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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Dec 30. 2020

누구나 일어났으면 하는 마법

그와 나의 재회를 이어준, 일 년 전 비행기 티켓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
그런데...
원숭이는 왜 나무에서 떨어졌던 것일까?

가끔은 왜 이런 질문이 떠오르는지 질문을 하는 나조차도 참 낯설 때가 있다. 원숭이는 왜 갑자기 나무에서 떨어졌을까? 그러다 또 다른 생각이 뜬금없는 질문을 덮고, 그렇게 일상의 하루하루를 보내다 문득 내가 그 원숭이는 아니었나 싶은 순간들이 쌓여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소였다면 처음 나가는 외국이라도 혼자서 지하철도 잘 찾아 타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찾지 못할 때. 평소였다면 방향감각에 있어선 낯선 공간에서라도 직감으로 찍어내서 목적지에 도착하고 마는 내가 그날은 어이없게도 틀려 버릴 때. 평소였다면 하루 종일 눈물이 흘렀을, 누군가를 떠나보냈던 과거의 어느 날이 그 날은 신기하게도 눈물 한 방울 없이도 따뜻하게 느껴질 때.

이제는 내가 택하는 어떠한 선택도 계획대로 되는 것이 언제나 좋은 것만도 아니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나쁜 것만도 아닌 것을 조금씩 알아가는 서른 즈음. 평소였다면 분명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나무를 탔을 원숭이가 그 날 그렇게 나무에서 떨어졌던 이유는 어쩌면 그렇게라도 만나게 되는, 만나야 하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도깨비 공유님의 말을 빌려 다르게 표현한다면, "누구나 일어났으면 하는 마법", 인연이나 운명같은 것 말이다.






나는 그런 마법은 여행에서나 일어나지 않을까 싶었다. 언젠가 읽은 한미일 드라마 분석을 보면 남녀 주인공들은 일본 드라마에선 서로 배우게 되고, 미국 드라마에선 같이 일을 하는데, 한국 드라마에선 모두 사랑에 빠진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한국인이어도 한국 드라마에서 매번 일어난다는 사랑에 빠지는 일 같은 건 잘 생기지 않았다.


대신 나에게 여행은 꼭 어떤 사람이 아니더라도 여행하는 도시나, 그곳의 분위기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사랑에 빠질 수 있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는 순간을 선물해주곤 했다.






나에겐 한 해 전부터 준비한 여행이 있었다. 이름하여 인류학 대학원 쫑파티 여행. 2년짜리 대학원 기간 중 처음 있던 여름방학이 어쩌다 보니 마지막 방학이기도 했다.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에 대해 깊이 있게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해보니 무척 감사하고 뜻깊은 일이었다.


물론 인류학을 공부해서 어떻게 먹고살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인류학이 경제학이나 컴퓨터공학 같은 실용학문보다 취업에 유리한 것은 아니었지만, 인류학을 마치고 난 뒤의 걱정이 현실인 만큼 인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기회를 갖게 된 감사함도 부정할 수 없는 내 마음의 진심이었다.


특별히 그 독특한 학문인 인류학을 동남아시아에서 한 덕분에 인간을 이해하는 시각이 굉장히 다양할 수 있구나를 느꼈지만, 여전히 학문이라는 틀 안에서 이론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서양의 이론, 서양의 시각을 떼어낼 순 없었다. 같은 아시아인이라고 하더라도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의 차이를 느끼며 동시에 서양의 이론을 배우면서 나는 서양에선 왜 이런 인간관, 세계관을 같게 되었는지 궁금했고, 그 질문의 끝에서 나는 인문주의, 르네상스라는 시대에 꽂히게 되었다.


마침 싱가포르에서 만난 친구가 이탈리아, 플로렌스라는 곳에 산다고 했는데 뭔가 무척 유명한 곳인 것 같은데 왜 이리 이름이 낯설지 하면서 다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그 플로렌스가 내가 알고 있던 피렌체의 영어 이름이었다! 서양에서 처음 르네상스가 시작된, 인문주의가 꽃 핀 곳. 그래서 나는 일 년 전부터 피렌체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어두고 대학원 수업이 모두 끝나면 한 달 동안 피렌체에 머물기로 계획하고 관련 책과 자료들을 고루 찾아보았다.  







