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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Oct 04. 2022

대항해 시대의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힌트를 얻은 여행루트

포르투갈 세로 모양 해안선 여행루트

포르투갈을 간다면 어디를 가야 할까. 루트를 짜 보기 시작했다. 우선 외국에서 포르투갈로 들어가다 보니 시작점과 종점은 비행기가 다니는 곳이어야 했다. 비행 목적지에 특정 도시 이름이 아닌 포르투갈을 집어넣었다.


내가 아는 포르투갈이라고는 리스본과 포르투 뿐이었는데 국제공항에 꽤 여러 곳이 더 나타났다. 나머지 공항들은 다 어디에 있는지, 포르투갈에 내가 모르는 국제공항이 있을만한 큰 도시들이 이렇게 많은지 신기해서 하나둘 살펴보기 시작했다. 내가 살고 있는 독일에서 가는 주요 포르투갈 공항은 리스본, 포르투, 파로 이 세 공항이었는데 비행기 가격도 모두 비슷했다. 찾아보니 포르투는 기다란 포르투갈 국토에서 북쪽에, 리스본은 중앙에, 그리고 파로는 가장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리스본은 포르투갈의 수도라 유명하고, 포르투는 실제적인 부가 모인, 포르투갈에서 예쁘고 잘 사는 동네로 유명하다면 파로는 어디인가. 지도를 따라 살펴보니 포르투갈 남쪽에 대서양에서 지중해로 들어오는 지브롤터 해협 문 앞까지 이어진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아름다운 하이킹 길과 해변으로 유명한 지역의 관문이었다. 보통은 포르투갈의 남동쪽 파로로 들어가서 그 길을 쭉 따라 서남쪽 끝인 라고스까지 하이킹을 하고 해변에서 휴양 하고 보트 투어를 하는 듯했다.


그러면 이 세 도시를 제외한 낯선 이름의 나머지 공항들은 다 어디에 있는 것일까. 마데이라, 폰타 델가다, 피코 섬, 포르토 산토 섬 등 하나하나 공항 이름을 직접 찾아보니 이곳들은 대서양에 있는 작은 군도의 섬들의 이름이었다. 과거 대항해시대부터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를 넘나들며 적극적인 바닷길 탐색을 하다 찾게 된 섬들이 지금까지 포르투갈령으로 남아 있는 듯했다. 우리나라에서 괌이나 사이판 정도처럼 포르투갈과 이 섬들은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제법 떨어져 있는데, 그중에서도 그나마 가장 잘 알려진 섬이 바로 마데이라였다.


어디서 들어본 듯,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는 아리송한 느낌의 이 섬은 특히 와인이나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한두 번 정도 스쳐 들었거나 무척 가보고 싶은 섬일지도 모른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포르투갈 와인 중에서도 외국에 가장 많이 알려진 포르투 와인과 함께 유명세를 갖고 있는 와인이 바로 마데이라 와인이었다. 또한 와인은 몰라도 축구에 빠진 분들이라면 태어나 한 두 번이 아닌 매해 들어봄직한 축구선수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선수가 바로 이 작은 섬 출신이었다.


지도에서 보면 마데이라 섬은 포르투갈에서도 상당히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남쪽에 위치해 있어서 오히려 모로코나 서사하라에 속할 법한 섬처럼 보인다. 워낙 작고 동떨어져 있어서 어느 정도 지도를 확대해서 보지 않는 이상, 구글 지도 위에서도 그저 스쳐 지나가기 쉬운 섬인데, 그런 섬마을에서 호날두가 태어났다니. 축구는 잘 알지 못하지만 축구가 아니더라도 워낙 사람들의 입에 웬만한 연예인보다 더 자주 오르내리다 보니 특별히 좋아하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그가 포르투갈, 그중에서도 마데이라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그의 유명세를 타기 이 전의 삶이 새삼 더 궁금해졌다.


리스본과 포르투와 파로 이외의 포르투갈 공항은 대부분 대서양 위의 작은 군도의 섬들이란 사실을 알고 나자, 선택지는 세 가지로 좁혀졌다. 리스본, 포르투, 그리고 파로. 3주에 걸쳐 이 세 곳을 모두 여행할까 숙소와 여행루트를 이리저리 굴려봤지만, 결국에 하나는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남편과 내가 함께 떠나는 여행이다 보니 비행기 값을 제외하더라도 3주 동안의 숙박비만 가장 저렴한 숙소라도 2백만 원이 다 되어 갔다. 또한 파로에서 라고스까지 남쪽 해안선을 따라 걷는 하이킹 길만 해도 운동이 되는 코스라서 해안선 트래킹 코스 이후 리스본과 포르투의 여행을 제대로 즐길 체력이 있을지도 고민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곳을 가기보다 천천히 가장 먼저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두 도시 주변을 중심으로 포르투갈을 알아가기로 했다. 리스본으로 들어가서 포르투로 돌아오는 기본적인 여행 루트 위에 그 두 도시를 잇는 중간 기점들로 페니체, 나자레, 아베이루를 둘러보기로 했다.


