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으로 다투는 신혼부부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어떻게보면 내 인생에 있어 처음 제대로 진지한 관계였던 남자친구가 남편이 되고, 또 그 남편이 파란 눈의 외국인이었으니 신혼 초기엔 남편이라는 단어가 낯선지 이 파란눈의 외국인이 내 남편이라는 것이 낯선지 낯선 것 투성이었다. 그런 낯선 사람에게 인간관계에 있어 가장 가깝다 못해 밀접한 단어인 남편이라는 호칭을 쓰는 것도 신기한데 그 신혼을 둘 다 처음 살게 된 베를린이라는 도시에서 시작하게 되었으니 내 주변의 존재와 공간이 모두 낯선 느낌이었다.
우리는 특별히 결혼을 꿈꾸다가 결혼한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남들이 결혼식하면 떠오르는 그 흔한 것들 하나를 제대로 준비한 것이 없었다. 다른 친구들이 결혼을 앞두고 미리부터 모으는 결혼준비 자금이라거나 잔뜩 기대하는 혼수, 스드메, 결혼식장 같은건 정말 미리부터 준비한 사람이나 가능하며, 심지어 그런 준비를 위한 자기만의 이미지, 희망사항, 그림들이 있어야 준비도 가능하다는 것을 결혼을 코 앞에 두니 알 것 같았다. 그런 준비는 커녕 신혼은 이래야하지 않을까 싶은 그림조차 그려둔 것이 없어서, 막상 우리가 함께 신혼집에 들어갔을 때는 신혼집이라는 것이 기숙사에 들어가는 것과 이렇게 별반 다르지 않은 느낌인가에 신기하기도 했다.
대학 기숙사, 이후 자취생활때와 마찬가지로 나의 신혼짐은 독일행 비행기에 실을 수 있는 캐리어 가방 두개. 그렇게 남편과 나는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필요한 의식주의 ‘주’인 머물 공간을 하나 빌렸다. 그 안에 나와 마찬가지로 남편 역시 대학 졸업 후 혼자 자취하면서 갖고 있던 것들과 벼룩시장에서 선물로 내놓은 공짜제품들을 가져와 채워 넣었다.
내가 한국에서 가져온 것이라곤 우선 신혼 1년 사계절 동안 입을 내 옷이 전부였다. 다행히 남편은 평소에도 친구들이 제법 자주 오는지 일인용이 아닌 소수의 사람들이 놀러라도 오면 함께 쓸 여분의 접시와 컵들이 있었고 그걸로 우리의 신혼 살림은 충분했다.
집을 떠난 사람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우리는 어떻게든 함께 살 장소를 찾았고, 그렇게 집이라는 단어가 낯선 건물, 특정 공간에 굳이 집이라는 이름을 붙여 정을 붙여보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서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남편이라는 낯선 존재와 함께, 한 번도 생각지 못한 낯선 나라인 독일에서, 신혼집이라 불리는 낯선 주택에서 그 중에도 가장 낯선 장소는 신기하게도 주방이었다.
주방에는 정말이지 나의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현관에는 하물며 내 신발이라도 있었고, 침실에는 옷과 양말, 욕실에는 내 화장품들이라도 있었는데 주방에는 하나도 없었다. 남편의 주방용품들은 정말 정갈하고 깔끔하게 꼭 필요한 것들만 있었다. 그릇이나 컵은 이케아의 단색, 무색의 제품들이 손에 잡힐만큼만 있었고, 냄비는 프리마켓에서 득템했다며 자랑하는 3가지가 있었다.
대부분의 주방 제품에 대해 남편은 별 말을 하지 않았지만 몇몇 제품을 손에 대면 남편은 티비 드라마에서 본듯한 나긋나긋하면서도 단호한 잔소리꾼으로 변신하곤 했는데, 같이 살기 전까진 전혀 알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남편의 신경을 곤두세우던 그 물품들은 바로 칼세트와 무쇠팬, 그리고 커피 그라인더였다.
