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니모를 찾을 수 없던 이유
5년 전 이맘때 즈음, 나는 남편과 필리핀 코론섬을 갔다. 독일에서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그다음 달이 필리핀 대학교의 졸업식이었는데, 졸업장을 받으려면 직접 학교에 가야 했기 때문에 필리핀을 직접 가지 않고는 별다른 선택 사항이 없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우리는 허니문을 필리핀으로 가서 내가 6년 동안 살았던 곳을 남편에게 소개해주기로 했었다.
그렇게 코론섬의 푸른 바다가 펼쳐진 숙소에서, 남편은 이른 아침 수영을 하고 와서 나에게 말했다.
“바닷속에 니모랑 친구들이 진짜 많아.”
그 말을 듣고 나는 부리나케 바다로 뛰어 들어가 바닷속을 헤엄쳤는데 허탕이었다. 정말 모든 수풀들을 뒤졌지만 겨우 한 수풀 뒤에 손톱만 한 크기의 니모 두 마리가 전부였다.
기운이 다 빠져서 돌아온 나는 남편을 추궁했다.
“니모 친구들은 커녕 니모 조차도 손톱만 해서 겨우 두 마리밖에 못 찾았는데 도대체 네가 본 아이들은 어디 있는 거야.”
남편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수영복을 다시 챙겨 입더니 나를 바다로 데려갔다.
그렇게 같이 해변가에 와서야 알았다. 남편은 카메라의 3배 줌인을 해야 보이는 곳까지 수영을 해서 니모와 친구들을 만나고 있었고, 나는 3배 줌 아웃을 하는 곳에서 니모를 찾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보덴 호수에 와서도 그렇게 다른 거리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다. 줌인을 해야 보이는 곳까지 혼자 멀리 수영을 하며 떠났다가 다시 천천히 돌아오는 남편을 보며 생각했다.
신기한 것은 남편은 바다가 없는 나라에서 태어났고, 나는 바다가 코앞인 곳에서 나고 자랐다. 나는 기억이 가물가물한 아주 어린 시절, 목욕탕에서 처음 물에 떴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론 분명 수영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수준까진 되었지만 한국에 있을 때 까진 그 수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언제나 발이 바닥에 닿을 수 있다는 조건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남아공에서 처음 발이 닫지 않는 먼 곳까지도 사람들이 수영을 하는구나 싶었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바다는 언제나 내가 살던 곳의 바다가 기억에 남아 나를 움직였다.
갯벌이 있는 바다에선 물이 들어온다는 것은 이제 바다에서 나와야 하는 시간을 의미했고, 모래가 있는 해변에서는 언제나 안전선 안에서만 수영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어 굳이 발이 닿지 않는 곳까지 헤엄칠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그러다 남편을 만나 아마 혼자였다면 절대로 나가보지 않았을 만큼의 깊이까지를 헤엄쳐 나섰던 것 같다. 물론 나는 남편과 달라서 구명조끼를 꼭 착용하고 발이 닿지 않는 곳에도 구름이 있는 느낌처럼 물속을 밟으며 멀리 더 멀리 나아갔었다.
그리고 다시 물속으로 얼굴을 넣은 순간, 나는 남편이 말했던 대로 니모는 물론 내 얼굴만큼이나 큰 물고기와 눈을 마주치곤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를 쳤던 기억이 난다. 어떤 장비도 없이 그냥 나로써 바닷 속에 들어가 마치 인어공주 속 세상이 영화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눈 앞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던 느낌. 6년을 살았던 필리핀이었지만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필리핀의 모습이었다.
그때의 바다가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에 남은 나는 요즘에도 문득 그때 내가 남편에게 필리핀을 보여준 것인지 남편이 나에게 필리핀을 보여줬던 것인지 헷갈린다. 이렇게 한 사람을 알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미지의 세계를 데리고 올 수 있다는 것을, 어릴 적만 해도 우리 집 근처의 풍경이 다도해 바다였다면 지금은 보덴 호수로 바뀐 것을 보며 새삼 또 한 번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