리스본은 테주강, 포르투는 도루 강이라는 커다란 강물들이 대서양과 만나는 하구에 위치해 있다. 리스본과 포르투 말고는 특별히 아는 곳이 포르투갈에 없다 보니 나머지 세 곳을 찾게 된 계기는 순전히 지도 덕분이었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대항해 시대에 희망봉까지 새로운 해안길을 발견했던 방법이 바로 해안선을 따라 항해를 했다는 것이었다. 구글 지도는커녕 세계지도, 아니 제대로 된 대륙별 지도도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던 그 시대에 사람들은 김정호 선생님처럼 직접 발로 걸어가면서 지도를 만들거나, 배를 탄 사람들은 배를 타고 해안선을 보며 땅의 모양과 거리를 종이에 옮겼다.


나는 21세기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심지어는 종이를 펴볼 필요도 없이 핸드폰 화면 위로 손가락 한 개를 굴리며 세계 모든 나라의 해안선을 따라가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리스본이라는 지도 위의 점을 시작으로 선으로 이어지는 지도 여행을 시작해보기로 했다. 리스본이 있는 해안선을 구글 지도에서 크게 확대한 뒤, 그 해안선을 따라 조금씩 위로 올려보다가 마치 작은 종기처럼 포르투갈 해안선에 톡 튀어나온 작은 반도가 하나 눈에 띄었다. 그곳이 페니체다.


페니체 지역을 확대해보니 뭔가 거대한 해안 절벽길이 이어진 하이킹 루트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게다가 페니체 앞바다를 살펴보는데 포르투갈 앞바다에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던 작은 섬 하나를 발견했다. 정말 포르투갈 해안가 앞에는 섬들이 없나 살펴보니 정말로 없었다. 칠레만큼은 아니지만 국토 면적 대비 기다란 나라 중에 손꼽히는 포르투갈 해안가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섬이라니. 찾아보니 해양보존 지역으로 지정된 벨렝가라는 섬이었다. 어찌 보면 대서양 내부에 있는 포르투갈령 군도들을 제외한, 포르투갈에서도 가장 서쪽에 위치한 섬이 바로 이 벨렝가섬이라는 것에 나는 얼른 내 여행 리스트에 페니체와 벨렝가섬을 추가했다.


그렇게 페니체에서 다시 해안선을 타고 쭈욱 올라가다 어디서 들어봄직한 이름의 동네인 나자레가 나타났다. 순간 성경에 나오는 그 예수님이 태어난 도시 나자레인가 했더니, 언젠가 얼핏 들었던 기나긴 해변과 세계에서 가장 높은 파도가 친다는, 그래서 스릴을 즐기는 서퍼들의 낙원으로 불린다는 곳이 바로 이 나자레였다.


필리핀에서도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섬들을 종종 듣긴 했기에 나자레도 그런 곳들 중에 하나일까 싶었다. 하지만 필리핀은 마치 등산객들에게 아름다운 명산들이 많은 곳이라면, 나자레는 K2나 안나푸르나처럼 산을 즐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내놓을 수도 있는 스릴과 모험을 좋아하는 서퍼들에게 사랑받는 곳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파도이길래 서핑계의 K2일까, 궁금해져서 나자레도 여행 바구니에 담았다.


다시 나자레에서 조금씩 해안선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포르투가 나와버렸다. 리스본과 페니체, 나자레와 포르투까지, 부족한 여행루트는 아니었지만 뭔가 뭔가 조금은 아쉬운 느낌. 그래서 다시 한번 해안선을 따라 하나하나 지명 이름들을 살펴보는데 아베이루라는 곳이 나타났다. 포르투갈의 베네치아 같은 수식어들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베이루는 베네치아의 상징 중 하나인 곤돌라를 운행하는 운하가 있었다. 또한 사람들이 포르투에서 당일치기로 자주 가는 스트라이프 무늬의 어부들의 마을인 코스타 노바가 가까운 도시이기도 했다. 기왕 가는 김에 당일치기보다는 여유 있게 이틀 정도를 머물며 아베이루와 코스타 노바 모두 살펴보기로 했다.


이렇게 그 옛날 포르투갈 사람들의 항해 방법을 조금 흉내 내어 포르투갈 세로 모양 해안선 여행 루트를 완성했다. 리스본과 포르투라는 두 점에서 시작된 여행의 스케치가 리스본, 페니체, 나자레, 아베이루, 포르투라는 기다란 선으로 늘어나면서 뭔가 더 알찬 느낌이 되었다. 포르투갈 여행이 기다려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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