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다시 신뢰를 얻기까지
늦은 밤, 남쪽의 시댁에서 기차를 타고 베를린에 도착한 밤이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라 버스와 지하철도 모두 끊겼고, 그래서 택시를 타야 하나 싶었는데 야간 버스가 마침 있었다.
서둘러 기차역을 나와 야간 버스 정류장을 찾는데, 평소에는 거의 타보지 않았던 버스라 조금 헤매었다. 겨우 버스 정류장을 찾고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데, 마침 버스 정류장 버스 시간표 앞에서 누가 봐도 이 버스가 확실히 목적지에 가는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는 표정의 한 청년이 서있었다.
직접 물어보지 않는 이상 베를린처럼 다국적 도시에서는 어쩔 수 없이 겉모습이 주는 힌트들로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추측해볼 수밖에 없다. 그는 코카시안 계인 남편보다는 오히려 아시아계인 나와 닮아 보였는데, 짙은 인상이 동북아시아보다는 동남아시아에서 자주 보던 사람들의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버스 시간표를 한번 보고 주변을 둘러보다 나와 눈을 몇 번 마주치자 나는 그가 혹시나 도움이 필요한가 싶어 영어로 무슨 일 있어요?라고 물었는데, 영어로는 아무래도 대화하기가 어려운 것 같았다. 옆에 있던 남편이 덧붙였다.
“아니면 독일어나 러시아어나…”
러시아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그는 눈에 띄게 기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때부터 남편과 그는 쭈욱 러시아로 거침없이 대화를 이어 나가서 나는 한 발짝 물러났다. 그가 필요했던 정보를 얻고 난 뒤에도 그는 남편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물어본 것 같은데, 그는 남편이 어떻게 러시아어를 잘하는지 놀란 것 같았지만, 사실 나는 그가 어떻게 러시아어를 더 잘하는지 놀라웠다. 러시아는 정말 큰 대륙이고 거의 모든 인종이 다 있다고 하더니, 정말인가 보다 하고 뒤에서 혼자 신기해하던 참이었다.
그렇게 우리가 기다리던 버스가 왔고, 그는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을 연신 남기며 각자 버스에 탔는데도, 빈자리마저 신기하게 근처만 남아 있어 조금 떨어져 앉게 되었다.
자리에 앉은 뒤, 나는 남편에게 그도 러시아에서 왔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남편은 말했다.
“우크라이나 사람이더라고.”
순간 매일 뉴스로만 보던 이슈가 갑자기 내 삶 속에 책갈피처럼 쑥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지금 독일은 코로나 이후론 거의 매일같이 우크라이나 전쟁이 8시 메인 뉴스의 첫 번째 꼭지를 장식하고 있다. 그런데도 특별히 집 밖을 별로 나가지 않는 나는, 뉴스에선 매번 마주해도 막상 일상에선 거의 마주할 일이 없어서 세상에서 러시아 사람들을 제외하고 러시아어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들 중 우크라이나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지금 그들을 여기까지 떠나게 만든 나라가 러시아이고 그들을 받아주는 나라가 독일이고 도와주는 나라는 미국이었지만, 언어로 따지만 고국을 떠난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언어는 우크라이나어를 제외하면 아이러니 하게도 영어도 독일어도 아닌 러시아어인 것 같았다. 한글하면 우리나라, 우리나라 하면 한글이 떠오르는 나에게는 방금 이 우크라이나 청년이 웃으며 러시아아로 남편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처음엔 앞뒤가 잘 맞지 않는 것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영어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언어도 아닌 한국어를 외국인이 하는 것을 타지에서 들을 때 반가움을 남편을 만난 그의 표정에서 잠시 엿볼 수 있던 것 같았다. 그래서 마음이 더 슬펐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아마 한 해 전까지만 해도 원래는 이런 관계가 아니었을까 어렴풋이 떠올려보았다. 남편이 말을 이어갔다.
“우크라이나에서 넘어와서 지금은 독일 남쪽에 거처를 가지고 있는데 비자 문제 때문에 서류 업무가 있어서 오늘 급하게 베를린에 올라온 거래.”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저 길에서 마주친 이방인이기만 했던 그 청년이 갑자기 뭔가 더 신경이 쓰여 그를 한 번 쳐다보려고 고개를 돌렸는데, 그가 바로 뒤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서있었다. 내리는 버튼을 누르려는데 남편이 그를 막았다. 그는 다시 남편에게 진짜 고맙다고 말을 하곤 그대로 서있었다.
“다다음 정거장인데 미리 내리려고 해서 알려줬어.”
이윽고 그가 내려야 하는 정거장이 다가오자 우리는 그에게 눈짓을 건넸고, 그는 버스에서 내렸다. 그가 가야 하는 방향으로 가는지 창문 밖을 살펴보니 그가 환한 미소로 우리를 향해 크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남편과 나도 따라서 두 손으로 인사를 건넸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커지면서 한국에서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다니엘 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독일 사람들이 다시 유럽 사람들의 이웃으로 돌아가기까지,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과 진심 어린 반성이 필요했는지 러시아 사람들이 알았다면 이 전쟁을 이렇게 시작하진 못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전쟁이 일어나는 본토를 떠나 세상 밖으로 나가면 같은 언어를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다시 러시아와 우크라니아 사람들이라는 것이 더 가슴 아프고 씁쓸하다. 러시아어는 그나마 우크라이나 외에 예전 구동독 지역의 사람들도 사용할 수 있는데, 생각해보니 한글은 우리나라와 북한뿐이라는 것도 떠올랐. 어쩌면 다른 언어를 사용해서가 아니라 같은 언어를 사용해서 더 상처가 되고 지워지지 않는 전쟁을 할 수 있는 걸까. 부디 같은 언어가 서로를 할퀴고 죽이는 도구가 아니라 남편과 그 버스에서 만난 청년처럼 서로 도와주고 웃을 수 있는 도구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