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개발에서 내가 원하던 것
필리핀에서 배운 교훈 중 하나가 있다면 언제나 기대하는 것과 현실을 체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무언가 머릿속에 떠오르고 나면 한껏 기대를 쌓아간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는 기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기대에 풍덩 빠져 있던거라 결국 현실보다는 사실 자기 기대에 실망하게 되는 경우.
이런 일을 한다면, 이런 공부를 한다면, 이런 사람과 연애를 한다면 등등의 수많은 상상이라는 풍선은 언제나 사실은 기대라는 공기에 의해 부풀어 있었다. 그 기대가 현실은 모른 채 계속 커져만 가다 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고받는 안타까운 상황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삶의 경험들이 쌓이며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던 수많은 상상 중에 하나였던 대학원 진학에 대해 어느 대학, 어느 과정을 신청하기 전에 최대한 신중하게 살펴보고 싶었다.
필리핀에서의 프로젝트가 마감이 되고, 나는 바로 대학원 진학을 위한 계획을 진행했다. 나에게는 세 가지의 관심 학과가 있었다. 하나는 필리핀 국립대학의 지역개발학이었고, 다른 하나는 동대학의 인류학과,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스웨덴 웁살라 대학교의 지속가능 발전 학과였다.
지역개발학은 필리핀 국제개발현장에서 함께 활동하신 교수님과 스텝들 덕분에 2년 동안 학과 커리큘럼을 간접 경험할 수 있었고, 인류학과는 필리핀 친구가 나에게 추천을 해준 그다음 달에 직접 학과 오피스를 찾아갔었다. 그리고 이제 나에게 남은 학교는 바로 스웨덴의 웁살라 대학교였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부터 상상해오던 북유럽 여행을 떠나기 위해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은 단순히 하고 싶던 것, 그동안 궁금해하던 것을 확인해보는 여행만은 아니었다.
이십 대 초반, 가보고 싶은 대학원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의 나는 하고 싶은 것은 무조건 우선 시도해보는, 마음먹고 노력하면 무조건 할 수 있다는 믿음이 더 강했던 것 같다. 반면 그동안의 활동들과 경험, 그리고 시간이 쌓아져 만들어진 지금의 나는 노력도 노력이지만 타이밍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모든 것에는 타이밍이라는 것이 있어서, 아무리 노력하고 원해도 안될 것은 결국 안되지만, 만약에 이뤄진다면 그건 단순히 그럴만한 이유뿐만 아니라 타이밍도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그래서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몇 살까진 무엇을 하고 언제까지 무엇을 이룬다는 등의 시간을 정해 놓고 원하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 얽매이기보다는 그것이 언제 이뤄지든 원하는 것을 변함없이 마음에 꼭 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언제 그 타이밍이 올지 모르는 그 순간을 위해 원하는 것을 마음에 꼭 품고 있다면 언젠가는 꼭 시도해 볼 수 있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하다 보면 시간에 의해, 경험에 의해 내가 생각하던 생각들이 또 변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다 마음에 고이 품고 있다 보면 또 다른 중요한 인생의 가치인 인내라는 것을 불안 불안하면서도 천천히 얻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또 어느 순간엔 내가 정말 중요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정말 그렇게 중요했던 것들인가 다시금 질문하게 되는 순간들이 오게 되는데, 그런데도 중요한 것이라면 그건 정말 중요한 것이라 꼭 한 번은 해봐야 하는 것 같다는 마음의 결단이 생긴다.
그래서 지금, 내가 북유럽에 한 번 가보는 이 여행은 단순히 내가 정말 오랫동안 원해서이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아마 지금이 북유럽에 한 번 가봐야 하는 타이밍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의지와 우연이 용케 서로 맞닿은 마법 같은 순간인 것인데, 그 순간에 내 친구가 핀란드에서 마침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해주는 듯했다.
친구는 핀란드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었다. 핀란드에 있다 보니 자연스레 지속가능 발전에 대한 관심도 많아서 북유럽 4 국가, 노르웨이와 덴마크, 스웨덴과 핀란드를 함께 여행하기로 했다.
