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사람들은 자기가 입고 싶은 대로 옷을 입을 수 있지
베를린에 살게 되면서 몇몇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생겼다. 베를린에 살아도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이런 장면을 매일 같이 혹은 시내에 갈 때 종종 마주치는 빈도수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단순히 베를린 외곽에 살아서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특별히 기억에 남은 것 같기도 했다.
어느 날은 지하철을 탔는데 맞은편에 앉은 커플이 정말 어두운 흑 기운이 물씬 풍기는 옷차림과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그 분위기가 학생 시절 처음 보고 기겁했던 마릴린 맨슨의 기운과 비슷했던 것 같다. 사실 그런 분위기가 동베를린 지역의 클럽들이 밀집된 곳에선 주말 저녁 제법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스타일이라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니었는데, 내가 놀라웠던 것은 바로 그들이 몸에 그린 타투 때문이었다.
몸에 그려진 타투가 특별히 어떤 그림이라서 놀라웠다기보다는, 나는 그때 인간의 피부가 원래는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도화지였구나라는 것을 처음 느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그 피부라는 것이 정말로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도화지가 될 수 있어서 모든 곳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예술 공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에 나는 새삼 놀랐다.
신기한 것은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독일 사람인 남편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가 그동안 살았던 (뮌헨과 뉘른베르크 등이 있는) 독일 남부 지역인 바이에른에서는 그만큼의 타투를 가진 사람들을 마주치는 것이 확실히 베를린보다는 드문 일인 것 같았다. 사실 독일 내에서도 다른 지역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었는데 바로, 베를린은 베를린이다라는 말이다. (베를린이 독일이냐는 물음에 대한 답으로)
그렇게 나에겐 베를린의 타투한 사람들도 놀라웠지만 사실 어떤 날은 독특한 옷 스타일에 놀라는 일도 있었다. 스타일리시한 옷차림에 놀란 적은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 같지만, 오히려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아주 보수적인 무슬림 스타일부터 모든 격식이나 상식을 파괴하는 스타일까지 그 넓고 다양한 스펙트럼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나에겐 여성들이 얼마나 껴입었는지 혹은 얼마나 탈피해서 입었는지 혹은 얼마나 다양한 전통과 실험적인 옷을 입었는지는 사실 남성들의 파격보다는 덜 충격인 것 같았다. 베를린에서는 여성들만큼이나 남성들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옷을 입는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런 모습들을 종종 보다 보니 어쩌면 한국에서는 여성들만큼이나 남성들 역시 사실은 굉장히 사회적인 잣대와 기대치에 의해 옷을 입고 외모에 신경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새삼 들게 만들었다.
남자들도 딱 붙는 무릎 위 반바지를 입고 싶을 때가 있구나, 아니면 딱 붙지만 그래서 안 입은 듯 편안한 레깅스를 입을 수 있구나, 혹은 상의는 남성스러운 옷을 입어도 하의는 치마를 입을 수 있구나 등의 지금껏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생각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했던 곳이 베를린이 되었다. 가끔은 내가 먼저 놀라 혼잣말로 그런 말을 할 때도 있었지만, 어떨 때는 남편이 먼저 혼자서 중얼거릴 때도 있었다.
"그래. 베를린 사람들은 자기가 입고 싶은 대로 입을 수 있지"
그렇게 혼자 조용히 중얼거리며 남편이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가면 나도 남편을 따라 같은 말을 내뱉어 보았다.
"그래. 베를린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옷을 입을 수 있어."
옷을 잘 입고 못 입고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독일 사람들의 스타일에 대해 말한다면 건너 건너 듣고 본 이야기들이 있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런 스타일들을 베를린에서도 역시 종종 마주할 때가 있다.
