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오래 살면 입맛이 바뀔까?
잘지내요? 오늘 하루는 어땠어?
회사를 다녀온 남편은 나에게 항상 이렇게 묻는다. 아무리 교과서에서 나오는 영어라고는 하지만 확실히 영어는 물론 독일어까지,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라는 질문은 일상에서도 자주 쓰이는, 일상의 안녕을 확인하는 말인것 같았다.
영어로는 "How are you? How was your day?"라고 한다면, 독일어로는 "Wie geht's dir? Wie war dein Tag?" 질문인데, 우리나라의 계엄령이나 우크라이나 또는 팔레스타인 전쟁처럼 아주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웬만해선 별일이 없는 독일 소도시에서도 남편은 항상 그 질문을 나에게 한다.
그런데 또 신기한 것은 그 질문을 들을 때마다 무슨 하루 되감기 버튼이 눌린 카세트테이프 마냥 정말 아침에 일어나서 지금까지의 하루를 신기하게 돌아보게 만드는 질문이라는 것이었다. 버퍼링이 몇 초 걸리고 난 뒤 나의 대답은 항상 같은 질문처럼 거의 일관적으로 같은 답을 되풀이했다.
"바빴어."
괜찮았어도 아니고 바빴다고 하면 사람들은 보통 무엇 때문에 바빴는지 궁금하게 된다.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였는데, 집에 하루 종일 있는 내가 왜 항상 바쁜지는 남편에겐 미스터리였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재택근무를 했는데, 그날은 남편이 나도 모르게 나를 관찰했었나 보다. 하루가 다 지날 때쯤 그가 나에게 말했다.
"진짜 바쁘네."
나를 관찰해 보니 내가 정말 하루 종일 바쁘더란다. 나는 무엇 때문에 바빴을까?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입이 정말 짧고, 까탈스럽기 그지없어 밥을 챙겨주기가 여간 힘든 어린이 었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건 세 살 버릇이 정말 여든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마흔까진 이어진 것 같았다.
양은 상관없이 나는 양이 적더라도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 좋았다. 나는 배고프면 아무거나 먹어도 괜찮은 것이 아니라, 아무거나 먹으면 속이 더 아파서 안 먹느니만 못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점심에 먹었으면 같은 음식을 저녁에는 먹고 싶진 않았다. 적어놓고 보니 정말 까탈스러운데, 적어도 그 까탈스러움을 남에게 전가하진 않았다 (엄마 빼고).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밥을 해 먹는다는 것
그래서 나는 무척 바빴다. 한국이었다면 주변에서 계절에 따라 자라나는 제철재료로 반찬과 김치를 만들어다 주실 엄마나 이모들이 옆에 계셨겠지만, 또는 음식 하기 귀찮은 날에는 나보다 더 맛있게 요리해서 집 앞 대문까지 배달해 주는 음식점들도 널렸겠지만,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독일의 작은 소도시였다.
같은 도시에선 아직 다른 한국 사람들을 본 적이 없고, 집은 시내에서 떨어져 있어 배달을 오는 음식점도 없고, 배달을 해준다고 할지언정 집에서 해 먹는 것보다 맛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여기서는 먹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이 직접 만들어 먹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점심에 먹고 싶은 음식을 해야 했고, 점심에 먹은 것을 저녁에 또 먹고 싶진 않아서 또 저녁을 따로 해야 했다. 그렇게 음식을 준비하고 만들다 보면 하루 종일 뭔가를 부산히 하고 있었는데 하루가 다 지나가 있었다. 진짜 삼시 세 끼로 하루가 다 가는 생활이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도 바쁜 느낌이었고, 외부자의 시선에서 관찰한 남편이 말하기에도 나는 바쁜 하루를 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바쁘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합쳐놓고 나니 과연 이게 맞는가 싶었다.
나는 그저 내가 아니면 해줄 사람이 없어서 타지 생활에 기운 나는거라곤 한국 음식 뿐이라 먹고 싶은 것을 요리했을 뿐인데, 그럼에도 정말 내 하루라는 시간의 대부분을 요리하는데만 사용하는 것이 괜찮은 걸까?
해외에 오래 살면 입맛이 바뀔까?
