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트라 데이투어를 더 풍성하게 만드는 법
리스본 계획을 짜면서 남들도 모두 다녀오는 신트라를 다녀올지 말 것인지 고민을 했었다. 다들 그렇듯 인생은 짧고 리스본에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여기까지 와서 신트라를 가지 않으면 언제 다시 갈까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고민 끝에 남들처럼 신트라를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마음먹었고, 그렇다면 투어 가이드 프로그램에 함께 할 것인지 독자적으로 신트라를 돌아볼 것인지 다시 고민했다. 이런저런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난 뒤, 우리는 현지 투어 상품들을 통해 신트라를 돌아보기로 했다.
투어 상품들을 둘러보는데, 이곳이 정말 혼자서 당일치기로 가능한가 싶은 질문이 들었다. 보통 데이투어 상품으로 신트라에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신트라 만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신트라의 유명한 성들과 더불어 이베리아 반도는 물론 유럽의 서쪽 끝 바다인 호카곶, 그리고 리스본과 가까운 해변 도시 카스카이스까지 모두 돌아보고 오기 때문이었다. 혼자서 하루 안에 이 모든 곳을 다녀올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대중교통이 얼마나 이 모든 곳을 잘 연결해줄 수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결국 투어를 신청하고 말았다.
인터넷에 '신트라 투어 (Sintra day tour)'라는 검색어만 눌러도 페이지 10개는 훌쩍 넘는 여행 프로그램들이 즐비하다. 그 수많은 당일 투어 상품들을 둘러보며, 비슷한 듯 다르게 투어를 신청하기 전 신경 쓸 부분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첫째는 그 투어가 어디에서 시작되고 끝이 나는지다. 신트라 당일 투어 상품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 것 같았다. 첫째는 리스본의 숙소에서 픽업해서 투어 이후 리스본까지 데려다주는 상품. 둘째는 신트라 역까지 각자 모여서 신트라 역에서 투어를 시작하고 끝이 나는 상품. 보통 그렇게 끝이 나는 상품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세 번째로 신트라 역에서 모여 카스카이스 역에서 끝이 나는 상품도 드물지만 찾아볼 수 있었다.
시작점이 모두 달랐지만 결국 대부분의 상품이 당일치기 투어이기 때문에 리스본에서 픽업을 하는 상품은 픽업하고 내려주는 시간까지 투어에 포함이 되어 막상 신트라에서 돌아보는 곳이 제한되는 단점이 있는 듯 보였다. 보통은 신트라 역에서 시작하고 끝이 나는 투어 프로그램이 많았는데, 그 많은 투어 프로그램들을 다르게 만드는 것은 결국 신트라 안에서 어떤 곳을 얼마나 많이 가는지에 따라 갈리는 듯했다.
신트라 데이투어 프로그램하면 보통 신트라의 페나성과 헤갈레이아 별장, 호카곶이 들어 있지만 사실 신트라에는 이 네 곳 외에도 돌아볼 곳이 무척 많았다. 보통은 이 세 곳 더하기 얼마나 많은 장소들을 더 둘러볼 수 있느냐에 따라 투어 프로그램 간의 차이가 생기는데, 같은 가격임에도 더 많은 곳을 둘러볼 수 있는 상품들은 보통 더 빨리 마감이 완료되어 투어 프로그램 간의 목적지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미리 신청하는 것이 바람직한 듯 보였다.
