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가 우울증에 도움이 되는 이유
지하철에서 내리려고 문 앞에 서있던 중이었다. 베를린의 지하철은 문에 붙어 있는 버튼을 직접 누르거나 손잡이를 잡고 돌려야 문이 열린다. 그렇게 문 앞에 서서 손잡이를 돌리려고 문을 보고 서있는데, 갑자기 숨을 들여 마실 수 없을 만큼의 악취가 모든 공간을 덮쳤다. 내 눈앞에는 지하철 문 뿐이라 악취가 날 곳이 없어서 문 유리 뒤로 반사되는 모습을 살피는데, 어떤 사내의 모습이 비쳤다.
살짝 뒤를 돌아보니 덕지덕지한 쇼핑가방들을 한 움큼 메고 있는 남자였다. 어떻게든 숨을 참아 보려 했지만 어찌나 악취가 강력한지 숨을 참고 있음에도 눈이 매운 느낌이었다. 얼른 지하철이 승강장에 도착해 이 문이 열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손잡이를 꾹 잡고 있다가, 열차가 승강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손잡이를 돌렸다.
용수철에 튕겨져 나오듯 지하철 밖으로 떨어져 나간 나는 그 행인의 그림자가 사라질 정도로 멀어지고 나서야 드디어 커다란 숨을 들여 마셨다. 다시 무색무취라고 생각해 오던 평소의 공기가 느껴지는 듯했고, 그제야 문득 비슷했지만 사뭇 달랐던 예전의 악취에 대한 기억이 겹쳐왔다.
나는 예전에도 몇 번, 이런 악취에 잔뜩 긴장했던 적이 있었다. 도시 슬럼에 관한 국제개발협력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나는 처음 필리핀에 가자마자 매주 드나들게 된 곳이 바로 필리핀의 쓰레기산 지역이었다. 쓰레기를 버렸으면 버렸지 쓰레기 산에서 살아보기는 커녕 주변에도 가본 적 없을 것 같은 외국에서 온 우리들에게 현장 활동가들은 이런저런 주의사항을 주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악취에 관한 것이었다.
국제개발활동가로 현장을 방문할 때는 내가 얼굴을 찡그리거나 코를 막는 행동 등을 하면 현지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바퀴벌레나 쓰레기들을 보아도, 혹은 힘겨운 악취가 나더라도 웬만해선 참으라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나는 바퀴벌레는물론이거니와 어두운 곳에서는 가끔 살랑이는 나뭇잎만 봐도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누가 토를 하면 괜히 따라서 속을 게워낼 정도로 비위가 약해서 현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잔뜩 긴장을 했던 기억이 난다.
쓰레기산 지역 마을에 들어가서는 아주 잠깐씩 콧속을 훅 들어오는 악취에 몇 번 당황한 적이 있었지만, 사실 더 당혹스러울 때는 나보다 더 먼저 도착해 있던 한글이 적힌 수많은 쓰레기들을 발견했을 때였다. 그렇게 미리 예상했던 것들과 예상치 못했던 것들이 뒤섞여 있던 현장에서 나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필드워크를 이어나갔고, 나중에는 마을 사람들과 노래방 마이크를 붙잡고 함께 노래하며 웃고 떠들었던 추억이 남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는 특별히 악취로 인해 겁먹은 일없이 세월이 흘러갔는데, 문득 베를린의 지하철에서 맡은 이 숨 막히는 냄새가 과거 필리핀의 추억을 뜬금없이 연결시킨 것이었다.
사실 세계 어느 대도시를 가나 나도 몰래 눈살이 찌푸려지는 악취를 풍기는 사람들은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처럼 코뿐만 아니라 눈까지 찌르는 지독한 악취를 가진 사람을 그 어떤 도시에서도, 어떤 사람에게도 맡아본 적 없어서 나는 그 사람이 걱정이 되면서도 궁금해졌다.
‘그는 자신에게서 나는 이 냄새를 맡지 못할까? 맡을 수 있다면 그는 어떻게 버티고 있는 것이며, 맡지 못한다면 사람은 어느 정도까지 자신에 대해 무감각해질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질문들을 혼자 끊임없이 쏟아내다 남편에게 궁금증을 나눴더니 그가 말했다.
‘사람에게 악취가 난다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