문제는 스타일이 좋고 나쁘다는 것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이 샌들 안에 양말을 신든, 남자가 셔츠에 치마를 입든 사실 한국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보다 베를린 사회에 별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온몸에 피어싱을 하고 피부에 아무리 무서운 해골이나 칼을 그려 넣은 사람들이나 치마나 짧은 레깅스를 입은 남성과 함께 지하철을 타거나 같은 도로 위에서 마주쳐도 전혀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멀쩡한 옷을 입고 타투를 하지 않았지만 술에 잔뜩 취한 사람들이나, 축구 유니폼을 입고 흥분이 가시지 않아 지하철이든 버스이든 소리치는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오히려 염려하는 일들이 종종 발생하곤 했다.
겉모습이 아무리 낯선 사람들이라도 사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잠시나마 존재해보면 그들도 그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눈이 한 번 마주치면 괜히 어색해서 눈길을 돌리거나, 내가 핸드폰을 하듯 그들도 핸드폰을 보거나, 각자 자기가 가던 길로 가고 만날 사람들을 만났다. 그렇게 괜히 낯선 차림새에 처음에는 긴장을 하다가도 막상 시간이 지나고 나도 별 일이 없다 보면 오히려 그 특정 옷, 혹은 그 특정 타투에 무슨 의미는 없는지, 왜 그런 옷을 입거나 타투를 하게 되었는지 그들의 스토리가 궁금해지기까지도 했다.
베를린에 처음 온 낯선 이방인들은 베를린에 와서 그리운 것이 있다면 따뜻한 정 같은 것을 꼽곤 했다. 잔잔하고 소소한 정. 어떻게 보면 관심이고 챙김인데, 그게 어느 순간 불편한 간섭이고 참견으로 바뀌는 것인지는 정말 종이 앞 뒷면의 차이 같아 애매해서 어렵다. 베를린에서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낯선 사람에게는 그 관심과 챙김이 없어서인지 차갑게도 느껴졌지만 그런 무관심이 또한 어떤 간섭이나 참견도 불러오지 않은 듯했다. 누가 무엇을 입고 무엇을 그려 넣든, 그것은 그저 순순한 그 사람의 선택이고 표현 방식일 뿐이다. 그래서 그렇게 나와 다른 옷차림과 타투와 화장과 헤어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을 마주하면 처음에는 나와는 너무 달라 충격을 받을 때도 있지만, 몇 초가 지나서도 같은 공간에 있다 보면 자연스레 그들이 나를 신경 쓰지 않듯 나 역시 그들의 특정 스타일에 무덤덤해지고, 결국엔 같이 버스를 타고 거리를 걷는 수많은 사람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어 그냥 지나치고 만다.
그런 기억들이 하나 둘 쌓이고, 어떤 옷이나 특정 타투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은 아니구나를 알아갈 즈음, 나는 한국에서 들려온 나보다 어린 여가수들의 연이은 자살 소식에 마음이 아팠다. 특별히 그들이 속한 걸그룹을 좋아하거나, 그 가수들을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워낙 필요 이상으로 자주 매체에 오르내리기에 자주 보게 되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아직 삼십 대이지만 정말 시간이 지나면서 예전에는 알지 못하던 주름들이 하나 둘 생기는 것에 놀라던 참이었던지라, 아직 주름 하나 없이 맨들맨들한 피부의 그녀들을 보며 그저 짐짓 아직도 한창 푸르고 창창한 여성들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그들이 하나 둘 세상을 스스로 떠났다.