그 사실을 몰랐던 우리는 막상 하루 전에 투어를 신청하려고 보니 그렇게 많은 투어 프로그램들 중에서 막상 신청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없어 적잖이 당황했다. 이렇게 많은 프로그램들이 있는데 벌써 판매 완료가 되었다니. 그렇게 페이지 화살표를 수없이 넘기다 우연히 신트라 역에서 시작해서 카스카이스에서 끝나는 프로그램을 하나 발견했다. 사실 리스본 카드가 있다면 두 곳 모두 특별한 교통비 없이 모두 기차로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더불어 다른 시간을 내지 않고도 신트라뿐만 아니라 카스카이스까지 돌아볼 수 있는 것이 오히려 신트라 만 둘러보는 다른 프로그램들보다 훨씬 매력적인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신트라 역에서 만나 카스카이스 역에서 투어가 끝나는 당일 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하고 신트라로 향했다. 생각보다 리스본에서 멀지 않은 신트라 역에 내렸을 때, 우리는 수많은 인파에 적잖이 당황했다. 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한 사람들은 이미 각자 개인 투어 가이드들과 함께 개인차를 타고 이동을 했을 것을 감안하고도 신트라 역 앞의 페나성 행 시내버스 정류장 앞에는 기다란 줄을 선 사람들을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신트라는 리스본을 오는 사람들이 잠시 살짝 들렸다가는 부록 같은 여행지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아침부터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역부터 시작되는 장사진을 보고 미리 데이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하고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기나긴 줄을 뒤로하고 기차역 주차장에서 신청했던 현지 가이드 분을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데, 아저씨께서 자신은 사실 우리가 신청했던 가이드는 아니라고 했다. 그분의 친구분이셨는데, 우리가 신청했던 프로그램이 이미 가득 차서였는지 갑자기 아저씨에게 혹시 도와줄 수 있냐는 부탁을 받았고, 마침 휴일이었고 또 둘만 있는 팀이라 부담이 적어서 우리의 투어를 선뜻 받아주셨다고 했다.
그렇게 분명 팀으로 다니는 데이투어인 줄 알았던 여행이 갑자기 남편과 나, 둘만의 개인 투어가 되면서 갑자기 럭셔리하게 바뀐 느낌이 들었다. 아저씨의 차를 타고 우리는 뜻하지 않게 찾아온 행운처럼 신트라 개인 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신트라의 거리는 거의 조금 널따란 1차선에 가까운 2차선의 거리였는데 그마저도 커다란 관광버스들과 봉고차, 자가용, 툭툭과 지프차까지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잠시 렌털을 해서 신트라 투어를 할까도 생각했었는데 막상 와보니, 그렇지 않기를 또 잘했다고 생각했다.
원래 이렇게 관광객들이 많냐고 물었더니 이것도 그나마 성수기가 끝날 즈음이라 느슨해진 것이라는 아저씨의 대답이었다. 지금도 이렇게 가득 차 있는데 여름 성수기엔 얼마나 복잡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처음 페나성을 가면서부터 아저씨는 넌지시 그곳을 꼭 가야 하는지, 우선 근처에까지 가서 매표소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고 결정을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아니, 신트라까지 왔으면 당연히 페나성을 보고 와야지 싶은데 무슨 소리이신가 싶었는데, 아저씨 말로는 줄이 너무 길어서 페나성만 둘러보다 하루가 다 지나가 다른 곳들을 한 곳도 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셨다. 신트라와 호카곶과 카스카이스 주변에 볼 수 있고 데려가고 싶은 곳이 얼마나 많은데 페나성에서만 줄을 서다 가는 분들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고 하셨다.
아저씨의 말씀에 아침에 잠시 봤던 그 기나긴 버스정류장의 줄이 떠오르긴 했지만, 그래도 페나성에서 관광객들을 들어가게끔 관리를 했겠지 싶었다. 가이드 아저씨는 보통 사람들이 많이 가는 정문이 아닌 다른 문의 매표소로 우리를 데려갔는데, 그 매표소에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아저씨도 다행이다 생각하신 듯 표를 끊으면서도 페나성 입구를 지나서 한참 올라가면 또 다른 문이 있을 텐데 사람들이 너무 많으면 정오쯤에는 그냥 나오는 것을 추천했다. 페나성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수록 우리가 볼 수 있는 나머지 풍경들이 사라질 것이니 잘 선택하면 좋겠다고 몇 번을 이야기하셨다.
