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처럼 반짝이는 글라스의 세계
나는 엄마의 선물을 고르는 것보다 아빠의 선물을 고르는게 더 어려운 사람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아빠의 특징일 수도 있지만 어찌되었건 그런 선물 고르기 어려운 아빠의 특성이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스며들어 나는 남자들을 위한 선물을 고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런 나에게 결혼하고 나서 두번째로 맞이하는 남편의 생일은 선물때문에 여러모로 고민이 되는 순간이었다. 첫번째 생일은 아직 한번도 생일선물을 준 적이 없었기에 나름 찾아내기가 쉬웠는데, 그 선물을 첫번째로 줘버리고 나니 두번째는 무엇을 선물해야 하나 더 고민이 되었다.
생일이 다가오기 몇 달 전부터 함께 사니 시간을 조금 넉넉히 내어 남편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종종 자신은 아마 수도원에 살아도 잘 살았을거라 이야기 하곤 했는데, 수긍이 갔다. 아마 내가 이 집에 없고, 남편 없이 혼자 살았다면 방 한칸이면 충분했을지도 모를 그였다. 한개를 사도 좋은 것을 사고, 필요한 것을 사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나니 더 신중해지는 선물이었다.
한창 더운 계절의 생일인 그는 생일이 다가올수록 시원한 음료를 마셨다. 회사를 마치고 저녁을 먹고 나면 혼자서 서랍장을 열어 시원한 진토닉 한 잔을 홀짝 홀짝 마셨다. 생각해보니 여름엔 시원한 진토닉, 겨울엔 오크통 향 그득한 위스키를 그렇게 마시는 아이였다. 주류보다는 차를 더 좋아하는 나에게 양주의 종류가 그리 많고 또 계절마다 기분마다 마시고 싶은 종류도 다르다는 것을 그를 통해 처음 가까이 접했다.
가끔씩 나에게도 권하는 그였지만 나는 웃고 말았다. 내 눈엔 어릴적보던 짱구는 못말려의 짱구아빠가 퇴근하고 집에 오면 시원한 캔맥주를 따 마시며 캬 소리를 내는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도 어른 다됐다며 직장인의 고뇌를 위스키, 토닉 한 잔에 씻어내다니 싶다가 떠올랐다.
‘그래, 괜찮은 글라스 잔을 선물하자’
드디어 남편에게 줄 선물을 찾은 것 같아 기뻐하며 몰래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는데, 글라스의 세계는 술의 종류만큼이나 넓고 깊은 듯 했다… 와인잔도 레드와 화이트가 따로 있고 양주도 양주마다 글라스가 따로 있었으며 디자인에 따라 또 이름이 달라지곤 했다. 드디어 선물 줄 것을 찾았다고 좋아했는데 이번에는 글라스의 홍수에 빠진 느낌. 특별한 지식이 없던 나는 결국 취향에 맡겨보기로 했다. 남편이 좋아하는 주류에 맞는 글라스 중 남편이 좋아할 것 같은 디자인의 글라스들을 찾기 위해 여러 이미지들을 살폈다.
그렇게 은하수의 별처럼 많은 글라스들 중에서 내 눈에 쏙 들어오는 별똥별 한 개를 찾기 위해 시작한 글라스 검색. 문제는 한 개를 찾아야 하는데 은하수처럼 예쁜 것들이 많다는 것. 초심은 분명 남편이 좋아할만한 글라스였는데 마음은 자꾸 내 눈에 예뻐보이는 것도 보이기 시작했고, 이러다간 마시지 않던 양주도 글라스를 갖기 위해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 것 같았다.
글라스는 매우 요망한 물건이구나 생각하며 경계심을 가지고 다시 살펴보는데 신기한 점을 하나 더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세컨드 핸드, 빈티지 물건들이었다. 디자인에 반해 클릭해보면 어떤 것은 일반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하는 제품들도 있었지만 어떤 것은 단종이 되어 중고마켓에서만 거래되는 제품들도 있었는데, 독일에는 그런 빈티지 제품이 제법, 아니 무척 많은 듯 했다.
남편 선물 사려고 뭣도 모르고 순진하게 들어섰다가 빈티지라는 늪에 서서히 빠져들게 된 나. 처음으로 주방용품을 좋아하는 남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남편의 생일 선물을 하나 고를 수 있었고, 그를 위한 생일 선물이 그의 손에 고이 도착하고 난 뒤 예상치 못한 나의 본격적인 빈티지 그릇 수집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