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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Jan 04. 2021

첫눈처럼 설레는 한 해가 되길

베를린에서 새해를, 첫눈을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한 아침. 우연히 스친 창문 밖이 뭔가 하얗단 느낌에 혹시나 했는데 첫눈이었다!



베를린에 온 지 2년 만에 처음 본, 큰 눈이다. 눈이 내리다 비가 와서 다 녹아버리는 게 보통이었는데 올해는 처음, 겨울에, 제때에 눈이 왔다!


늦게 잠을 청한 터라 다시 침대에 누우려 했지만 이 눈을 보고 어찌 다시 잠을 청할까. 바로 내복에 양말 두 켤레로 중무장하고 집을 나섰다.



우리 집은 아니지만 지붕 위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에 남편은 벽난로를 갖고 싶다 했고, 나는 아 이럴 땐 군고구마가 딱인데, 독일엔 밤고구마도 호박고구마도 없는 게 아쉬울 뿐이다.





우리 집은 베를린 외곽이라 다른 지역에 가는 건 불편하지만 적어도 시내 사람들에겐 마음잡고 떠나야 할 숲이 걸어서 십분 내에 있다:)


서울 사람들에겐 산이 익숙하겠지만 유럽의 많은 도시 특히 베를린에는 이렇다 할 산이 없다. 대신 베를린을 둘러싼 경계에 이렇게 숲이 있다. 베를린 장벽 길이라고 하는데 예전 서동 독 시절, 동독 지역에 있는 유일한 서독 부분이 베를린에 있던지라 그 지역을 나눈 장벽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그 길 사이로 숲도 있고 자전거 길도 나있다:)

이름 모를 커다란 커다란 이파리 숲을 지나면 어느새 나는 자작나무 숲 안에 있었고, 또 조금 걷다 보면 어느새 소나무 숲 속에 있는 우리 집 길. 일 년 사시사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조용히 외치려 나서다가도 막상 숲에 들어서면 뭘 외치려 했더라 잊게 만드는 나와 남편에겐 대나무 숲과 같은 길인데 이렇게 하얀 숲은 처음이다:) 예쁘다.





새해 첫 일요일 아침, 숲길을 걸으며 나는 다양한 생명체들과 인사했다. 이렇게 차가운 눈 속에서도 색을 내는 이파리와 열매, 그 사이에서 눈에서 녹은 물을 부지런히 받아 마시는 작은 새들, 그리고 눈 밭을 어린아이처럼 뛰어다니는 강아지들까지.


어른 아이는 물론 강아지까지 이렇게 설레게 만드는 눈의 힘은 무엇일까. 가끔 우리는 이유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사랑에 빠지는, 무언가가 좋아지는 경험을 하게 한다. 나이가 들수록 잊고 싶지 않은, 그런 순수함 같은 것. 올해의 시작을 이 초심으로 시작하고 싶다.





베를린은 원래 비로 유명한데 올해만큼은 눈으로 시작한다. 베를린 사람들 말로는 예전에는 이렇게 눈이 오기도 했는데 최근 몇 년 동안은 기후변화 때문에 눈을 본 적이 없다 했었다. 코로나 때문에 자연은 정말 조금이나마 괜찮아진 건지. 그렇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말이다. 부디 인간도 자연도 치유가 되는 한 해가 되길 첫눈에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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