처음 칼을 사용했을 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칼질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칼이라 함은, 칼의 사용 가치는 무언가를 자르는 것이었고, 내가 원하는 무언가가 잘 잘렸으면 그만이었다. 칼을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그다지 중요한 일인가 싶었는데 남편은 칼을 잡고 물체를 잡고 손목 스냅이 일정하게 일정한 간격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여줬는데 잡고 있던 칼이 갑자기 무겁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겨우 다시 칼을 잡고 자세를 잡아보려 하는데 이번에는 사실 내가 잡았던 칼보다는 다른 칼을 사용하는 것이 고기에는 더 낫다며 겨우 자세를 잡아본 칼을 가져가고 다른 칼을 쥐어주는 남편. 칼집에 칼이 여러가지길래 나는 그저 칼이 많구나 했는데 칼에도 종류가 다르고 그 쓰임이 다르다니. 엄마가 요리할 때 항상 말씀하시던 “그냥 이거 저거 요거 어느 정도 적당히 넣어서 자알 마무리하면 되지. 쉽지?”라고 해서 어안이 벙벙해지기 쉽상이던 주방에서 갑자기 뭔가 너무 복잡하고 정해져있고 어려운 주방으로 변한 것 같았다.
계란 후라이를 하나 해먹고 싶을 뿐이었는데, 계란을 뒤집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수저로 계란을 뒤집으려는 순간 남편의 미간이 찌그러지는 것이 먼저 보였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인가 고민해봤지만 도통 알 수 없는 문제인 듯 싶었는데 이번엔 내가 손에 쥐고 있던 그 숟가락이 문제였다. 이런 일반 수저는 스테인레스 냄비 같은 것에는 문제 없지만 이런 프라이팬에서 사용하면 코팅이 벗겨져 오래 사용하지 못한다며 나에게 나무 수저를 다시 쥐어준다.
주방에서 들었던 남편의 말은 가만히 생각해보면 틀린 것이 하나도 없는 말이었음에도 그렇지 않아도 낯선 공간인 주방에서 나를 더 고립시키는 느낌을 들게 했다. 틀린 말은 하나 없었지만 그렇담 지금껏 이 오랜시간 그 틀린 행동들을 해왔음에도 잘 살아왔던 나는 도대체 뭐지? 결혼준비란 단순히 신혼물품을 사서 채우는 것만이 아니라 그 각각의 제품을 사용하는 방법들을 맞춰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괜히 신혼부부들이 정말 자잘한 치약 짜는 방법으로, 화장실 물내리는 방법으로, 설거지하고 그릇을 말려두는 방법처럼 자질구레한 일상으로 말다툼을 하고 감정이 상하는구나를 남편의 주방용품을 통해 나역시 경험하는 듯 했다.
컵은 그냥 액체류를 담아 마실 수 있는 둥글게 파인 그릇이라 생각했는데 남편의 컵은 와인잔, 위스키잔, 꼬냑잔, 맥주잔, 샴페인잔, 커피잔, 티잔 등등등으로 나뉠 수 있다는 것. 칼과 팬과 컵도 모자라 주방에는 종류를 나누자면 책은 한 권이라 말할 수 있지만 사실 그 책 속의 페이지는 수십, 수백장으로 나눌 수 있는 것처럼 무궁무진하다는 것에 놀랍고, 그 무궁무진한 세계를 나는 어쩜 책, 칼, 팬, 컵처럼 한 단어의 사용가치로만 바라보고 지금껏 잘도 살아왔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라웠다.
그럼에도 나는 큰 불편없이 지금까지 나름 잘 살아왔다 생각했고, 그래서인지 오히려 단순한 소품과 방식으로 삶과 생활 공간 역시 거품없이 잘 꾸려온 것 같았는데 굳이 저렇게 복잡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거리를 걷다보면 참 신기하게도 남편의 발을 멈추게 하는 곳, 주방용품 가게들. 티비를 보면 보통은 여자들이 주방용품 가게에 한참을 머물던데. 우리는 오히려 남편이 주방용품 가게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가게에 들어서면 나는 도대체 저런 그릇, 냄비가 뭐가 좋아서 저렇게 들떠있을까 고개를 갸우뚱하며 오히려 그릇을 바라보는 남편을 관찰하며 가게 밖에서 기다리곤 했다.
그 옛날 DJ DOC 노래 가사처럼 젓가락질 못한다고 해서 밥을 못먹는 것도 아닌데. 독일에 오니 젓가락질 대신 핀잔을 들을 일이 주방용품들이 한두개가 아니라는 것에 아찔해졌다. 그릇, 저런게 뭐라고 이렇게 비싸고. 칼, 저런게 뭐라고 이렇게 저렇게 썰어도 썰리면 잘된거지 뭐가 그리 종류도 많고 써는 방법도 다른지. 팬, 저런게 뭐라고 계란 후라이 먹고 싶을 때 구워 먹으면 되는거지 어떻게 관리하고 놓고 무슨 재질의 도구와 사용하는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그렇지 않아도 가깝지 않던 나와 주방의 거리가 덕분에 한국과 독일 거리마냥 멀어진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