그중에 특별히 나는 웁살라 대학의 지속가능 발전 학과와 더불어 스톡홀름 대학의 사회인류학 건물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학교에 가기 전 학과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오픈된 연락처들이 있길래 혹시나 싶어 관심 있는 연구를 하는 분들께 혹시 기회가 된다면 만날 수 있는지 문의를 드렸다. 결과는 모든 분이 답을 주신 것도 아니었고, 그나마도 방학기간이라 어렵다는 답변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나는 직접 가보고 싶었다. 이런 방법이 정말로 이미지화시키는 것에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무래도 경험주의자인지 정말로 그 자리에 직접 서서 공간을 둘러보고 사람들을 관찰하면 왠지 아주 잠시나마 그 시공간의 일부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오랫동안 원하던 곳에 있을 때 모든 느낌이 다 좋은 것은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좋은 상상이 이어진다면 그 시도를 이어가게 된다.
그럼에도 북유럽까지 날아가는데 텅 빈 방학 기간의 캠퍼스만 보고 오는 것은 아닌가 아쉽던 찰나, 현지에서 공부하는 친구가 준 팁이 있었다. 북유럽의 경우 교육에 있어선 단순히 대학생 위주만이 아닌 평생교육의 일환으로 일반인에게도 많은 기회가 있는 만큼 학과 홈페이지를 찾아보면 오픈된 강좌나 토론이 있을 것이니 꼭 한 번 찾아보라고 했다.
매일처럼 있는 건 아니었지만, 마침 스톡홀름과 웁살라에 머무는 동안 열리는 오픈 워크숍들이 몇몇 있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주제였지만, 적어도 정말 현지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분위기를 직접 느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렇게 나는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뒤, 북유럽으로 가는 일정들을 차곡차곡 준비해 정말로 스웨덴 스톡홀름 대학, 사회인류학 건물 안에 들어와 있었다. 건물 안에서도 한참 찾아 헤맨 인류학 건물. 엘리베이터를 타야 찾아갈 수 있던 곳이었는데, 인터넷 학과 홈페이지에서 봤던 그 안내문이 걸려 있는 방의 문을 찾았다.
아담한 방 안에는 인류학 관련 책들이 테이블 주변을 빼곡히 둘러싸고 있었다. 밖은 추웠지만 방 안은 아늑했다. 분명 나는 이 공간에 앉아 있는데, 마치 꿈속에 있는 것처럼 신기하기만 한 기다림.
이윽고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왔다. 동양인은 나 하나뿐인데, 그것도 처음 본 사람인데도 반응들이 꼭 내가 이곳의 일부인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았다. 살짝 미소를 띄우며 평상시처럼 서로에게 간단한 눈인사, 목인사를 하는 사람들. 나도 덕분에 유별나게 티를 내지 않고, 어색해하지 않아도 되는 느낌이 들어서 나도 원래 학교에 다니는 학생처럼 수업의 일부가 되기로 했다.
의자가 스무 개도 채 되지 않은 작은 방은 테이블 위의 노트에 무언가 적으려고만 해도 옆에 있는 사람의 팔꿈치가 닫을 정도로 가깝게 앉은 공간이었다. 옆에 마침 방금 전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 행사에 대해 여쭤봤던 아주머니 한 분이 앉으셨다.
나는 한국에서 여행 왔는데, 사회인류학과가 궁금해서 왔다고 살짝 소개했더니, 그 아주머니께선 웁살라 대학교에서 이주 관련 전공의 교수님이라고 하셨다. 내가 그리 궁금해하단 그 웁살라 대학교의 교수님이라니.
아무튼 그제야 나는 왜 사람들이 나를 아무렇지 않게 편하게 대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다른 대학들과의 방문이나 교류가 자연스러운 듯했다. 나도 지금 이 학교의 학생은 아니지만 아마 다른 사람들은 나를 룬드나 웁살라의 다른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 공간에 있는 것이 한결 편안해졌다.