그리고 정말, 일 년이 지난 뒤

나는 피렌체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어릴 적 봤던 냉정과 열정사이의 피날레를 장식했던, 두 사람이 다시 만난 두오모 성당 꼭대기 위에도 올라섰고, 성당 주변의 작은 골목골목도 원 없이 걸었다.





책에서, 영화에서, 다큐에서 수없이 봤던 피렌체의 전경이 정말로 내 눈 앞에 펼쳐질 때는 워낙 책으로만 한 해동안 봐와서인지 현실인지 책인지 조금은 헷갈리기도 했다.


피렌체에 보름을 머물며 낮에도, 초저녁에도, 한밤 중에도 틈만 나면 올랐던 미켈란젤로 언덕. 오를 때마다 어떨 땐 중세시대, 두오모 성당이 없던 피렌체로도 보였고, 어떨 땐 르네상스 시대, 기나긴 드레스와 화려한 비단옷을 입었을 피렌체 사람들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모르는 게 약이다'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서로 마주 보고 달려가는 치킨게임 같은 옛사람들의 지혜 같지만, 여행에서만큼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것 같았다.


비록 죽어서 묻히진 못했지만 살아생전 단테에게 미안했던 만큼 피렌체는 단테를 크고 작은 모든 곳에서 기억하려는 듯했다. 신곡을 읽으며 봤던 지옥과 연옥, 천국을 그린 천장화를 두오모 성당에서 직접 보는 것도 신기했지만 거리, 골목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단테의 모습도 숨은 그림 찾기처럼 즐거운 시간 중 하나.







너무 많은 작품과 장소들 때문에 어느 순간에는 모든 것이 비슷해 보이고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피렌체. 그러나 일년 내내 책을 읽고, 영상을 보고, 피렌체에 직접 책과 영상을 가지고와 걸어 다니면서 찾아본 덕분에 여행의 재미는 배가 되었다. 책에서는 정면만 볼 수 있었다면 실제에선 뒷면, 측면이 모두 보이고, 이차원의 평면이었던 건물도 삼차원의 공간이 되어 그 안에 들어가 볼 수도 있다는 것이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어느 날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이탈리아스럽다 싶은 길을 걷다 문득 내가 이곳을 본 적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둘러 노란 벽을 따라 무언가를 찾다 발견한 작은 석판 하나. 이탈리아 사람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인 미켈란젤로가 적혀있었다.


그에게도 지금의 명성을 얻기 전까지 오랜 수습생활을 했고, 그 수습생의 시작인 그의 재능을 알아본 스승이 있었다. 이 길 위에서 미켈란젤로를 메디치 가문의 지원으로 이끌어준 스승, 지오반니와 그가 만났다. 인생이 길과 같다면 우리 모두가 길 위에 있듯, 이 길이 우리에게도 좋은 스승에게 이끌어 주지 않을까. 다행히 나에겐 떠올려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존경스러운 마음이 절로 드는 몇몇의 인생의 선생님이 계셨다.






이렇게 역사의 중심에 거대한 조상들을 얹고 사는 후세의 사람들은, 특히 예술가들은 어떤 느낌일까. 어딜 가나 우리에게 이미 알려진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나는 특히 나와 같은 2030, 청년세대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다.


이탈리아나 그리스는 특히 유명한 조상들 덕분에 관광업으로 먹고 산다고 하지만, 관광업과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정말 그렇다 쳐도 예술을 이어가는 청년들에겐 어떨까 궁금했다. 이미 오백 년 전에 이탈리아만이 아닌 세계 전체적으로, 세기를 넘어 기억될 것이라 칭해지는 천재들과 그들의 작품이 떡하니 존재하는 곳에서 지금, 그곳에서 살아가는 청년 세대의 예술가들에겐 그 전통이 예술가로서 무거운 짐일까 특별한 혜택일까. 이보다 더 완벽하게 만들 수 있을까 싶은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들을 골목골목에서 해학적으로 풀어낸 그림들을 보며 보는 사람 입장에선 적어도 웃음이 지어졌다.