어쩌다가 해외에서, 그것도 이미 조리가 된 배달음식은커녕 아시아 음식 재료도 마음대로 수급할 수 없는 독일의 작은 소도시에서 살게 된 나는, 나의 많은 시간을 요리하는데 소비하고 있었다.
지금 내가 해준 밥을 먹어본 친구들은 잘 믿지 못하긴 하지만, 사실 나는 20분 이상 요리해야 하는 음식을 서른 살이 다 될 때까지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엄마가 요리를 엄청 잘하시고 또 손도 빠르셔서 내가 도와드리려 주방에 가면 내 손이 너무 느려 엄마의 요리에 방해가 되는 수준이었고, 그렇게 전광석화의 속도로 만든 엄마의 음식은 내가 몇 시간이 걸려 해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대학은 기숙사에 지내서 음식을 한 적이 없었고, 그래서 내가 처음 매일같이 음식을 했던 것은 스무 살에 처음 갔던 남아공에서였다.
이제는 거의 20년 전의 일인데 그때 케이프타운에는 한국 음식점은커녕 음식재료를 살 수 있는 곳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밥과 김치 없이 6개월을 살아봤는데, 그때 나는 이렇게 계속 외국에 살면 아무리 한국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정말 한국음식 없이 사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는가 싶었었다. 외국에 오래 살면 살수록 내가 사는 곳의 음식에 더 적응을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경우는 현지 입맛과 해외생활기간은 비례 관계가 아니라 반비례로 움직인다는 것을 서른이 넘으며 알게 되었다.
이제는 분명 지금껏 한국에서 살았던 시간만큼이나 다른 나라에서 살아온 시간도 얼추 비슷해지는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반대로 입맛만큼은 한국, 심지어는 도시의 배달음식 입맛도 아니고 옛날에 엄마나 할머니가 해주시던 남도의 시골 입맛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해외에 오래 살수록 여전히 나는 한국에 사는 사람만큼은 아니지만 적어도 하루에 한 끼는 밥이 먹고 싶었고, 어느 나라로 이사를 가든 내가 가장 애지중지하며 챙겨가는 필수용품이 밥솥이라는 것을 남편도 알게 되었다.
내가 살았던 나라들이 필리핀과 독일이 아니었다면.
물론 만약 내가 10년 넘게 해외에서 살았던 그 두 개의 나라가 필리핀과 독일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물론 이 두 나라보다 훨씬 열악한 나라들도 무척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음식이 맛없기로 대결하자면 아마 각 대륙의 대표주자들로 꼽힐 그 두 나라를 모두 여행하거나 살아봤던 친구들은 나에게 측은지심을 표시하기도 했다.
“너는 어쩜,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네가 운도 지지리도 없지. 하필이면 주변에 맛있는 요리 넘쳐나는 인도네시아나 베트남 대만, 프랑스나 이탈리아를 제쳐두고 어쩌면 그중에서 제일 맛없는 나라 두 개만 콕 찍어서 살고 있네. 어떻게 그 긴 시간을 네가 그 음식의 황무지인 두 나라에서 버텼을까 싶네. 그래도 먹고살겠다고 이렇게 요리를 해 먹으며 버틴 거 보면 경외심마저 느껴진다.”
두 나라에 모두 주소지를 등록하고, 내일은 또 뭘 해 먹지라고 매일같이 생각하며 살아본 사람이 아니라면 도대체 위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와닿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두 나라를 여행을 가서 먹는 음식들이 아니라, 현지 사람들이 매일 먹는 주식이 무엇인지 알고 그 이웃나라 사람들은 무엇을 먹는지 아는 사람들이라면, 내가 왜 이렇게 요리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필리핀과 독일 음식 중에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몇 가지는 있다).
필리핀에서는 대체로 음식들을 아주 기본적인 양념인 설탕, 식초, 간장, 소금으로 간을 세게 해서 먹거나 아니면 더운 날씨 때문에 튀김 음식이 많다. 사실 필리핀은 산과 바다가 고루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질 좋은 원재료들을 구할 수는 있는데, 그 요리 방법이 원재료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거의 망가트리는 수준이었다.
