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다시 돌아온 독일의 크리스마스 마켓 풍경

어른 아이 모두가 빛나는 연말

by 따뜻한 선인장


비와 눈이 오고 가는 베를린의 12월. 작년에는 눈이 두 번 왔는데 올해는 12월이 오기 전부터 미리 옅은 눈이 흩날렸다. 아무래도 괜히 눈의 여왕이 마법을 가졌던 것이 아니었듯 겨울비가 내리면 축축하기 그지없는데 겨울눈이 오면 매일 같이 산책 나서던 길거리의 개들마저 한결 신나 보이는 느낌이다.



11월 셋째 주 주말까지만 해도 흐린 가을밤이기만 하던 베를린 거리가 넷째 주부터 갑자기 번쩍이기 시작한다. 베를린의 주요 명소는 물론 고가도로 아래의 작은 공간들까지 크리스마스 장식들로 가득 찬다. 마치 해리포터의 호그와트 종업식날 천장의 깃발들이 덤블도어 교수님의 손짓 하나로 특정 깃발로 순식간에 바뀌듯이 베를린 거리는 갑자기 크리스마스 시즌으로 넘어간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간이나 조용한 주택 공간에도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장식을 걸어두고, 그래서 밤이 되면 약간 마법 속에 들어온 환상이 떠오르기도 한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물론 한낮에도 볼 수 있지만



그럼에도 가장 매력적인 순간은 어둠이 내려앉은 뒤.



수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두껍게 옷을 껴입고 거리로 향한다.



동방박사 세 사람이 가장 크고 밝게 빛나는 별을 찾아 떠나가듯, 거리의 사람들이 향하는 곳에도 수많은 별들이 기다리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성탄 선물들을 둘러보고



추운 몸을 녹이기 위해 따뜻한 글루와인 한 잔씩을 따라 마신다.



물론 세계 어딜 가나 시장하면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도 장사진을 이룬다. 숯불 위에 구워주는 소시지나 헝가리의 대표 간식인 랑고쉬는 남편과 내가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간식이다.



복작복작한 크리스마스 마켓의 조용한 뒷골목에서는 신비한 분위기를 더하는 광대들의 분장이 이뤄지고



나에겐 어린 시절 동화 속에서 본 듯한 사람을 만난 거라면,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어린이들에겐 여전히 잊지 못할, 산타와 요정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시즌으로 기억될 크리스마스 마켓의 밤들이 그렇게 세어간다.



지난밤, 반짝이던 빛들이 사라진 아침에 눈을 뜨면 다시 베를린은 안개 또는 구름이 자욱한 회색의 도시가 된다. 우리 집엔 없지만 다행히 이웃집에는 벽난로가 있는지 굴뚝 밖으로 피어나는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한결 차분해진다.



독일에 처음 왔던 몇 해만 하더라도 이 낯선 흐린 겨울 날씨에 내가 겨우 날씨 하나에 이리도 무너지는 나약한 사람이었나 묻곤 했다.


우리나라를 빼면 내가 지금껏 살았고 여행했던 나라들인 남아공이나 필리핀, 인도나 이집트 같은 곳들은 햇살이 너무 많으면 많아서 문제였지, 부족한 적이 없었다.


독일에 와서 생각해보니 아마 이렇게 될 줄 알고 미리 그만큼을 듬뿍 받았던 것은 아닐까도 싶을 정도. 여름이 끝나는 8월 말부터 괜스레 이번 겨울은 어떻게 날 것인지 미리부터 걱정을 했는데, 다행이었다. 3년 만에 코로나로 멈췄던 크리스마스 마켓이 돌아왔다.


독일 생활 4년 차에 들어가지만 올해가 이제 두 번째인 크리스마스 마켓 시즌 덕분에 새삼 독일에서의 겨울나기가 한결 들뜬 느낌이다.



꼬박꼬박 따뜻한 차와 달달한 간식들을 챙겨 먹고



싱싱한 샐러드와 갓 구운 머핀들로 식탁 위를 채워본다.



필리핀에서는 여름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으로 일 년을 채웠는데, 독일의 겨울은 필리핀의 여름에 비하면 분명 훨씬 짧은데도 이 회색 하늘이 한번 들어서고 나면 왠지 이 시간이 영원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한동안 그 회색 분위기에 휘감겨 올해는 내가 무얼 했더라… 가물가물하던 참에 다행히 촛불을 하나 둘 켜고 차를 마시며 정신을 차려본다. 한 해를 되돌아보며 힘든 순간들은 토닥토닥 잘해왔다고, 정신을 차려야 하는 부분들은 다시 마음을 잡아보자고.


독일에 오고 코로나가 터지면서 매해 독일에서의 이맘쯤의 기억은 이 흐린 날씨에 대한 불평뿐이었던 것 같은데, 그 불평도 하다 보면 익숙해지는 순간이 오기도 하는구나를 새삼 깨닫게 되는 올해 겨울. 흐릴수록 그리고 어두울수록 빛은 더 밝게 빛난다는 것을 3년 만에 돌아온 크리스마스 마켓을 걸으며 기억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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