내 인생 첫 해외생활이 스무 살에 떠났던 남아공이었는데 그곳 교회는 우리나라 교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 이후로 새로운 도시나 나라에 갈 때마다 나는 지역의 교회를 찾아갔다. 필리핀에서는 현지 교회를 다녔고, 핀란드와 스웨덴을 여행할 땐 루터교 교회를 찾아갔다. 그리고 이곳, 피렌체에서는 처음 영국 국교회, 성공회 교회를 찾아갔다.


이곳은 평일 밤엔 오페라 공연을 하는데, 오페라 나비부인을 보러 갔다가 성공 회당인 줄 알고 일요일에 다시 찾았다. 종교적인 장소엔 수많은 상징과 의미와 의식이 숨어있다. 무엇보다 나의 흥미를 사로잡는 것은 교단에 어떤 사람들이 오르냐는 것이었는데, 핀란드의 루터교회에선 남녀 각각 두 분이 올라가서 놀랐는데 이곳에선 세분이 올라가셨다.


처음 드려본 성공회 예배라 많은 상징과 의식을 이해할 순 없었다. 하지만 며칠 전, 미켈란젤로와 지오반니에 대해 전해오는 이야기 중에서도 신의 계획, 삶의 목적에 대한 단어가 기억에 남았는데 그날 부른 찬송가 제목이 다시 한번 그 단어들을 떠오르게 했다.






그리고 나는 일 년에 한 번 있다는 피렌체의 수호신, 요한 탄생일 예배를 무려 두오모 성당에서 드리는 경험도 함께 했다. 여행 전부터 예배 장소와 시간을 찾아보고 이른 아침부터 두오모 성당 앞에 줄을 섰다. 덕분에 나는 꽤 앞줄에 앉아 대규모의 성직자들의 의식과 어린이, 성년 합창단의 찬송을 단테의 벽화와 신곡의 천장화 아래에서 들을 수 있었다.





이름 모를 수많은 국기와 정장을 빼입고 경호원의 보호를 받는 유명인들이 성당 주변에 도착했다. 수많은 피렌체 사람들이 그 옛날, 피렌체의 가장 화려했을 시절, 내가 궁금해하던 르네상스 시절의 전통의상을 입고 행진과 공연을 했고 모두가 함께 두오모 성당에 들어가 예배를 드렸다. 하루 종일 도시 곳곳에서 다양한 행진과 행사가 이어졌고, 노을이 질 무렵 사람들은 여럿이 떼 지어 아르노강 주변으로 발길을 옮겼다.






피렌체를 가르는 아르노 강을 잇는 세 개의 다리와 강변에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노을에 비친 사람들의 그림자가 견우와 직녀를 이어준 까치처럼 빼곡히 까맣다. 이들이 기다리는 것은 피렌체 전경을 볼 수 있는 미켈란젤로 언덕 너머에서 피어나는 불꽃놀이를 바라보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일 년에 한 번 있는 피렌체의 가장 화려한 날, 성 요한의 날도 피렌체에 머무는 보름 동안 바라볼 수 있었다.






일 년 동안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생각하며 준비했던 피렌체 여행. 풍성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가치와 출중했던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잊지 못할 문화재들을 보고 왔지만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은 공간은 작은 교회 하나였다.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사로잡는 두오모 성당이나 산 지오바니 성당처럼 화려한 건축물이나 문이 없어 겉으로는 그저 오래된 교회인가 싶지만 그곳은 무려 메디치 가문 사람들의 시신이 안장된 예배당이었다. 메디치 예배당의 가장 유명한 공간은 모두 공사 중이라 그 화려한 천장화와 조각상들을 볼 순 없었지만, 일층에 마련된 작은 무덤들은 돌아볼 수 있었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예술작품 같은 곳에서, 지하 공간에 마련된 차분한 돌 묘지는 오히려 더 기억에 남았다.


이 화려한 명성과 부와 재능을 가진 사람들도 결국엔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한 줌의 재로 돌아간다는 것. 신의 영역을 넘어 인간에 대해 자각하고 인간의 능력을 마음껏 풀어낸 만큼이나, 인간은 아무리 유명하고 화려한 삶을 살았더라도 살아 있는 시간이라는 제약이 있고 그때가 지나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르네상스를 궁금해하던 나에게 피렌체가 다시 한번 알려준 것 같다.


