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남자 옆 차도르를 입은 여자

베를린의 한 베트남 쌀국수집 창밖 풍경

by 따뜻한 선인장

베를린에 처음 와서 놀랐던 것 중 하나는 바로 중국 음식점보다 많은 베트남 음식점이었다. 많은 나라들을 여행했던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외진 곳이라고 하더라도 크던 작던 하나씩은 있던 것이 중국 마켓이나 음식점이었다. 베를린에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베를린에는 눈에 띄게 베트남 음식점이 많았고, 또 아시아 마트라고 해서 한중일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식품만이 아닌 동남아시아, 남아시아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식품점들이 있었다.


같은 아세안, 동남아시아에 포함된 필리핀에서 먹었던 베트남 쌀국수보다, 아니 한국에서 먹었던 쌀국수보다 훨씬 베트남 현지식의 맛을 가지고 있는 베를린의 베트남 음식점. 덕분에 나는 베를린에 살고부터 찬바람이 불어 진한 육수의 국물을 먹고 싶을 때면 베트남 음식점을 자주 찾게 되었다.


하루는 점심시간에 혼자 쌀국수가 먹고 싶어 한 베트남 음식점에 갔다가 도로가 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음식을 주문하고 창 밖을 보는데 사람들이 지나갔다.


음식점 주변에 커다란 터키 마켓이 있어서 그런지 머리만 스카프처럼 가린 히잡부터 차도르, 니캅을 한 여성들이 종종 스쳐 지나갔다. 나이가 지긋한 것처럼 보이는 푸근한 인상의 차도르를 한 아주머니 두 분이 창가의 바깥쪽에서 안부 인사를 나누는 동안, 그 뒤에는 자전거를 탄 어떤 젊은이가 자동차들 옆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음식을 기다리며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창 밖의 이 풍경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문득 뭔가 낯선 기분이 들었다. 이 낯선 느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생각해보는데 자전거를 탄 젊은이의 옷차림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전거 위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만 해도 분명 여느 남성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는데 자전거 페달에 올린 다리를 보니 스타킹과 함께 스커트로 가려져 있었다. 물론 남성들이 치마를 입는 전통 의상들이 전 세계적으로도 제법 있는 걸 알지만, 그가 입은 그 치마는 그리 전통적이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보통 여성들이 입는 평범한 치마였다. 단, 평범한 남성이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평범할 수 있는 치마가 낯설게 느껴진 것이었다.


베를린에서도 특히 이슬람계 사람들이 많이 산다는 이 지역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힙하고 자유로운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래서 독일 내의 어떤 사람들은 이 지역을 유난히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경우도 있는 반면, 다른 독일 지역과는 사뭇 다른 중동 특유의 따뜻하면서도 경직되고 또 힙스터들과 무슬림의 서로 다른 분위기들이 섞인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후자인 것 같다.


내 앞에는 차도르를 한 아주머니 두 명이 수다를 떨고 있고 그 뒤에는 옷에 가려지지 않은 피부 사이사이에 타투와 피어싱을 한 남성이 치마를 입고 자전거를 타고 갔다.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같은 공간에 살아가고 있었다.


그 사진 같은 풍경을 보며,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대학원에서 배우고 또 해외살이를 통해 생각해오던 다양성에 대해 떠올렸다. 그리고 베를린 회사에 다니는 친구에게 들었던 한동안 회사에서 한창 화두가 되었다던 diversity & inclusion이라는 주제도 떠올랐다.


다양성과 포용성이라는 가치는 21세기에 들어 참 자주, 많이도 들었지만 그만큼 껍데기처럼 비어 있는 느낌의 주제도 흔치 않은 것 같았다. 회사마다 지자체마다 다양성과 포용성을 높이기 위한 세미나나 워크숍을 연다고 하지만, 얼마나 높아졌는지는 미지수다.


세상의 많은 나라들에서는 치마를 입은 남성이나 차도르나 부르카를 입은 여성이 지나가면, 사람들은 청바지나 티셔츠를 입은 다른 사람들처럼 그 사람들 역시 수많은 옷가지 중 하나를 입었다는 사실 외의 수많은 의미를 부여해 버린다. 심지어 그 사람과 말과 눈빛을 섞어보기도 전에 말이다.


