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서와 토플, 장학금 면접까지
필리핀 대학교에 처음 들어섰을 때가 떠오른다. 국립 필리핀 대학교, 퀘존 시티의 딜리만 메인 캠퍼스는 493헥타르, 약 150만 평의 대지 위에 놓인 필리핀에서 가장 큰 캠퍼스를 가지고 있다.
필리핀의 대학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던 사람들은 생각보다 커다란 규모의 캠퍼스 때문에 놀라기도 하지만, 나에게 인상 깊었던 첫 장면은 바로 그 커다란 캠퍼스를 하나 가득 채운 거대한 가로수 숲 때문이었다.
국제개발단체에서 필리핀 대학교의 지역개발학과 사람들과 미팅이 있는 날에는 그 가로숲 사이를 걷는 것만으로도 왠지 도심 속 영화 아바타 숲의 기운 속에 들어가는 느낌이라 항상 힐링이 되는 장소였다.
그렇게 2년 동안, 나름 조금은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던 곳을 막상 입학을 해보고 싶어 찾아가려고 하니 나무 빼고 모두 낯선 세상처럼 느껴졌다. 그 수많은 캠퍼스들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 중 하나로 꼽히는 사회과학대 캠퍼스 안으로 들어가니, 지역개발학 캠퍼스와는 달리 한참 긴 복도와 높은 계단들이 있었다.
그 가장 깊고 막다른 복도 끝에 있던 곳에 낡은 팻말 하나가 눈에 띄었다.
“Department pf Anthropology “
나는 그 생전 처음 보는 낡은 팻말을 마주하는데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찐이다.’
나는 이상하게 무슨 선택을 하기 전 단순히 그곳에 대해 아는 것만이 아니라 할 수 있다면 그곳에 직접 가보는 것이 중요했다. 물론 직접 가보고 느꼈던 그 무엇이 막상 직접 해보고 난 뒤에는 또 한참 달랐구나를 나중에야 알게 되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직접 가보고 나서 결정이 된 것들에 대해선 나중에 후회하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직접 갔는데도 거절을 당하거나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적어도 직접 가서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분위기, 정보, 사람들 중 하나라도 더 알게 된다면 분명 더 나은 선택에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한 그 어두운 복도 위 낡은 명패를 보는데 심장이 왜 두근거리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스웨덴에서 마주했던 사회인류학이라는 명패보다는 뭔가 더 인류학이랑 어울리는 분위기라는 느낌이 든 것 같았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조심스레 노크를 한 번 했는데, 안에서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책상 두 개로도 이미 가득 찬 매우 아늑한 분위기의 오피스에는 나이가 조금 있어 보이시는 아주머니 한 분이 앉아계셨다. 특별히 불친절하지도 않았지만, 다른 필리핀 사람들 답지 않게 첫인상부터 친절하지 않은 것이 인상 깊었다. 정중하게 입학에 필요한 외국인 전형에 대한 정보들을 물었는데, 그에 못지않게 정중하게 모든 정보들은 학과 홈페이지에 나와있다는 답변을 듣고 나왔다. 그런데 사람은 참 이성적이지 않은 동물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자 한 것인지, 나는 이상하게도 그런 지극히 평범하고 짧은 경험을 하고 나온 사무실에서 나는 이곳을 지원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사실 필리핀에는 인류학 전공을 가지고 있는 학교가 하나 더 있었다. 필리핀 국립대학교가 우리나라의 서울대 같은 느낌이라면 그 옆에 위치한 아테네오라는 사립대학교가 연고대 느낌인데, 그곳에도 인류학과 과정이 있긴 했다. 아테네오에는 ’ 문화인류학‘과가 있었고, 필리핀 국립대에는 그냥 ‘인류학’과가 있었는데 문제는 내가 아무리 그 차이점을 찾아보더라도 그 당시에는 그 차이점이 그다지 잘 와닿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결국 학과 홈페이지들을 모두 꼼꼼히 살펴본 뒤, 내 마음을 결정하게 한 단 한 가지의 차이점은 바로 커리큘럼에 있었는데, 바로 “개발”인류학 과목의 유무였다. 국립대 과정에만 포함되어 있던 그 과목 때문에 얼떨결에 나는 문화인류학이 아닌 인류학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그 둘의 차이를 입학하기 전 더 제대로, 최대한 알아보지 못한 대가는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바로 알게 되었다.
아무튼 나는 내가 그렇게 꽂혀버린 ‘개발’ 인류학을 배우기 위해서는 그 학문을 제대로 가르쳐 줄 사람들의 콧대가 높은 사람들이길 원했던 것 같다. 국제개발에서 흔히 떠오르기 쉬운 굶주리고 헐벗은 사람들과 그들을 위해 후원하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친절한 광고 속 현지 사람들이 아니라, 자원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현지의 맥락과 사정을 모른 채 무작정 지원하려는 사람들에게 따끔하게 현지 사정을 인지시키고 어떻게 하면 현실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을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런 기대감이 이유 없이 과한 친절과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친절을 나도 몰래 구분하게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특별히 과하게 친절하지 않았던 과사의 분위기가 오히려 나를 더 끌리게 만들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