다만 피렌체의 화려한 시절에 살았던 유명한 메디치 가문의 사람들만이 아니라 메디치 가문의 명성이 사라져가던 시기의 마지막 자녀들에 대한 메디치 가문이라는 연극 공연에선 이런 말이 있었다. 가장 마지막에, 가장 개인적으로 향유하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었을 갑비싼 예술품과 건축물과 조각들을 메디치 가문 사람들이 처음으로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공개하고 기부를 했기 때문에 이런 예술을 우리 같은 사람들도 향유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람들은 그래서 메디치가문의 사람들을 죽어서도 기억하고 좋아한다는 의미였다. 우리나라의 사극도 종류에 따라 얼마나 역사적 고증이나 사실에 바탕으로 만들어졌는지 달라지기 때문에 이 연극 역시 얼마나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떻게 귀족들이 누리기만 하던 예술을 이렇게 남녀노소 모두가 관람하고 감상할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그것 역시 지금처럼 당연하지 않은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 당연함과 당연하지 않음 사이에 내가 궁금해했던 르네상스와 또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근대를 구분하는 선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렇게 내가 그렇고 궁금해하던 르네상스와 그 한가운데에 살았던 메디치 가문의 흥망성쇠 이야기를 들으며 느낀 결론은 결국 누구에게나 삶은 한 번 뿐이니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지금 이렇게 살아있을때 해야된다는 것. 어쩌면 지금의 내가 억만금을 갖고 있던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로렌초도 지금은 가질 수 없는 것을 갖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저렇게 도시 하나를 오백년 넘게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든 메디치가 사람들은 싸늘한 돌무덤에 누워있지만, 이렇게 겨우 대학원 과정 하나 끝내고 한 치 앞을 모를 가난한 대학원생인 나는 살아있는 것이 어찌보면 마법같은 일이 아닐까? 인간이 만든 세상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싶은 자본에 의해 흘러가는듯 했지만, 그 자본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을 자연이라는 마법이 다시 조절해가는 느낌. 나 역시 모든 인간이라면 그렇듯 자연의 흙으로 돌아가기 전, 내 시간이 모두 지나가기 전에 인간으로서 느껴봐야 할 소중한 것들을 경험하고 싶어졌다.






이렇게 나에게는 오래 두고 보면 볼수록 더 많이 보이는 도시, 피렌체를 당일치기나 일박으로 오는 사람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비행기표를 제외한 여행경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12인실, 6인실, 4인실 등 다양한 숙소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무언가 길게 여행의 즐거움을 함께 나눌 여행 메이트를 만나는 것은 어려웠다.


유럽 아이들은 관광지보다는 록 페스티벌이나 쿠킹 클래스 등 자신만의 이유로 피렌체에 오는 경우가 많았고, 한국에서 온 친구들은 짧은 시간 안에 가고 싶은 곳은 많다 보니 하루 이틀 머물거나, 심지어는 당일치기로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매일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언제나 함께 여행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는 것,  마음이 아쉽게 다가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날수록 마음 한편에서는 이젠 만날 때마다 해야 하는 자기소개는 그만하고 더 많은 이야기와 여행을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처럼 도시의 불빛이 강물 위에 반짝이던 아르노강과 베키오 다리. 세계사라고 하면 대부분 유럽사나 중국사가 전부였던 탓에 우리에겐 익숙한 유럽의 강들을 떠올리면 당연히 한강 정도는 되는 큰 강이겠지 싶었다. 그러나 막상 유럽의 유명한 강들을 품은 도시에 가보면 카메라 한 컷에도 모두 찍힐 만큼 강들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작은 물줄기라도 역사에 기록될 만큼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이 사는 주변으로 물줄기가 흘러 왔고, 그만큼 이 작은 아르노 강 위에도 다양한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왔다.


2차 세계대전 시절, 독일군의 후퇴를 명하던 히틀러가 다른 다리들은 모두 폭파해도 이 다리만큼은 남겨두라고 했다는 일화로도 유명한 베키오 다리. 그 베키오 다리를 매일 같이 넘나들고, 또 그 주변 아르노강가를 걸으며 사람들의 두 눈동자를 보고도 수백만 명을 죽인 사람이 어떤 부분에 있어 이 다리 하나만큼은 남겨두라고 했을까. 이 베키오 다리의 어떤 부분이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궁금했다.