개인적인 연결점은 하나 없는, 어찌보면 나와는 전혀 관련없는 연예인들이었지만,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함께 존재하고 있던 인간으로써, 그들이 내 동생이고 가까운 친구였다면, 나는 그 예쁜 소녀들이 한국과 소셜미디어를 벗어나 어디든 상관없지만 베를린에 와서 한 해 정도를 평범하게 살아봤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모든 관심과 부담을 잠시 내려놓고, 입고 싶은 대로 그리고 싶은 대로 화장을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사실 괜찮았네라는 것을 한 번쯤 경험했다면 그런 슬픈 결정은 하지 않았을 수 있었을까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싶은대도 해도 특별히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나 비난을 받지도 않을 수 있구나, 그래서 외로움을 해결하는 방법이 꼭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때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삶을 이어갈지 다시 한번 되돌아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그런 생각을 혼자서만 해보고 지나쳤는데, 오늘 문득 예전처럼 그저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연예 기사들 중 하나에 설리 양의 3주기라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설리 양뿐만 아니라 영원히 가장 예쁜 모습의 사진으로만 남을 그 나이대의 사라진 연예인들, 그리고 이름도 모른 채 시끄러운 세상을 떠나가버린 우리나라의 어린 소년 소녀들도 떠올려본다. 그리고 그동안 베를린에서 만난 몇몇 한국 젊은이들의 이야기도 떠올랐다. 나는 결혼을 해서 베를린에 오게 되었지만 다른 한국 청년들은 왜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 궁금해하던 초기에 그들에게서 들은 이야기 중에는 제법 많은 청년들이 비슷한 답을 해준 경우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할 것 없이 지나친 관심을 넘어 가시 돋친 참견과 상처가 힘들었는데, 베를린에서는 잔정은 그립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 눈치 보지 않고 원하는 대로 입고 먹고살 수 있어서 돈은 많지 않지만 숨은 쉬고 사는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하다고.
한국의 자살률은 단순히 젊은이들뿐 아닌 중장년층과 노년에게도 심각한 질병만큼이나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어 단순히 사회적 부담과 타인의 간섭과 시선이라고만 자살의 원인을 돌릴 수 없다. 다만, 그런 이유로 사는 것이 버거워 놓아버리고 싶은 사람들이 혹시라도 있다면 알려주고 싶었다. 베를린 사람들이 자기가 입고 싶은 대로 옷을 입을 수 있듯이, 한국 사람들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옷을 입고 자신을 표현해도 된다고. 대신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입고 어떻게 표현하든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해주면 된다고. 입고 싶은 대로 옷을 입고 표현하고 싶은 대로 타투를 해도, 충분히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기 다운 책임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사실 여기서 한국을 떠난다는 의미는 단순히 한국보다 해외가 더 나을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그리고 지금은 유럽의 작은 조각조각 같은 공간들에서 조금씩 잠시나마 살아본 나에겐 해외살이에 대한 환상은 없다. 어딜 가나 그곳만의 무거움과 가벼움이 공존한다. 여기서 한국을 떠난다는 의미는 단순히 한국이라는 공간만을 떠난다기보다 관심을 넘어 간섭이 되고 그것이 비난이 되는 타인들에게서부터의 거리두기를 의미한다. 내 주변의 타인이 모든 세상인 것 같고, 또 그런 세상이 전부인 것 같지만 인간 세상은 알고 보면 인류의 인구수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러니 혹시라도 한국이 너무 버거워서 심지어 세상까지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온다면, 세상은 내가 경험한 사회보다 너무 넓고 다양해서 한국의 비난이 꼭 세상의 비난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어떤 사회에서는 세상의 모든 욕을 들어도 싼, 기존 관습에서 너무나 어긋나 연예뉴스에 오르내릴 만큼 대단한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또 어떤 세상에서는 그 똑같은 일이 무슨 양말을 신고 모자를 쓸지 말지 고민하는 것처럼 개인의 취향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어떤 사회에서든 공통적으로 문제가 생겨 논쟁이 일어나는 일이 아닌 이상, 사실 생각보다 사소한 일들이 한국에서는 사회의 뭇매를 맞고 누군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기도 한다. 어차피 살아있는 동안 세상을 떠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것이니, 한국에서만의 상처로 세상을 떠나지 말고, 상처가 되는 한국의 타인들로부터 한 번은 떠나서 잠시나마 타인들로부터 자신을 구해보라고, 함부로 삶을 포기하지 말라고, 그러기에는 정말 다양한 세상도 있다고 말하고 싶다. 유난히 스스로 세상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많은 한국에 대해 점점 더 무덤덤해지지 않기 위해 베를린 풍경을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