단단히 긴장을 하고 페나성 입구를 지나갔는데 뭔가 작은 언덕의 정원이 나타났다. 정원의 길은 모두 페나성의 진짜 입구로 올라가는 길로 향해있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어디에 페나성이 있는지 둘러보며 천천히 사람들이 향하는 언덕 위로 올라갔다. 이윽고 작은 버스 정류장이 있는 언덕 중턱 즈음에 버스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더니 어딘가를 향해 줄을 서고 있었다. 눈앞에는 사진에서만 보던 페나성의 샛노란 성벽이 보이고 새빨간 시계탑이 보였다. 롯데월드의 성처럼 성문 뒤로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길래 우리도 그 뒤를 따라갔다. 이 성문이 아저씨가 말한 성문인가 보다 하고 생각해보니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은 것은 아닌 것도 같았다. 이대로라면 티켓에 적힌 대로 11시 30분 안에는 페나 성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햇살은 아직도 뜨거운 여름 같지만 나뭇잎은 가을이 오는지 이미 알고 있는 듯 낙엽으로 떨어질 준비를 하던 페나성의 풍경. 나무들이 많아 그늘 아래 줄을 서니 시원한 바람에 눈부신 햇살이 성을 반짝여서 기다리는 시간도 상쾌하게 만드는 것 같은 시간도 지나고, 어느새 우리 뒤로 사람들이 배가 되어 늘어나 있었다. 들어가는 시간이 거의 다 되었는데도 이제 겨우 성문 하나를 지났는데, 아뿔싸. 성문 뒤에 또 다른 성문이 있는 줄은 몰랐다. 성문 뒤만 넘으면 성 안으로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또 다른 성문이 있고 그 안에도 기다란 줄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나니, 그제야 가이드 아저씨가 정말로 페나성에서 줄만 서다 하루를 다 보낼 수도 있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사람들을 따라 그 성문 뒤의 길게 선 줄을 따라 혹시나 싶어 따라가 보는데, 아뿔싸. 성문 뒤의 성문 뒤에 또 다른 성문이 있는 것 아닌가.
이미 11시 반은 넘어갔지만 티켓을 체크하는 성문 뒤의 성문 뒤의 성문 앞에는 11시 티켓을 가진 사람들도 아직 들어가지 못해 항의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것을 발견했다. 순간 그동안 그 유명했던 수많은 관광지들은 어떻게 들어갈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페나성보다 훨씬 유명했던 아그라의 타지마할, 피렌체의 두오모, 바르셀로나의 성가족 성당까지, 사람들은 어떻게 티켓을 구매한 시간에 티켓에 적힌 시간대로 그 명소를 구경할 수 있었던 것일까.
가이드 아저씨가 말씀하신 1시 이전까지 우리는 최대한 시간을 맞춰보려 했고, 또 어떻게 운이 좋아 성 안까지는 들어가 볼 수 있었지만, 심지어는 성 안에서도 사람들이 빼곡히 일렬로 줄을 서서 방 안을 구경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그냥 성 밖이라도 둘러보고자 줄을 이탈해서 나와 버렸다. 페나성 바깥의 건축 양식과 성 밖으로 보이는 신트라 주변의 풍경 역시 여기까지 와서 놓치면 안 될 절경 중 하나였긴 했지만, 한 편으론 몇 시간보다 훨씬 더 길어진 줄을 보며 무언가 아쉬운 마음도 들면서 성 아래로 내려왔다.