인류학을 대학에서 전공으로 배운다면 도대체 어떤 공부를 하게 되는 것일까. 관련 책들을 읽어보긴 했지만 정말이지 광범위하고 넓어서 감이 잡히지 않았었다.
책에서는 이렇다고 말해주는데, 실제로 학생들은, 해외에선, 스웨덴에서는 어떤 공부를 하는 걸까?
그날은 어느 박사생의 논문 중간발표가 있는 날이었다. 주제는 "칠레 산티아고의 팔레스타인 이주민 지역 연구"
칠레에 팔레스타인 이주민 지역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어떻게 마을이 생겨나게 되었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 다른 국적의 이주민 지역과는 어떻게 다른지, 칠레 현지인 커뮤니티와는 어떤 관계를 유지하는지, 팔레스타인 이슈에 있어서는 어떤 활동들, 입장을 취하고 또 연대하는지 등의 주제들이 포함된 발표였다.
편안하게 발표를 이어가는 중간중간, 함께 있던 학생들, 교수님들, 동료들은 발표자에게 여러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나는 도대체 그 주제가, 칠레의 팔레스타인 이주민 지역이 이 스웨덴 사람들과는 무슨 상관인지, 왜 그 연구를 해야 하는지, 저분은 왜 이런 궁금증이 생겼고 연구를 하게 되었는지가 이해되지 않아 한참을 헤맸다.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논문의 중간발표이니 이미 내가 궁금해하는 것은 이전 발표에서 언급이 되었을 것 같아 물어보진 않았다.
지금은 이렇게 분위기를 느껴본 것만으로도, 현지 사람들을 구경하고 관찰해본 것만으로도, 그리고 나중을 한 번 상상해본 것만으로도 벅찼다.
발표가 끝나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는 인류학 사무실, 교실들, 게시판, 분위기를 둘러봤다. 어느 석사생의 인도 다람살라 필드워크 사진들이 한편에 전시되었었다. 내가 여행으로 다녀온 곳이 누군가에겐 연구 지역,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에 처음 여행자에서 인류학자로의 전환은 어떻게 다를지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모두가 그런 거라면 나도 그럴 수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이야기가 막 끝나서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한 분이 눈에 띄었다. 조심스레 다가가 인사를 드리고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아주 잠깐만 학과에 대해 여쭤봐도 되냐고 물었다. 약속이 있지만 잠깐이면 괜찮다며 연구실로 안내해주시는 분은 사회인류학 교수님 중 한 분이셨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아주 유치하고 기본적이고 단순한 질문이었고, 어찌 보면 사실 홈페이지 정보가 더 자세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 짧은 시간 이후 그동안 궁금했던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신기하게... 아쉬움도 없었고, 이젠 생각을 정리하고 선택을 하면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계획했던 시간을 보내고 갑자기 당이 떨어져 간식을 먹으려고 휴게실에 앉았다. 짧았지만 그 기억들이 증발해버릴까 봐 컴퓨터를 켜서 기록들을 정리했다. 정신이 돌아온 뒤 주변을 살펴보다 파란색 게시판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 파란색은 유엔의 상징처럼 각인된 색깔이었다.
마침 잠시 후 시작되는 강연이 하나 있었는데, 국제개발 관련 학생단체에서 마련한 난민 관련 강연이었다. 분위기가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 오히려 참가자를 반기는 분위기였다. 기왕에 온 김에 제대로 느껴보자, 여기서는 국제이슈를 어떻게 풀어가는지, 학생들은 어떻게 이해하는지, 우리나라와 필리핀도 봐왔으니 비교해보고 싶어졌다.
유럽에선 난민, 이주민이 거리에서도, 정치에서도, 그리고 학계에서도 아주 중요한 이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선 발표자의 구성이 신선했다. 정부기관, 특히 이민청에서 담당 업무를 하시는 중견 공무원, 스웨덴에 이주민 신분으로 들어와 이주민 관련 단체를 꾸려가는 활동가, 아프리카나 중동 지역의 난민 캠프로 파견 나가서 활동하시는 스웨덴 여군, 지중해 지역에서 유럽으로 넘어오는 난민들을 지원하고 연구하는 스웨덴 활동가까지 알찬 패널들이 앉아 있었다.
