셔츠  장을 껴입긴 했지만, 아프리카의 겨울도 겨울이라는 교훈을 나는 케이프타운에 도착한 첫순간부터 뼈저리게 새기게 되었다.


나는 ,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남아공에서 첫 해외생활을 시작하 되었.  근원적인 시작을 묻는다면 뜬금없을지 모르지만 초등학교  보았던 라이온 킹 때문이었다. 어릴  즐겨보던 천사소녀 네티, 세일러문, 해리포터가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는 대한민국 바깥  발짝도 나가보지 않은 나를 이렇게 멀리, 지구별  반대편의 나라 남아공으로 날아오게 만든 주된 요인  하나라면 사람들은 믿을까.


그렇다면 지금, 서른다섯살이  내가 뜬금없이 다시 스무  때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정리하는 이유는 얼까. 그때, 그곳, 남아공에서  인생에 잠시 다녀갔던  언니의 나이가 지금의  나이 정도였다는 것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


스무 이었던 내가  서른다섯, 삼십  중반의 언니는 무척 어른 같아 보였다. 고등학교때 봤던 내이름은 김삼순 드라마 속 언니들처럼 나에게는 머나먼 이야기처럼 느껴졌었다. 그런데 마법처럼 내가 어느새 언니의 나이가 되어 있었다.


막상 언니의 나이가 되고 보니 서른다섯이 되기까지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서인지 여전히 거대하게 느껴지면서도 아직도 스무살의 내가 남아있는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들었.  오묘한 느낌은 지금껏 수많은 표현들을 떠올려본 나로써도 쉬이 풀어내기 어려운  같다.


스무살에서 서른 다섯이 되어가는 동안 한가지 알게  것이 있다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는 . 우리나라, 그것도 지방의 작은 중소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가 스무살까지 만난 사람 중에는 외국인이  명도 없었다면,  스무살 이후부터 서른 다섯이  지금까지 나의 삶에는 외국인보다 한국 사람을 만나는 것이  드문 적도 있었다.


덧붙여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누군가는 부모 자식의 관계처럼 평생을 두고두고 오랫동안 만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누군가는 가족보다  가까이 지냈다가도 다시 타인처럼 멀어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인생에 한번 볼까 말까 싶은 별똥별처럼 아주 잠시 잠깐 지나쳤음에도 불구하고 남은 생의 시간 동안 절대로 잊히지 않는 강렬한 기억을 남기기도 한다. 나에겐  언니가 그랬던  같다.


 언니와의 스치듯 흘러간 만남이 어찌 보면  스무 , 아니 이십  내내 어느 하나 확실하지 않은 순간들마다 길을 잃지 않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무얼해야할지 알려주는  번째 나침반을 쥐어 줬던 것 같. 그리고 이제, 어느새 그때의 언니의 나이가 되어버린 나에게는 삼십대를 살아가기 위한 새로운 나침반을 찾아주기 위해 스무 살의 기억을 다시 들춰보는 것도 제법 마법같은 일이   같았다.


 기록의 끝에서 나는 나에게 남은 삼십 , 그리고 그 이후의 시간들을 헤쳐나갈 수 있는 어떤 무언가를 찾아낼  있을까? 어느새 그때의 언니 나이를 살아가는 지금의 나에게 언니는 어떤 말을 해줄까? 서른다섯이 되어 다시 펼쳐보는  스무살의 일기장. 이제는 많이 닳아져 있을지도 모르는 기억의 주머니들을 탈탈탈 털어 다시 한번 맞춰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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