약속한 시간에 도착한 우리를 보며 아저씨는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는데, 우리는 아쉬웠던 성 관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속사정이 있겠지만, 아저씨도 우리도 모두 관광객들의 편의는 무시한 채 성수기에 최대한 표를 많이 팔아 이윤을 많이 남기려는 페나성 오너의 멀리 보지 못하는 운영 방식에 아쉬워했다. 비성수기에는 아무래도 조금 더 여유 있게, 약속한 대로 성을 제시간에 들어가고 둘러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성수기에는 이런 식이라면 페나성을 꼭 가야 한다고 추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주 이른 아침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성을 보고 오지 않는 한, 이런 식의 운영방식이라면 신트라 데이투어는 페나성의 기다림으로만 끝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페나성에서 헤갈레이아 별장으로 향하던 길, 그 좁은 1차선 길 위이 다시 주차장을 변하는 것 같았다. 현지 가이드 분들끼리의 카톡을 살펴보니 원래는 버스가 들어가지 못하는 좁은 길을 관광버스가 들어가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이 일이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는 것 같았다. 일방통행인데도 반대로 들어오는 차량이며 차량 통제 구역에도 차가 들어와서 문제가 생기는 등, 관광객들의 차량 운행이 이 좁은 마을의 교통 상황을 어지럽히고 있는 것이 확연히 눈에 띄었다. 관광객으로써의 책임감도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이었다. 관광객들의 문제인가 싶었는데, 아저씨 말로는 현지의 교통 상황을 내비게이션에서 잘 반영하지 못해 발생하는 문제가 더 많은 것 같다고 했다. 관광객이라고 현지의 규칙을 어기고 싶은 것만은 아닌데, 처음 가본 곳에서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갔을 뿐인데, 그 내비게이션이 제대로 업데이트가 되지 않아 운전자와 도시 교통 상황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었다.
관광이라는 것이 그저 잘 도착해서 잘 둘러보면 되는 것이라 어렴풋이 생각했는데, 관광이 순조롭게 이어지기 위해 이렇게 도로 상황과 인프라와 통신수단까지 모든 것이 잘 맞아떨어져야 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생각지도 못한 포르투갈에서 떠올려보게 되었다. 신트라 주변을 돌아보며 가이드 아저씨는 화려하고 잘 꾸며진 거대한 저택들이 누구의 소유인지 하나하나 아는 대로 알려주셨는데, 이 동네가 리스본과는 달리 참 잘 사는 동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포르투갈이 외국인들의 투자유치를 위해 관광은 물론 경제는 물론 거주 비자까지 문을 열면서 분명 포르투갈이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느껴졌지만, 한 편으론 돈이면 모두 가능하고, 당장의 이익을 위해서 조금 더 먼 미래의 가치들과 브랜드에 대해서는 놓치는 것은 아닐까 염려되는 부분도 떠올려보게 되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려 찾아가게 된 헤겔레이아 별장. 이곳은 가이드 아저씨께서 조금 기다리더라도 개인적으로 꼭 보여주고 싶고,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하셔서 함께 들어가기로 했다. 신트라를 검색하면 페나성과 함께 언제나 등장하는 둥근 스파이럴 모양의 계단 동굴이 이 별장에 있었다. 줄이 있었지만 페나성보다는 훨씬 적어서 수월하게 그 계단으로 들어서는데 초록 이끼가 신비롭게 서린 인디아나 존스 영화 촬영지나 앙코르와트의 포르투갈 버전 같은 느낌을 들게 했다. 어떻게 보면 유럽의 수많은 종탑을 올라서기 위해 돌아가며 올라가는 작은 계단 같기도 한데, 이 탑의 특징은 계단이 올라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내려가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 햇살을 듬뿍 받으면서 계단에 들어갔다가 어둠 깊은 동굴로 나오기 때문에 더 신비스러운 느낌을 더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도 의식을 위해 만들어졌다는데 아홉 번의 원을 돌면서 내려가는 계단은 단테의 신곡에서 나오는 천국과 지옥을 상징한다고도 알려졌다.