이주민 관련 동일한 이슈나 주제라고 하더라도 자신들이 처한 입장, 업무, 환경에 따라 그 이슈는 수백 개의 시선으로 달라질 수 있는데, 이러한 구성은 다양한 시각을 균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최대한 배려한 듯했다.
스웨덴은 ODA(Official Development Aid), 공적개발원조 즉, 다른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원조금액에 있어 국제사회가 목표로 한 국민총소득- 예를 들면 국민 세금으로 이루어진 국가 예산의 (GNI)의 0.7%를
일찌감치 도달한 국가 중 하나였다.
그래서인지 단순히 외교 관련된 기관만이 아닌 군이나 정부기관 관계자 분들 중에서도 국제개발협력에 있어 베테랑인 분들이 많은 듯했다. 직접 난민촌의 치안과 지원을 담당하고 유지하던 여군, 지중해 연안에서 직접 난민들을 지원하고 소셜 네트워크로 모니터링과 인연을 이어가는 활동가 등 적어도 정책을 담당하고 기획하는 사람들이 현장을 경험했고 현장에 가까웠다는 것이 발제 속에서도 분명히 느껴졌다.
신기한 것은 발제자로 나선 스웨덴 사람들은 영어를 사용했다면 정작 난민이었고, 난민단체를 운영하고 있는 아프리카 국적의 대표자는 스웨덴어를 원어민처럼 사용했다는 것이다. 불어권 국적이라 영어를 원래 잘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본인의 의지로 스웨덴어를 사용했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스웨덴어 발제는 그가 얼마나 스웨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았다.
또한 어떤 직위나 단체의 우위를 떠나, 일렬로 마련된 발표하는 사람들의 단상에서 벗어나 방청객 쪽으로 자리를 옮겨 청중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려는 발표자들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발표만 하고 떠나거나,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각자의 차이만 두드러지는 발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닌, 서로 다른 입장이 소통하고 어떻게 보완되고 지원할 수 있을지의 가능성을 논의하는 절차에 대한 워크숍으로 더 기억에 남는 듯했다.
난민 관련 워크숍까지 마치고 어둑해지는 캠퍼스를 어슬렁 돌아다녔다. 난민에 대한 강연까지 듣고 나니, 저 멀리 떨어져 있어 남의 일처럼 느껴지던 칠레의 팔레스타인 이주민 지역에 대한 연구가 왜 이곳 스웨덴 사람들에게 연구 질문을 던져주고 연구의 가치를 더해주는지 알 것도 같았다.
이튿날, 나는 스톡홀름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웁살라행 기차를 탔다. 기차 정면이 마치 해리포터에서 나오던 증기기관차의 모습과 닮아 더 환상처럼 느껴졌다.
웁살라는 대학도시라는 말처럼 각 학과 캠퍼스가 도시 전체에 흩어져 한참 길을 헤맸다. 길을 잃은 덕분에 우연하게 생물분류학의 창시자인 린네의 식물원도 지나쳤다. 한 번쯤은 더 들어봤을 “종-속-과-목-강-문-계”라는 생물들의 분류법을 만든 사람이 이 웁살라의 식물원에 있었구나. 그 다양한 생물들까지 체계적으로 정리하고자 한 사람이 있었던 곳에서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의 사회를 환경과 사회와 경제라는 범주로 정리해보고자 하는 지속가능 발전 학과는 또 어떤 학과일까.
지속가능 발전 학과 캠퍼스는 지리학과 건물과 맞닿아 있었다. 자동차보다는 자전거가 훨씬 많이 세워져 있던 주차장. 길을 헤맨 탓에 이미 워크숍 시간보다는 한참 늦었지만 마음을 비우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똑똑똑. 노크가 무심하게 문을 여는 순간 꽤 넓은 공간에 다양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다과를 하거나 느긋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스톡홀름 대학교에서도 그랬지만 동양인 한 명이 왔다고 해서 전혀 궁금해하거나 신기해하지 않는 사람들. 생전 처음 들어온 이 특정한 공간에서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이미 그 공간의 구성원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워크숍이 얼마나 누구에게나 오픈된 공간, 활동이라는 것을 자연스레 느끼게 했다.