그는 아르노강 위에서 바라보는 노을을 무척 사랑했다고 한다. 다행인지 어떤지 그런 독재자에게도 자비를 베풀어준 자연의 아름다움 덕분에 베키오 다리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고, 유명한 고전 작품들에서조차 국민 첫사랑 이름의 대명사로 남겨진 베아트리체와 단테의 사랑이야기도 지금까지 사람들의 마음에 와 닿을 수 있게 되었다.


과연 9살과 10살의 나이에도 평생을 기억할 첫사랑을 갖는다는 것이 가능할까 싶었지만 아르노강 위의 모든 이야기들은 그 사람이 얼마나 나이가 어리든 많든, 얼마나 사악하든 착하든 인간이라면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듯했다.


그리고 이제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사람이라면 모두 하는 듯한 그 사랑이라는 것을 남들의 이야기만이 아닌 내 이야기류 만들고 싶었다. 그 상대가 이 아이든 다른 사람이든 말이다. 그건 이제 곧 삼 개월 만에 다시 만날 우리 두 사람에게 달린 결정이었다.






발리 이후부터 매일 연락을 주고받던 우리는 내가 피렌쳬예 온 뒤로도 꾸준히 이어졌다. 여행 초반에는 그토록 오랫동안 준비했던 여행이었고, 인류학 공부를 마무리하고 돌아본다는 나만의 주요 과제 때문에 나는 며칠 뒤 이 아이를 삼 개월 만에 다시 만나는 재회보다 내가 책과 영상으로만 일 년 동안 봐왔던 그 피렌체에 있는 것에 더 들떠있었다.


매일 짧게나마 그와 이야기를 하면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피렌체 전경에 빠져들었는지, 왜 이탈리아가 필리핀보다 더 더운 것 같은지, 도대체 저런 전근대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나비부인 스토리가 어떻게 오페라의 고전으로 여전히 인정받는지 등등 피렌체에서 느꼈던 나만의 이야기로 가득했었다.


그런데 피렌체에서의 일정이 짧아지고, 피렌체와 르네상스와 인류학에 대한 내 질문들과 회상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니 이제 이 여행이 끝나면 이어질 나의 르네상스, 그와의 두 번째 여행에 대해 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피렌체 여행은 일 년 전부터 스스로 모든 것을 준비했다면 독일로의 여행은 순전히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의 연속의 결과였다. 원래 만나기로 했던 스위스 친구와의 재회가 겨울에 불발이 되었고, 봄에 뜬금없이 찾아온 이 아이와의 만남에서 내가 여름에 피렌체에 가는 것을 들은 그 아이가 다시 한번의 만남을 제안한 덕에 계획에도 없던 독일로의, 우연이면서도 필연 같은 여행이 이어지게 되었다.


피렌체에 대한 글과 자료들은 무척이나 찾아 읽었지만 독일에 대한 글과 자료는 읽을 시간이 없었다. 내가 읽어야 하고 알고 싶은 것은 너라는 사람이었다. 내가 독일에 가는 이유는 딱 하나, 그 아이와 다시 만나서 우리의 관계를 정리할 것이다.





수많은 인파와 관광객이 붐비는 피렌체 기차역을 지나






가본 적은 없어도 이탈리아, 토스카나라는 이름하면 떠오르는 풍경들을 지나





이 뜨거운 한여름에도 아직 흰 눈을 간직한 알프스 산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하며





피렌체에서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마음이었다면 나는 독일로 향하는 동안 번져가는 노을과 함께 모르는 것이 약이다라는 마음으로 생각을 바꿨다.


그 아이에 대해서도, 독일에 대해서도 아는 것은 하나 없지만 있는 그대로부터 기억하는 것이 순서인 것 같았다. 생각보다 평지와 초원이 많고 노을이 강렬했던 첫인상의 독일.






그렇게 일 년 전 끊어 두었던 피렌체행 티켓이 일 년 뒤 이 아이와의 첫번째 재회로 이어지는 마법같은 역할을 했다. 그 아이를 만나러 이제 나는 뮌헨 공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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