독일의 경우는 정말 진한 잡곡밥을 먹는 듯한 느낌의 잡곡빵을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엄마는 보통 밥이 맛있게 되면 이제는 어떤 반찬을 맛있게 만들어서 더 맛있게 함께 먹을까 생각을 하는데, 독일은 온 정성을 빵에 담았는지 빵과 함께 무엇을 먹을까 하고 독일 음식들을 살펴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예를 들면 한 번은 남편의 독일 친구들 8명 정도가 함께 모여 연말에 퐁듀와 비슷한 라클렛이라는 치즈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형형색색의 야채들을 썰고, 다양한 치즈와 살라미, 크림치즈와 소시지들을 테이블 가득 펼쳐놓고 그릴에 함께 구워 먹는 만찬이었다. 모처럼의 풍성한 식탁이고 또 연말이라 내가 이 먼 타지에서 잘 먹고 산다고 확인시켜 드리려고 사진을 찍어 친척들 단체 채팅방에 사진을 올렸다. 그런데 쏟아지는 친척들의 말씀이
"세상에. 너는 양념도 하나 안된 생야채들에 죄다 냉장식품들만 사다가 뚜껑만 열어놓고 구워 먹고 있네. 짠하네 우리 조카."
였다. 나는 연말에나 큰 행사 때만 나름 맛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하고 보냈던 것이었는데, 생각해 보니 정말로 내 식탁 위에 있는 음식들은 야채나 고기 같은 경우 정말 썰어만 놓았고, 치즈나 버터나 살라미나 햄이나 크림치즈는 실제로 마트에서 사 와서 뜯어만 놓은 것들이었다.
남편의 단순하면서도 뼈 때리는 질문들
그렇게 따지면 정말 우리나라는 원재료도 최대한 좋은 재료들을 구하려 하면서, 심지어는 그 원재료도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먹을지 계속 고민하고 연구한다. 이렇게 볶아도 보고, 저렇게 무쳐도 보고, 참기름을 넣었다가 들기름을 넣었다가, 심지어는 채수든 육수든 요리할 때 붓는 물까지도 가만히 두지 않고 어떻게든 더 맛있게 만드는 방법을 찾는다.
그걸 우리는 (혹은 우리 집은) 음식을 먹는 사람에 대한 정성 또는 사랑이라고 했는데, 여기는 정성과 사랑도 알겠지만 그걸 누가 다 만드는지, 한 사람의 시간과 수고로 생각하는 듯도 했다.
남편이 처음 그야말로 상다리가 부러질듯한 남도 밥상을 보고 했던 첫 말은 감탄과 함께 이것이었다.
"이걸 누가 다 만들었어?"
음. 명절에 집에서 먹을 때는 가족들이 해주셨고, 음식점에서 먹을 때는 요리사 분이 해주신 것이었지만 나는 사실 명절에는 사랑이, 음식점에서는 돈이 이 음식들을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처음 생각했었다.
이미 처음부터 가득했던 밥상 위의 반찬이 계속 바뀌는 것을 보며 남편은 다시 한번 또 놀라서 물었었다.
"이건 누가 다 치우는 거야?
명절에 밥상 위 공간이 모자라 반찬 그릇들로 테트리스를 해야 할 만큼 친척들이 다리가 반찬들을 내올 때, 나는 어릴 때는 그냥 맛있게 먹는 것에 기뻐했었고, 중학생이 좀 넘어서야 그 많은 반찬들을 누가 다 해오고 누가 또 다 치우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그게 누군가 나를 이만큼 사랑해 준다는 의미로 기억에 남았는데, 남편은 그 밥상의 무게가 단순히 가족에게선 사랑을, 음식점에서는 가격을 의미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듯했다.
남편은 누가 음식을 다 만들고 또 다 치우는지를 알고 난 뒤 또 물었다.
"그런데 왜 식기세척기를 쓰지 않는 거야?"
