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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Oct 10. 2022

리스본 외곽 버스에서 포르투갈에 대한 조각들을 맞춰보다

리스본 첫인상

리스본에 처음 도착한 날은 9월의 셋째 주 화요일이었다. 남편과 둘이 각자 배낭 하나씩만 매고 떠난, 그야말로 배낭여행의 시작이었다. 그 배낭 하나를 싸는데도 여행을 떠나기 전 날 밤, 몇 번을 가방을 쌓다가 다시 풀기를 반복했다. 베를린의 날씨가 너무 추웠기 때문이었다.


포르투갈로 떠나기 전 날까지, 갑자기인지 앞으로 가을 없이 이렇게 쭉 겨울 날씨로 넘어갈지 알 수 없을 정도로 9월의 베를린은 추웠다. 깊이 넣어두었던 내복까지 미리 꺼내 입었던 터라, 9월의 포르투갈 날씨는 아직 물놀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따뜻하다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아무리 포르투갈이라고 하더라도 베를린과 같이 유럽에 붙어 있는 나라 아닌가. 포르투갈로 떠나기 전, 베를린의 밤 온도가 6도였다. 작은 가방에는 스웨터 3장만 넣어도 이미 가득 불러왔다. 따뜻한 옷을 챙겨갈까 아니면 정말 사람들 말대로 여름옷을 챙겨갈까 수십 번을 고민하다 반반씩 챙겨가기로 했다. 가을 옷과 여름옷의 두께가 달랐기에, 나는 가을 옷 한 벌에 여름옷 두 벌을 작은 배낭 안에 구겨 넣었다.


한국에서 포르투갈로 넘어오는 것은 당연히 먼 여정이겠지만, 베를린에서도 리스본까지 거의 4시간이 걸리는 만큼 먼 곳인지는 몰랐다. 한국으로 예를 들면 한국에서 필리핀까지가 포르투갈에서 독일까지의 거리와 얼추 비슷했는데, 가까운 것 같지만 비행시간으로 4시간 거리는 같은 아시아라도 동북 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가를만큼 제법 먼 곳이다.


프랑스나 영국,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체코 등 웬만한 유럽의 유명 여행지가 독일에서는 한두 시간 내외의 거리라 3시간 40분의 비행시간은 생각보다 포르투갈이 유럽의 끝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만들었다. 포르투갈과 독일 모두 유럽 국가들로 불리기는 했지만, 과연 비슷할까 궁금해지는 비행시간이었다. 베를린에서 리스본으로 향하는 비행기는 관광객들로 모든 좌석이 가득 차있었다.


같은 유럽연합 안의 여행이다 보니 수속도 입국도 모두 특별한 절차 없이 공항의 문이 열리는 대로 술술 풀렸다. 공항을 나서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입고 있던 스웨터가 덥게 느껴졌다. 혹시나 싶어 가져왔던 선글라스를 바로 꺼내 쓰기 시작했다. 시야에 비치는 모든 것이 햇살을 듬뿍 받은 느낌이라 뿌옇게까지 느껴졌다.


우리는 시내에서 제법 떨어진 숙소에 가기 위해 버스를 찾아 헤맸다. 버스 정류장까지 몇 번을 건너던 횡단보도에서 몇 번은 차들이 먼저 멈춰줬지만, 몇 번은 우리가 횡단보도 앞에 서있어도 휙 지나가는 운전자들이 제법 있었다. 횡단보도 앞에서는 서로 다른 상극인 자석이 넘어설 수 없는 거리에 있는 것처럼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독일의 운전자들과는 달리, 포르투갈은 교통법이 독일만큼 그리 센 것은 아닌가 보다 생각했다.


유리창이 넓은 버스를 타고 우리는 리스본의 도심 외곽 북쪽 지역 풍경을 살펴보았다. 서유럽 지역에서 많이 보던 고풍스러운 3 - 5층짜리 빌라의 건물보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자주 볼 수 있을 법한 10 - 15층 정도 돼 보이는 아파트들이 창밖으로 많이 보였다. 그렇다고 새 아파트는 아닌 것 같고, 왠지 우리나라였다면 재건축을 앞두고 있을 법한 낡은 아파트들처럼 보였다.