물론 무엇을 입고, 마시고, 즐기는지를 알 수 있는 한 사람의 취향과 취미가 그 사람에 대한 많은 정보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그 정보는 사실 우리가 자주 접하고 보는 매체들을 통해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한쪽만 보여주는 약점이 있다. 나 역시 내가 가지고 있던 지식이나 정보라는 것이 한쪽으로만 치우쳐져 있었다는 것을 베를린의 거리를 걷다 보면 종종 깨닫게 될 때가 있었다.


옷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힙스터들과 옷으로 자신의 신앙을 실천하는 무슬림들이 함께 출퇴근을 하고 슈퍼에서 장을 보는 곳에 있노라면, 나는 유럽에 있으면서도 중동에 있는 느낌이면서도 중동이라면 절대 볼 수 없을 것 같은 풍경 때문에 다시 유럽에 와있는 오묘한 기분을 종종 경험한다.


처음 다양성과 포용성을 배우고 생각했을 때는 나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을 알아가고, 알아가면서 나중에는 이해할 수 있는 무언가라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베를린을 오기 전, 인류학이라는 대학원 과정을 마쳤을 때 내가 깨달은 것은 세상에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정말 엄청나게 다른 천차만별인 다름이 있을 수 있고, 알아간다 하더라도 이해하는 방향이 아닌 오히려 알게 되어 더 멀어지는 느낌의 다름도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것들을 더 많이 알게 되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라면 나는 도대체 이 다양성과 포용성이라는 주제를 왜 배웠고, 다른 사람들은 왜 배워야 하는 건가라는 멘붕과 함께 날아온 곳이 바로 베를린이었다.


지금까지 머물었던 어떤 도시들보다 정말 조금조금씩 모든 인종과 국적과 젠더의 사람들을 섞어 놓은 듯한 베를린에서 나는 그렇게 종종 놓아버렸던 그 인류학의 주제를 떠올려본다. 인류학자들의 필드워크처럼 한 발짝 뒤에서 거리를 두고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한 프레임안에서 상호작용을 하는지 살펴본다.


이론적으론 알아가서 이해하고 그래서 가까워지는 것이겠지만, 이곳에선 가끔 알아가는 것이 없이도 함께 살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 차도르를 입은 아주머니가 문신을 하고 짧은 반바지를 입은 게이를 이해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해하지 않고, 알지 않더라도 같은 동네 주민으로서 같이 출퇴근을 하고 길거리에서 인사를 나눌 순 있었다. 종교나 옷차림이나 음식에 따라 그 사람을 미리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하고, 저녁을 만들기 위해 장을 봐야 하고, 그렇게 오고 가는 길에 마주치면서 그들은 인사를 나누고 이웃인 것을 알아간다.


예전에는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더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우리가 이웃이고 먹고살기 위해 수많은 스토리 끝에 지금은 이곳에 살고 있는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 외에 더 이상 알아야 하는 것이 필요한가 싶었다. 치마를 입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남자와 차도르를 입고 수다를 떨고 있는 아주머니들 모두 자신을 충분히 표현하면서도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서로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베를린에 처음 왔을때 들었던 이야기들 중 하나가 바로 베를린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그 말이 처음에는 정이 없고 차갑게만 느껴졌는데, 시간이 지나고보니 어쩌면 그것이 이 다양성을 유지하고 또 의도치 않게 포용적으로 보인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다양성도 다양성이라는 이름처럼 다양한 의미가 있겠지만, 포용성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하는 포용이 아닌 싫지만 혹은 상관없어서 함께 살다보니 포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포용성도 있지 않을까?


괜히 다 알지도, 다 이해하지도 못했는데 포용이라는 이름으로 획일성을 강요하면서 계속 다투기 보다는, 오히려 다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지만 그래서서로 다르지만 다른채로 함께 살며 이루는 포용성도 있지 않을까?


다양성에 대한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사람들이라면 다른 정책들과 다양성 정책이 융합되는 부분에서 각자가 가진 다른 부분 때문에 정책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다름에 대해 자세히 알아가고 이해할 필요가 있지만, 일상을 살아가며 다양성을 마주하는 사람들에겐 살아가는 것만큼 강력하고 실제적인 경험이 있을까 싶었다.


다양성과 포용성이라는 주제는 앞으로도 계속, 아마 살아있는 동안 새로운 무언가와 마주칠 때마다 언제나 또 다른 생각들을 더해갈 주제이겠지만, 나는 베를린의 한 베트남 음식점에서 쌀국수를 먹으며 바라본 이 창문 밖 풍경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