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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Mar 31. 2023

고고학이 과학적이면 단군할아버지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외국친구들에겐 신기한 기원전 2333년 10월 3일

역사는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과목이었지만 특별히 고고학까지 눈여겨본 것은 아니었다. 영문법이나 수학의 정석은 책의 맨 앞장이 가장 닳아있다고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고고학은 국사교과서의 가장 앞부분이면서도 그 뒤에 나오는 삼국시대, 고려, 조선 시대만큼이나 진하게 언급되진 않은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고등학교를 떠난 지도 15년이 넘은 뒤에 그때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필리핀이라는 나라에서 고고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들었을 때, 나는 멍했다. 우선 고고학이라는 과목 자체를 잘 알지 못해서 주어진 교재부터 잘 읽어가 보기로 했다. 고고학에 대한 영어들로만 가득한 고고학이라는 원서. 인류학을 공부한다면 열의 여섯명은 물어봤던 그 인디아나 존스와 가장 가까운 과목을 드디어 배우게 된 것이다.


첫 수업을 들어간 날, 생각보다 젊은 여자 교수님이 고고학을 가르쳐주시게 되었다. 고고학이라는 주제에 어울리게 인류학과 학생들 뿐만 아니라 역사학, 사회학, 정치학과 생들 뿐만 아니라 이슬람학과, 지역개발학, 필리핀학 등 정말 다양한 배경들이 함께했다. 이미 학생 한 명 한 명이 특정 분야를 오랫동안 연구하고 계신 분들이 많았고, 그래서 대학원 수업이라기보다 오히려 전문가 그룹인 것도 같아 나는 수업뿐만 아니라 사람 구경하는 재미도 생겼다.


고고학 수업을 시작하며 교수님은 첫 운을 떼었다.


“고고학은 과학적인 학문입니다.”


그 첫마디에 나는 충격을 받아 그 다음말이 기억나지 않았다. 고고학이 과학적이라니. 그 말을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탄식이 터졌다.


‘그럼 단군할아버지는 어떡해? 단기, 기원전 2333년은 뭐지? 우리나라 고고학은 어떻게 되는 거야!!!‘


평온하기 그지없는 고고학 수업 속에 나 혼자만 침묵의 혼돈 안에 빠졌다.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 학생이라고는 나 혼자뿐인 고고학 수업에서 고고학이 과학적이라는 말에 멘붕에 빠진 것은 나뿐인 듯했다.


지난 언어인류학 수업이 떠올랐다. 언어인류학의 마지막 과제는 바로 필리핀 사람들만을 드러내는 필리핀 사람들의 키워드에 대한 페이퍼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키워드란 정말 열쇠 같은 단어로 어떤 사회, 문화, 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는 그들만의 스토리와 맥락을 담은 특별한 단어 같은 것이었다. 필리핀 사람들의 키워드란 과제였지만 사실 필리핀 안에만 170여 개의 언어가 있다고 하니 그 언어마다 키워드를 찾고 의미를 알아내면 170여 개의 다양한 필리핀을 알게 되는 열쇠를 제공하는 셈이었다.


이렇게 필리핀 사람들조차도 잘 알지 못할 세분화된  전문적인 과제로 넘어가자 교수님은 내게 한국인을 대표할 만한 키워드로 과제를 제출해 보라고 하셨다. 필리핀 분인 교수님이 오히려 내게 ‘한’이나 ‘정’처럼 한국사람들만이 가지고 있거나 다른 언어로는 완벽히 번역할 수 없는 한국적인 키워드를 찾으면 된다고 하셔서, 나는 그나마 내가 알고 있던 키워드인 ’한 ‘과 ’ 정‘ 외에 다른 단어를 찾아야만 했다.


집으로 돌아와 한국인을 이해할 수 있을만한 키워드는 무엇이 있을까 며칠 동안 고민했다. 한과 정과 같은 단어를 찾으면 찾을 수야 있겠지만 뭔가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가치들처럼 이런 키워드는 분명 한국인에 대한 것은 맞지만 과연 지금도 일맥상통할까 떠올려보면 분명치 않은 것 같았다.


며칠 동안 리서치를 하다 그 며칠 동안 가장 많이 본 단어가 떠올랐다. 그 당시 한국을 가득 채웠던 단어, ‘헬조선’이었다. 헬조선은 기본적으로 영어의 헬과 조선이라는 우리말을 조합한 합성어였는데, 나의 눈길을 잡은 것은 바로 ‘조선’이라는 단어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국가의 이름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 단어야 말로 우리나라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그 첫 순간부터 그 나라의 가장 최근이라 여겨지던 밀레니얼 세대들까지 신생어로 조합해 사용한 한반도의 모든 시간에 살아있던 키워드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은 단군할아버지가 처음 우리나라를 지어서 만든 나라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후에 단군 할아버지의 조선을 이은 후예라는 의미로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며 조선이라 부르며 단군할아버지의 조선을 고조선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국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그러면 그 고조선은 단군할아버지에 의해 서기 2333년, 개천절에 정말로 세워졌을까? 유치원에서부터 한국인 빛낸 100명의 위인들을 부르며,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단군할아버지가 터 잡으시고 홍익인간 뜻으로 나라 세우니 대대손손 훌륭한 인물도 많아’를 마치 애국가처럼 부르고 다니던 우리였다. 고고학이 과학적이던 풍속적이던 상관없이 우리에겐 단군할아버지와 개천절이 있었고, 한국에서 한국 사람들끼리 이야기할 때는 누구 하나 질문을 던지지 않던 마치 사도신경을 외우듯 자연스레 넘어가던 구절이었다.


그런데 외국인들만 있는 공간에서 그것도 고고학이라는 전문적인 수업 중에서 내가


“우리나라는 원래 곰이었던 웅녀와 하늘의 신이었던 환웅 사이에서 태어났던 단군할아버지가 서기 2333년에 홍익인간의 뜻으로 나라를 세우셨고, 그날이 10월 3일이라 개천절이라는 국경일로 기념도 하고 있어.”


라고 말한다면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 놀라 아마 이렇게 물어볼 것이다.


“그걸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아?”


그럼 나는 생각할 것이다.


‘어떻게 나는 이렇게 자세히 알지? 그런데 나는 왜 한 번도 이런 질문을 한국에서는 해본적이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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