스페인과 프랑스, 독일 등 다른 서유럽 국가들을 떠올리면 포르투갈은 왠지 작은 나라 느낌이라 도시들도 그리 크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어렴풋이 들었는데, 리스본의 낡지만 높은 아파트들을 보니 리스본이 품고 있는 사람들이 제법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리스본의 도시 인구를 살펴보니 정말로 3백만 명이 거의 다 되는 인구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포르투갈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였다.


인구가 1억씩 되는 아시아의 국가들과 서울만 해도 1천만을 가진 거대한 도시이기 때문에 리스본이 인구 3백만이라면 작은 축의 도시 아닌가 싶지만, 베를린도 350만, 함부르크 170만, 뮌헨도 150만 정도니 리스본은 사실 유럽에서 제법 큰 도시에 속하는 편이었다.


그렇게 생각보다 높은 주택들이 그럼에도 뭔가 햇살과 닮은 색으로 모두 채색된 느낌이었다. 어떤 모양의, 어떤 색의 어떤 건물이든 기본적으로는 모두 파스텔 계열의 건물들이었다. 초록도, 파랑도, 노랑도, 분홍도 모두 연민트, 연하늘색, 연노랑, 연분홍빛이라 거리 전체에 파스텔 필터 하나가 덧입힌 느낌. 베를린과는 확실히 다른 컬러감이라 햇살 때문에 더운지 색감 때문에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지 헷갈리는 무렵, 문득 지나치는 풍경이 내가 있는 베를린과 다르면서도 닮은 느낌이 들었다. 남편에게 나는 속삭였다.


"여기 약간 파스텔 계열의 동베를린 느낌이야."


남편은 고개를 살짝 갸우뚱했지만, 나는 버스 안에서 보는 리스본 외곽의 풍경에서 이상하게 베를린의 동쪽 동네가 생각났다.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이 합쳐진지도 20여 년이 훌쩍 넘어 분단 시절을 기억하는 베를리너들은 이제는 너무 다 바뀌었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베를린의 한가운데인 미테 지역을 가면 예전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에 속해있던 지역의 건물들이 다르다는 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는 곳들이 있다. 서베를린은 에밀리 인 파리에서 볼 수 있는 4-5층짜리의 오래된 건물들이 많다면, 동베를린은 왠지 모르게 널찍한 도로에 우리나라 아파트 동 4-5개가 붙어 있는 듯한 넓고 긴 일직선의 구소련 지역의 아파트들이 제법 남아 있다. 그 동 베를린의 아파트들은 보통 시멘트 색인 짙은 오트밀이나 회색빛을 주로 가지고 있는데, 리스본 외곽의 주택들은 비슷한 건물 위에 연분홍, 연노랑, 연두색이 채색된 느낌이었다.

 

그렇게 혼자 한참을 차창밖 건물들과 사람들을 구경 중인 나에게 남편이 귓속말로 속삭였다.


"여기는 바르셀로나보다 버스 안에도 사람들의 훨씬 조용한 것 같지 않아?"


남편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버스 안이 고요했다. 도시 외곽이라 아마 관광객들보다는 퇴근길 현지인들이 훨씬 많이 타고 있는 듯한 버스 안이었다. 모든 좌석은 물론 서있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버스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는데도 조용했다.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가 서로 비슷하고, 통역이 없이도 서로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하다고 했다고 들었으며, 또 역사적으로도 지리적으로도 서로 엮이고 섞인 부분이 많다 보니 어렴풋이 포르투갈은 스페인과 비슷한 면들이 있겠지 싶었었다. 바르셀로나에 가서 정말 빈틈없이 채워지는 수많은 소리들에 깜짝 놀랐던 우리는 비슷한 햇살과 온도를 갖고 있는 리스본도 어렴풋이 비슷하겠거니 생각했는데 처음 탄 버스에서부터 확연한 차이를 느꼈다. 정말 포르투갈 사람들은 훨씬 더 조용할까? 첫날이다 보니 아직 알 수 없는 일이지만 40여분을 타고 간 버스 안에서, 중간에 잠시 미국 랩뮤직비디오에서 봄직한 패션의 10대들이 아주 잠깐 자기들끼리 떠드는 수다 소리를 제외하고는 마치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낀 것처럼 조용한 것이 신기했다.