원형의 층계 사이사이에는 창문처럼 움푹 파인 부분들이 많았는데, 원래는 그 사이사이 수많은 성상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독재 시절 종교적 탄압이 심해 그 안에 있던 조각품들이 모두 약탈되거나 파괴되었다고 한다. 문득 포르투갈도 우리와 비슷한 시기, 독재의 영향 아래 있었고 그 여파가 이렇게 도시와 마을 사이사이에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 포르투갈 사람들도 우리 부모님, 조부모님들처럼 역사의 일부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원래 신청했던 가이드 아저씨를 만났으면 우리의 여행이 어땠을까 싶었지만, 이렇게 우연히 만난 현지 가이드 아저씨는 정말 쉬지 않고 내가 미처 놓치는 구석구석까지 포인트를 잡아 숨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셨다. 정원과 계단 외에는 잘 알지 못한 별장에서도 숨어 있는 프리메이슨의 징표들과 독재시대의 이야기, 그리고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관광산업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주셨다. 아저씨는 예상하셨지만 우리는 예상하지 못했던 페나성에서의 지체로 우리는 점심도 먹지 못했는데, 아저씨는 신트라의 곳곳을 보여주고 싶으셔서 교통 상황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음에도 최선을 다해 곳곳을 소개해주셨다. 아저씨를 보며 지나치는 수많은 현지 가이드분들을 관찰하게 되었는데, 모두가 하나같이 성심성의껏 포르투갈에 대해 잘 알려주려고 하는 것이 왠지 모르게 느껴졌다.
그렇게 신트라의 몇몇 명소들을 더 돌아보다 늦지 않게 우리는 포르투갈, 유럽의 서쪽 끝인 호카곶에 다 달았다. 사실 나는 처음에는 신트라보다 호카곶을 개인적으로 더 가보고 싶었는데, 이유는 내가 아프리카의 남쪽 끝이라는 희망봉에도 이미 다녀왔었기 때문이었다. 그 희망봉을 역사에 기록한 사람들이 바로 포르투갈 인들이었는데, 그들 역시 서쪽 끝에 사는 사람들이었구나 새삼 떠올려보게 되었다.
호카곶에 다가가는 동안, 신기하게도 풍경이 케이프타운의 전경과 닮아 있었다. 케이프타운에서 희망봉까지의 도로가 호카곶에 가는 도로 위 풍경처럼 높은 나무가 아닌 다육식물 같은 모양의 바닥에 피어난 식물들과 흙으로 덮여 바다로 이어져 있었다. 거대한 아파트 꼭대기 위해 서있는 것처럼 절벽 위를 이어가는 도로 위 끝에는 섬 하나 보이지 않는 드넓은 대서양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여기서부터 출발한 사람들이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거쳐 인도와 우리나라와 가까운 마카오까지 이 바다를 통해 오고 갔다고 생각하니, 문득 그 옛날 포르투갈 사람들의 마인드가 정말로 범상치 않았음을, 혹은 그들의 현실이 얼마나 고달팠으면 저 망망대해를 건너보고자 싶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옛날 사람들은 이 바다 끝에는 커다란 절벽, 정말 끝이 있어 바다를 넘어가면 죽을 것이라고 믿었었다는데, 그 바다를 넘은 사람들은 어떻게 그 믿음이 틀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을까. 확신이 있던 것일까 아니면 아무리 확실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매일 보는 바다라면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너무 궁금했을까. 나도 어릴 때부터 바다를 보면서 수많은 이야기들과 애니메이션을 보며, 저 바다 끝에는 그리고 바닷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무척 궁금했었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을 떠나 바다 앞에만 서면 책과는 다른 두려움과 호기심이 언제나 공존했던 것 같다. 포르투갈은 작은 나라였지만, 포르투갈의 바다만큼은 어느 지중해 인근의 거대한 국가들보다 거대하고 장엄하다는 것을 호카곶에서 처음 느껴본다.
그렇게 웅장했던 호카곶의 풍경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남쪽으로 해변가를 따라 천천히 내려왔다. 카스카이스로 향하는 해변길이었는데, 우리가 신트라 역이나 리스본에서 여행을 시작하고 끝이 나는 투어를 신청했다면 보지 못했을 풍경이었다. 아저씨는 젊었을 때는 모두들 리스본 같은 대도시에서 사람들과 북적거리며 살고 싶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자연의 풍광을 두고도 도시에 사는 것이 정말 삶의 질은 높이는 선택이었는지 반문하게 된다고 했다.
