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계절과 취미의 관계
빈티지 그릇에 눈을 뜨기 전까지, 나의 취미 생활은 원래 식물 키우기였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유럽이 한참 락다운으로 닫혀있을 때 나는 처음 식물들을 집 안으로 모셔왔었다. 독일살이도 처음이었는데 마침 코로나 때문에 밖에 나가 친구들을 마음껏 사귄다거나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또 날씨는 얼마나 변덕스러운지, 그런데 시월이 지나고서는 시간에 관계없이 일관되게 우중충하고 흐린 하늘에 필리핀에서 햇볕이라곤 너무 많아 문제였던 내가 겪기에는 너무 극단적인 어려움이었다. 회색빛으로 가득한 하늘 색깔이 내 마음의 색으로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는 그 해 생전 처음 그렇게 많은 색색의 조명들과 식물들에 마음이 갔었다.
그렇게 제 발로 식물의 집사를 자처했던 1년, 한 해가 지나고 내게 남은 건 이름만큼이나 목숨을 잘 유지했던 몬스테라와 사막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선인장 몇 그루가 전부였다. 색이 화려하고 예쁜 식물들은 구매하고 나서 살펴보니 건조하고 흐린 독일의 날씨와는 정반대인 해쨍쨍 열대우림 지역의 동남아, 남아메리카 지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렇게 처음엔 모르고 샀던 열대 식물들을 나중에는 식생이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종종 샀다. 인스타에 나오는 유명한 몇몇 식물스타그램 집사님들처럼 내 안에도 내가 아직 모르는 식물 집사의 능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 때문이었는데, 확실히 너무 실낱 같았나 보다.
남들이 보면 그저 식물이 흙으로 돌아가는 것뿐인데 괜히 혼자 정성스레 키웠던 식물들을 지금은 살아있지 않은 낙엽과 같은 상태로 다시 원래 있던 자연으로 보내주며 나는 나 나름의 식물 장례식을 몇 차례 치렀다. 그러고 나니 화원에 가면 또 마음과 달리 빈손으로 오지는 못하면서도 또 다른 한 켠으론 이렇게 해가 쨍쨍한 두 계절만 함께 살고 겨울이면 다시 죽어가는 식물을 키우는 것이 과연 나와 맞는 취미인가 회의감이 들던 차에 빈티지 그릇이 눈에 띄었다.
남편에게 준 선물은 특별한 프린팅 없는 심플한 맛이 멋있는 빈티지 글라스였지만, 빈티지 그릇이 예상보다 빨리 내 마음을 침투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림, 프린팅, 패턴들 때문인 것 같았다.
내 눈을 사로잡은 독일 빈티지 그릇들에는 내가 그동안 그렇게 오랫동안 살리려고 노력했던 세상의 모든 꽃과 식물들이 영원히 살아있는 듯 남아있었다. 그릇 역시 깨진다는 취약점은 있었지만, 내가 잘 관리하고 깨트리지만 않는다면 식물과는 달리 내가 좋아했던 모습 그대로 오랫동안 남아있었다. 심지어 빈티지 그릇은 내가 갖고 있던 시간 전부터, 내 이 전의 주인들이 사용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같은 색과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의미했다. 유럽의 빈티지 그릇들은 서른도 꺾였다고 징징대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서른, 마흔을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잘 보존된 그릇들이 많았다.
내가 필리핀에 살았을 때 그릇들에 관심이 없었던 이유는 어쩌면 그곳에선 내가 좋아하던 식물들이 그리 빨리 죽거나 날씨에 힘들어하지 않아서였을까 싶어졌다. 필리핀에서는 항상 비슷한 온도에 비슷한 계절이라 항상 초록이 풍성한 느낌이었다면 독일에 넘어오고 나니 계절의 변화가 너무나 드라마틱한 느낌이었다. 봄이 되면 일제히 시간에 쫓기듯 사방에서 피어나는 꽃들에 정신을 온전히 빼앗기다가 반짝이는 불빛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아주 잠시 지나가는 무더위가 끝나면 다시 시간에 쫓기듯 가을 단풍과 몇몇 꽃들이 피어나고 찬바람이 불기 무섭게 어둠이 밀려와 침엽수들만이 그나마 회색빛 세상에 초록색으로 스크래치들을 남긴다.
어쩌면 이리 반짝 피고 사라져 버리는 자연의 색 때문에 나는 독일에서 더 빈티지 그릇에 사로잡힌 것인지도 모르겠다. 해가 쨍쨍한 한낮의 짧은 여름이나 아침인지 저녁 인지도 구분이 되지 않는 회색의 칙칙한 오랜 겨울이나 계절에 상관없이 사라지지 않고 내 옆에 계속 내가 반했던 그 모습, 그 색깔 그대로 영원히 남을 것 같은 그 한결같음에. 나는 영원하지 않아서 끌리는 무언가가 있다면, 또 어떤 것은 영원할 것 같아 끌리는 것이 있는데 전자가 식물이었다면 후자는 그릇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독일의 계절은 나에게 끊임없이 영원하지 않은 자연을 보여주니 자연스레 내 마음속에서는 내 공간에서만큼은 영원한 작은 무언가를 간직해두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진 것 같았다. 그렇게 나의 취미가 식물에서 그릇으로 옮겨간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