여기 사람들은 조용하구나 싶어 사람들을 살펴보는데 남편이 또 귓속말로 말했다.

"독일에서 터키 사람들이 여기서는 북아프리카 사람들로 대체된 것 같아."


살펴보니 그랬다. 베를린에 오기 전까지 나는 베를린에 이렇게 많은 터키 사람들과 그리스 사람들과 러시아 사람들과 베트남 사람들이 있는지 몰랐다. 독일 하면 어렴풋이 아리아 계열의 코카시안들만 떠올렸는데, 막상 베를린에 오니 뉴욕 못지 않은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고, 단순히 이제 막 넘어온 이주민이 아니라 그들의 부모님, 조부모님이 먼저 넘어와 피부색만 다를뿐 사고방식은 독일인인 이민 2, 3세들의 독일인들이 많다는 것을 처음 알았었다.


베를린에는 터키계 사람들이 코카시안계 사람들만큼 많은 것처럼 리스본에는 흑인들과 아랍계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문득 포르투갈에 오기 전 포르투갈을 먼저 여행했던 인도 친구의 말이 생각이 났다. 인도에서 온 친구도 최근에 포르투갈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포르투갈 친구들이 그녀에게 미리 귀띔해준 말이 있었다. 바로 혹시나 포르투갈에서 불쾌한 경험을 겪더라도 그녀에게 악감정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포르투갈 사람들이 그녀를 인도가 아닌 북아프리카에서 온 무어인으로 착각해서 벌어진 일일 수 있으니 오해하지 말라고 미리 말해줬다는 것이다.


무어인이라는 뜻이 중세 시절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해 가톨릭과 충돌하던 아랍 세력을 가리켰기 때문에 지금처럼 민족과 국가 개념의 정의에 포함되어 사용되지는 않지만, 이베리아 반도의 유럽인들과 북아프리카의 흑인과 아랍인들이 아무래도 그만큼 오랫동안 서로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받은 것은 틀림없는 듯했다. 버스 안에서 본 코카시안처럼 보이지 않는 짙은 눈썹과 머리카락,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을 보니 왜 인도 친구가 무어인이라는 북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로 오해를 받을 수 있을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포르투갈은 백인들의 나라일 거라 어렴풋이 생각했는데 리스본의 외곽 버스 안에서 만난 사람들은 생각보다 제법 다양했다. 특정 인종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버스 안에는 약 6:4 정도로 백인과 흑인, 아랍인들이 적절히 섞여 있었다. 신기한 것은 베를린에서는 꽤나 쉽게 눈에 띄는 히잡을 한 여성들이 포르투갈에서는 생각보다 많이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렴풋이 무어인이나 북아프리카계의 흑인 또는 아랍인들이라 하면 그중에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았는데, 오히려 생각보다 눈에 띄게 이슬람 복장을 한 사람들이 드물다는 것은 신기했다.


피부색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아프리카 하면 떠오르는 흑인 혹은 짙은 피부색의 아랍계 사람들이 떠올랐지만, 의상에 그리 얽매이지 않은 것을 보면 어쩌면 그들의 피부는 그들의 조상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려줄 뿐 그들은 어쩌면 포르투갈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 무어인들의 후예들이라 다른 포르투갈 사람들처럼 입고 먹고사는 피부색만 조금 더 다양한 포르투갈인 들일지도 모른다.


리스본 공항에 내려 숙소로 향하는 시내버스 한 대를 탔을 뿐인데, 버스 안에서도 수많은 풍경들과 사람들이 포르투갈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포르투갈은 어떤 나라일까, 리스본은 어떤 동네일까. 리스본의 첫 시내버스에서 포르투갈에 대한 퍼즐 조각들을 어렴풋이 맞춰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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