생각보다 많지 않던 사람들 속에 동양인 여자분이 두 분이나 보였는데 감사하게도 먼저 인사를 걸어주셨다. 분명 늦게 도착했는데 30분 정도 행사가 지연돼서 딱 맞게 도착한 행사.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고 참관해도 되는지를 물으니 환영한다고 답해주시는 관계자분들. 그렇지 않아도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분 중에 한국 분도 계시는데 마침 해외로 출장을 가셔서 아쉽다고 인사를 전해주셨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주위를 둘러보니 책상 위에 알록달록한 종이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시민사회단체, 웁살라 대학교, 정부기관, 학생, 전문가 그룹 등 6그룹으로 나뉜 책상들이었다. 이윽고 참가자들이 모두 모여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연령대로 보자면 대학생들부터 나이 지긋하신 분들까지 다양했고, 성별로 보자면 남성분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팀마다 여성분도 한 명씩은 있는 듯했다. 인종은 대부분은 유럽 사람들인 것 같았지만 중국, 일본, 그리고 나도 포함한다면 한국까지 나름 다양했다.
이 행사는 Resolve라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열렸는데. 웁살라 시정부가 대학과 함께 연합하여 시의 여러 문제들을 함께 찾아가고, 대화하고, 해결해보는 프로젝트인 듯했다. 이번엔 특별히 빗물, 물을 어떻게 재활용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워크숍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창 사회적 연대,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에 관한 정부의 지원과 관심이 늘어 공익적인 문제 및 이슈들을 함께 풀어가고자 하는 프로젝트들이
많이 생겨나던 때라 언뜻 보기엔 익숙한 것 같은 분위기인 것도 같았다. 지속가능 발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 정리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와 방법, 그리고 관련 해외사례 발표까지 어떻게 보면 낯익을 수도 있는 프로젝트가 나에겐 신선하게 다가왔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지속가능 발전과 지역이 어떻게 콜라보를 이루는지였다.
우리에게 지속가능 발전은 굉장히 추상적이라던가 아니면 경제도 사회도 환경도 아닌 모호한 것, 아니면
환경 쪽에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환경에 지나치게 치우친 주제라고 인식되지만 반대로 환경 쪽에 계신 분들에게는 이미 변질돼버린 용어라는 의견이 많은 것처럼 느껴지던 용어였다. 어쩌면 지속가능 발전에 대한 수많은 비판은 나의 이야기도 아니고 너의 이야기도 아닌데 누구나의 이야기라서 그 누구의 이야기도 아닌 것 같은 모호함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이 공간에서 만난 지속가능 발전의 첫인상은 국제적이지만 지역친화적인 느낌이었다고 할까. 워크숍을 관찰하며 느낀 이곳에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우리가 알고 있는 공간에, 함께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각자가 알고 있는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함께 이야기 나누고 듣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 같았다.
이벤트는 종이에 적혀있는 각 기관에서 온 분들이 각각의 책상 그룹에 먼저 앉아계시고, 문제 해결 아이디어를 가지고 온 참가자 팀들이 정해진 시간 동안 그 책상들을 돌아가며 관련 담당자에게 조언을 듣는 구조로 진행되었다.
물 전문가도 계시고, 에너지 전문가도 계시고, 시정 부기관에서도 오시고, 학교에서도 오시고, 시민단체에서도 오시고, 지역 사람들도 오셨다. 나도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어떤 부분들은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고 또 기술적인 부분들은 전혀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한 가지 느낄 수 있던 것이 있었다.
바로 같은 주제가 다양한 집단에서 온 사람들로 인해 다각적으로 보완되어 간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무언가가 온전히 누군가에 의해서만이 아닌 아주 조금씩이지만 모두에게 한 번씩은 거쳐가 다듬어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