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마음에 두지 말아

베를리너의 첫인상

by 따뜻한 선인장

베를린 사람들은 차갑고 직설적이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 말을 듣지 않고 베를린에 왔다면 어땠을까 싶다. 하지만 이미 그 말은 들어버렸고, 기왕에 이미 들어버린 것, 그것도 베를린의 일부일 수 있다며 노트에 받아 적어보기로 했다. 더불어 또 다른 내용들은 없는지, 혹은 그 말은 편견에 가득한 말이었는지 또는 진짜로 의미가 있는 말인지 확인해보자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내가 처음 베를린에 와서 베를린에 있는 사람과 처음 말을 섞게 된 순간은 바로 알렉산더 플라츠 역에 있는 한 고객센터였다. 베를린 돔과 베를린 티브이 타워, 박물관 섬이 주변에 있는, 현지인들도 관광객들도 매우 많이 다니는 도심 한 군데에 있는 지하철역 매표소였다.


기다란 줄 뒤에 서서 내 차례가 오기까지 기다렸다. 영어만 할 줄 아는 내게 들려오는 독일어는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나를 더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한참을 기다렸다 드디어 나이가 조금 있어 보이는 아주머니 앞에 서게 되었다.


내가 그 분에게 묻고 싶은 질문은 남편이 준 교통카드가 회사에서 준 것인데, 이 카드가 이미 등록이 되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아직 등록이 안되어 따로 해야 되는지 카드의 상태를 알아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미소를 가득 품고 영어로 정중하게 물어보는데, 영어가 들리자마자 아주머니 표정이 아주 맛없는 음식을 입에 댄 것처럼 바로 찌푸려졌다. 그 불쾌한 표정이 너무 바로 면전에 드러나서 나는 질문을 말하기도 전에 바로 독일어가 아니라 영어로 물어보게 돼서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이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가 상황을 설명함에도 불구하고 아주머니의 인상은 더 찌푸려졌고 오히려 화를 내는 상황이 발생했다. 사실 이 카드를 물어보게 된 이유는 바로 내가 독일어를 배우고자 어학원을 다니려면 교통카드가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독일에 온지 몇 주가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내가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독일에 살게 될지 알수도 없는데 나에게 이렇게 독일어를 못한다고 핀잔을 주는 상황이 무척 난감했다. 독일에 와서 독일어도 못하고, 왜 독일어로 물어보지 못하냐고 쯧쯧 혀를 차며 손짓으로 나가라는 표시를 하는 아주머니를 보며 새삼 내가 참 다른 세상에 와있구나 싶었다.


나는 그동안 남아공과 인도, 필리핀과 다른 동남아시아 지역들을 주로 다녔고 살았지만, 어느 한 곳에서도 내가 영어를 쓴다고 이렇게 문전박대를 당한 적은 없었다. 물론 그 나라에 산다면 그 나라의 언어를 배워야 하는 것이 필요했고 또 그렇게 했지만, 누구에게나 이제 막 도착해서 그 나라에 대해 알아가고 배워가는 시작점이라는 것이 있었다. 내가 이제 이곳에 도착했으며 언어를 배우고 있는 중이라 아직 현지언어가 서툴다고 설명을 하면 이내 이해해주던 것이 그동안의 해외생활 경험이었다. 내가 다녔던 지역들이 워낙에 미소가 미덕이라고 생각하고 또 손님이면 더 챙겨주는 문화권이었던지 몰라도 독일, 특히 베를린의 첫인상은 8월의 여름 끝자락에도 얼음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나름 세계여행도 여러 번 했고, 또 다른 나라 등지에서 종종 살아보기도 했지만 이런 경험은 생전 처음이라 너무 당황해서 카운터를 나와버리고 말았다. 덩그러니 남겨진 손 안의 카드를 두고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었다. 분명히 서비스 센터였고, 워낙 관광지 한가운데에 있는 곳이다 보니 아무리 독일이라고 해도 분명 영어 정도는 받아줄 수 있을 법 한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나중에 어학원에 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단순히 내가 독일어를 못하고 외국인이라서 그렇다기보다는 아마 그냥 그날, 그 순간, 그 사람의 기분이 나빴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니면 내 앞에 혹은 앞 앞에 있던 손님과 이미 안 좋은 일이 있었고, 그 기분이 나에게까지 남아 전달되었던 것일 수도 있다 했다. 그래서 친구들이 내게 해준 말은 그 말을, 표정을, 기분을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고 이야기해줬다.


문화라는 것을 하나로 단정 짓는 순간 수많은 것들을 뒤틀거나 빼먹어버리는 오류를 만들기도 해서 문화라는 것은 함부로 정의하기 어렵고 또 그래서도 안된다는 말을 나는 인류학을 배우면서 수도 없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그 나라에, 그 문화권에, 그 나라 사람들과 마주하다 보면 그전에 내가 살았던 나라와 또 내가 태어난 나라와는 사뭇 다른 새로운 나라의 강렬한 이미지가 겹쳐 문화라는 것은 정말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그렇게 기분 나쁜 감정을 다른 사람은 물론 화를 나게 한 당사자에게도 숨김없이 드러내면 그 사람은 자신의 감정도 조절하지 못하는 못 배운 사람 혹은 아직 어리숙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그런 기준으로 직설적으로 말하고 감정을 숨기진 않는 베를린 사람들을 해석한다면, 이곳 사람들은 내가 한국에서 상상했던 독일이라는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한국에서 독일의 거리만큼이나 멀게만 느껴질 법 했다. 서비스센터니 분명 고객이 물어보는 질문에 아는 만큼은 적어도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데 자기의 기분이 나쁘다고, 혹은 물어보는 사람이 영어를 사용한다고 이렇게 매몰차게 돌려보내는 것이 그냥 베를린에서는 그럴 수도 있는 일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의 행동에서 바로 인류학자들의 질문은 시작된다. 어딘가 낯선 곳에 갔는데 이유는 아직 알 수는 없지만 나에게 낯선 느낌을 주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순간, 인류학자들은 질문한다. 왜 이 사람들은 이런 행동을 하고, 또 나는 이해를 하기 어려운 것을 이곳 사람들은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일까? 나에겐 왜 이런 문화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일까?


인류학자들이 그러듯 나는 이제 동남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내 현장을 옮겨왔다. 물론 이번에는 학업이나 일이 아닌 국제결혼으로 인해 독일에 오게 되었지만, 사실 국제결혼만큼이나 서로 다른 문화와 시스템에 가장 깊고 가깝게 접할 이유도 드물 것이다. 이제는 독일, 그중에서도 독일 사람들도 베를린은 독일이 아니라 베를린이라고 말하는 그 베를린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동남아시아를 읽는 안경은 이제 한쪽에 내려놓고, 베를린을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안경이 필요했다.


천하에 차가운 사람이 기분대로 뱉은 막말에 마음 상하지 않고, 이곳 사람들이 말하듯 그냥 그때 그 사람 기분이 좋지 않아서 내뱉은 말이라서 마음에 담아두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에겐 베를린에 대해, 베를린 사람들에 대해 적응할 시간이 조금 더 많이 필요한 것 같았다.


인종차별인지 정말로 그냥 개인의 기분, 말투의 차이인지 아리송한 이 유럽 살이. 덕분에 독일어를 배우는 것이 무섭고 싫어지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기록들을 차곡차곡 쌓아 베를린에 대한 이 첫 이미지가 정말이었는지 혹은 사람들의 편견, 혹은 그 안내소에 그날따라 기분이 좋지 않던 그 아주머니의 개인적인 상태였는지 이해해보고 싶다. 베를린에서의 에스노그라피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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