"이런 바닷가에서 따뜻한 햇살을 맞으면 와인 한 잔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진정한 삶의 낙이지."
아저씨와 해변가 주변에 차를 멈추고 앉아 해변가 풍경을 보는데, 이런 삶을 유럽인들이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여름이 지나기 무섭게 회색 구름을 몰고 오는 독일의 어두운 가을 겨울을 더해서 독일과 비슷한 계절을 가진 북유럽과 영국의 사람들이, 그래서 포르투갈을 이렇게 찾아오는구나. 독일 생활 3년이 넘어가고 나니 나도 어느새 어렴풋이 아저씨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게요. 아저씨는 참 좋으시겠어요:)"
아저씨가 말했다.
“여기 두 분도 오늘 정말 운이 좋게 날이 진짜 좋아서 신트라에서 볼 수 있는 풍경들을 모두 봤네요.”
나는 워낙 가을 겨울 날씨가 사나운 독일에서 왔는지라 포르투갈하면 언제나 이렇게 햇살 많고 따뜻한 날씨일 것이라고만 어렴풋이 생각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저씨는 하루 종일 오늘 날씨가 정말 좋다고, 특히 호카곶에서는 이렇게 화창하게 해안선까지 보이는 건 복받은 날이라고 말씀을 하셨었다.
“여기가 날씨가 그렇게 안 좋을 수도 있어요?”
그러자 어이없는 질문을 받은 것처럼 아저씨는 튀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씀하셨다.
“어떤 날은 투어를 하면 아무 것도 보이지가 않아서 그 곳에 도착하면 저 곳에 무어성이 있다고, 혹은 여기가 지금 보이는 것이라곤 뿌연 안개뿐이지만 호카곶이 맞고 이 아래 바다가 있다고 말해주고 오는 날도 있답니다.”
하루 종일 안개 한 번, 구름 한 점 없던 날씨였던지라 나는 아저씨가 말씀하시는 그 날씨를 이 곳에선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신트라와 호카곶의 비성수기란 단순히 사람들의 휴가기간이 아닌 날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곳이 품고 있는 자연경관을 이만큼 깨끗하게 볼 수 없는 날씨가 많아지는 기간도 의미하는 듯 했다. 하루종일 날씨가 한결같이 좋았던 우리에겐 쉽사리 믿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아저씨의 말씀에 따르면 우리는 정말 운이 좋게 청명한 날씨에 이 모든 풍경을 담아볼 수 있었다.
그렇게 기나긴 하루가 카스카이스 해변가에서 마무리되었다. 가이드 아저씨는 마지막까지 카스카이스에서 시도해보면 후회하지 않을 음식점들을 몇몇 알려주시고 기나긴 하루의 투어를 마무리해주셨다. 신트라 역 아침 풍경부터 시작해서 페나성과 별장, 그리고 호카곶과 카스카이스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혼자 여행하지 않고 현지 가이드를 통해 데이투어를 한 것이 훨씬 좋았던 선택이었음을 뿌듯해하던 순간이었다.
아저씨의 말씀처럼 알려진 것과는 달리 신트라는 정말로 당일치기로는 부족한 도시인 것 같았다. 비성수기라면 당일치기도 해볼 만 하지만 성수기라면 혼자 여행보다는 투어 여행을, 또 기왕이면 현지 가이드분이 운영하는 현지 투어 프로그램을 시도해보시기를 추천한다.
호카곶과는 조금 달리 파도도 얕고 풍경은 더 여유로운 카스카이스 역시, 리스본을 여행하는 분들이라면 빼먹지 않고 한 번 돌아보시길 역시 추천한다. 이곳의 씨푸드 뷔페 역시, 1여 년 동안 먹지 못한 신선한 해산물을 유럽식으로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한 곳임을 기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