이 질문에 답하려면 나름 인류학적인 접근이 필요했다. 요즘 젊은 신혼부부들과는 달리 할머니와 엄마, 이모 집에 식기세척기가 없는 이유는, 또는 있어도 안 쓰는 이유는 생각해 보니 사회문화경제적으로 나름 복합적인 원인이 있었다. 그러나 분명 우리가 이렇게 거대한 밥상 하나를 받고 또 치우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시간과 정성과 희생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은 사실 돈을 냈다고, 또는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또는 예전부터 여자들이 했으니 퉁쳐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을 만들고 치우는 사람이 누구나 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얼마의 시간을 들여 어느 정도의 신체적 영양소와 정신의 충만함을 채울 음식을 먹을지 균형을 잡아야 했다.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남편은 아내가 말하기 전에 미리 식기세척기를 사자고 하거나 제안할 수 있는 것이고, 어떤 날들은 불평 없이 간단한 독일식 아침을 먹다가도 어떤 날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김치를 같이 담그는 날들로 채워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맛있는 음식과 생활 사이의 균형
10여 년의 해외생활을 돌아보면,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세계 어디에 살던 스스로 해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있어서는 굉장히 큰 생존 능력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나는 내 요리 루틴에 뭔가 과부하가 걸렸다는 것, 일상의 부조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에게 필요한 에너지원만 섭취하기 위해 음식을 먹는 것이라면 그냥 캡슐들로 만들면 그만일 텐데, 그렇게 먹으면 나는 필요한 영양소를 다 채우고도 더 배가 더 고플 것 같았다. 해외생활을 오래 한 나에겐 음식은 단순히 필요한 에너지를 채워주는 의미 그 이상이 된 것이었다.
할머니가 직접 담그시는 장이나, 소를 키우는 이모네가 이웃이 잡았다고 한덩이 싸주시는 한우고기처럼, 한국이라고 해도 도시 사람들은 잘 모를 그 맛들도 그리웠고, 한국이라면 누구나 먹을 수 있는 떡볶이나 감자탕이나 쫄면 같은 분식도 한국에서처럼 자주 먹고 싶었다.
자주 못 먹으니 더 갈증이 났고, 갈망하다 보니 기왕에 음식을 만들어 먹을 노력을 해야 한다면 최대한 맛있게 만들어 먹고 싶었던 것 같다. 해외에 사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나는 한국에서는 한 번도 식탐이 있다고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해외에 있는 집에선 무척 식탐이 있는 사람처럼 바뀐 것 같았다.
해외생활이라고 하더라도 아마 혼자 살았다면 나는 지금 나의 생활과 요리 사이의 균열이 생겼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 요리하기 귀찮으면 안 먹으면 그만이고 사 먹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한국이었다면 아마 물어오지 않았을 그 당연한 질문들을 매일, 혹은 종종 던지는 이 남편이라는 생물체와 하루 두 번을 같은 식탁에 앉아, 24시간을 한 공간에 살아보며, 나는 내가 먹고사는 음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가 단순히 목숨을 부지하고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어떤 형태와 맛을 가지고 있던 필요한 영양분만 섭취하는 것이 먹는다는 행위의 목적이라면 나는 차라리 로봇으로 재부팅되고 싶다. 하지만 그동안 내 기준에 맞는 ‘맛있는’ 음식에 대한 생각이 사실은 누군가의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며, 특히 나의 경우는 오랜 해외생활에 의해 어느 정도의 집착까지 얹어져 있었다는 것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럼 나는 이제 나에게 주어진 24시간이라는 시간 안에 얼마만큼의 요리 시간을 채워 넣고 싶은가? 나도 다른 평범한 독일인들처럼 몇몇 잡곡빵에 계란 하나와 버터나 쨈이나 살라미, 치즈를 발라 먹으면 그만일까?
그런데 신기한 것은 내가 아무리 음식이 맛이 없다 생각하는 나라인 독일이나 필리핀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도, 자신들의 나라를 떠나 해외에서 오래 사는 외국인이 되어보면 자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 자기가 먹고 싶던 자국의 간식과 음식들을 두둑이 챙겨 온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그 음식의 재료들이 만들어낸 특정한 화학적 맛과 식감 때문만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낸 시간과 감정들이 함께 따라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 추억의 맛이란 대체 불가하다는 것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이제 그 대체불가한 추억의 맛과 실질적으로 신체에 필요한 영양소와 24시간이라는 한정된 자원 안에서 이것들을 다시 한번 재배치, 분배, 조정을 해야 될 것 같았다. 그런 면에 있어서 남편의 비건 결정은 일종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