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의 맛
남편이 비건이 된 후, 첫 장보기
3일 정도가 지나니 어느 정도 독일의 시차가 적응이 되었고, 이제 차츰 다시 무언가 요리를 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 덕분에 며칠간 비건식으로 디톡스를 한 것 같으니, 이제는 다시 에너지를 얻기 위해 직접 슈퍼마켓으로 나설 때다.
배달음식이 없는 여기서는 일주일에 세 번도, 네 번도 가는 곳이 슈퍼마켓이었다. 이 구역 독일마트는 물론 터키, 아시아, 러시아, 인도마트까지 안 가본 곳이 없는 곳이 나에겐 슈퍼마켓이었는데, 남편이 비건이 되고 나서 가는 마트는 꼭 처음 가보는 곳처럼 낯선 마음이 들었다.
남편에게 무엇이 먹고 싶은지 물어보려 했지만, 고기도, 생선도, 계란도, 치즈도, 요거트도 먹지 않는다고 하니 살 것이 하나 없는 느낌. 무엇이 비건이고 오보이고 페스코인지는 어느 정도 알았지만, 나는 혹시나 싶어 괜히 모르는 척 내가 먹고 싶은 재료들을 넌지시 물어봤지만 모두 퇴짜를 맞았다.
“고기 맛있지!”
“생선 좋아요!”
“계란 사랑해!”
내가 읊은 재료들에 남편은 모든 감정을 담아 애정을 표현했지만, 맛있는 건 맛있는 것이고, 안 먹는 것은 안 먹는 것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애정이 있는 음식들을 바로 끊을 수 있을까? 매일매일 배 터지게 먹는 것도 아니고 먹을 때만 가끔씩 돌아가며 먹는데 말이다. 맛있고 건강하면 먹고, 맛없고 건강하지 않으면 안 먹는 단순한 나에겐 남편의 의지는 신기한 힘이었다.
문득 남편의 오랜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였던 친구는 남편의 손에서 끊이지 않던 담배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은 것이 가장 놀라운 일 중 하나라 말했던 적이 있었다. 아마 그 담배가 20대의 결정이었다면, 고기는 30대의 결심인 것일까.
몇 번을 집었다 놓은 장바구니 음식
맛있지만 먹지 않겠다는 남편의 의지만 재확인하고, 그래서 아주 간단하게 내가 먹고 싶은 것만 예전처럼 사 오면 된다는 명령을 받고 나는 혼자 슈퍼마켓에 갔다. 거의 두 달 만에 돌아온 독일 슈퍼마켓에는 여전히 독일 사람들과 주변 스위스 사람들의 식탁을 채울 재료들로 가득했다. 나는 남편이 부탁했던 몇몇 과일과 야채를 샀고, 내가 먹고 싶었던 과일과 야채도 몇 가지를 더 채워 넣었다.
나는 분명 내가 먹고 싶은 것들을 예전처럼 산다고 생각하며 마트를 둘러보는데, 하나 둘, 손으로 집었다 내려놓는 재료들이 늘어났다. 분명 내가 먹을 음식인데도 무언가를 집을 때마다 이건 비건이었나?를 한 번 더 생각하고 있었다. 전에는 분명 이런 과정 없이, 내가 먹고 싶은 것 중에서 요리하고 싶은 하나를 결정하고 나면, 그 음식에 맞는 재료들을 찾아오면 그만인 장보기였다.
그런데 지금은 무언가를 집어든 거의 모든 순간에 머릿속에서 비건인가 아닌가라는 필터링이 첨부되었고, 나는 그 명령어를 수행하기 위해 다른 몇 초 정도를 가만히 서서 머리 위에 상상 풍선을 띄워 답을 내리고 있었다. 결국 그 모든 과정을 거쳐도 내가 다시 내려놓지 못한 재료들이 있었다. 달걀과 요거트, 참치와 새우. 아마 나는 고기를 끊는 것보다 이 재료들을 못 먹는 것이 더 힘든 일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모르게 육류코너를 향하고 있었다. 내가 해 먹지 않으면 누구도 한국 음식을 해줄 수 없는 독일의 작은 소도시에서 내 몸과 영혼을 먹여 살리는 것은 내 한국 음식이었다. 가장 쉽게는 그냥 삼겹살을 구울 수도 있고, 닭을 사서 찜닭을 해먹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돼지고기 한 덩이를 집어봤다가, 닭다리가 들어있는 패키지도 들어봤지만 결국엔 그냥 두고 슈퍼마켓을 나와버렸다. 무엇이 내 손을 망설이게 만들었던 것일까?
잡혔다.
그렇게 집으로 향하는 길. 이렇게 나도 비건을 시작해 보는 건가? 싶던 차에 깜빡 잊어버렸던 것이 있었다. 슈퍼마켓과 집까지 걸어서 10분 정도 되는 그 짧은 길 사이에 무려 KFC와 맥도널드와 버거킹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는 것.
집에 돌아와 가지와 토마토와 귤과 사과와 귤과 파를 내려놓곤 맨 마지막에 어린이용 버거킹 칠리치즈 버거를 꺼내놓았다. 결국 나는 그 패스트푸드 체인 트랩에 발목을 잡힌 것이었다. 육류칸의 돼지고기와 닭다리는 모두 두고 와놓곤, 소고기 버거 하나를 사가지고 나온 나는 또 어떤 마음이었던 것일까?
웃음이 터졌다. 분명 3일 동안 이어진 비건식이 이렇게 막이 내린다니 아쉬웠지만, 한편으론 비건식만으로도 3일이나 세끼를 때웠고 게다가 이렇게 작은 고기 버거로도 어른 버거만큼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손가락을 빼놓은 내 손바닥보다 조금 더 작은 버거 하나가 마치 두툼한 소고기 패티 2장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3일 동안 맡아보지 못한 고기향을 뿜어내며 입안 가득 퍼졌다. 맛있어서 입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원하면 고기를 언제든 먹을 수 있었을 때는 절대로 감사하지 못했을 적은 양이었다. 이렇게 너무 익숙해서 특별히 행복하다 느껴보지 못했던 작은 것에 세상 행복해질 수 있다니, 봄날의 햇살 같은 느낌이었다.
Korean Chicken!!
그렇게 다시 남편과 비건식으로 며칠을 이어가던 어느 날, 우리는 병원에 가기 위해 이 근처에서 꽤 큰 도시를 가게 되었다. 우리가 같이 시내에 간다고 했을 때, 내가 생각했던 것은 하나뿐이었다. 한국 치킨.
한국에 다녀오기 전, 그 도시를 지나다가 한국 치킨집이 곧 열린다는 광고를 봤던 것이다. 구글맵을 살펴보니 내가 한국에 있는 동안 이미 오픈을 했는데, 아직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었다. 나에게 병원은 2순위였고, 1순위는 치킨이었다.
한껏 들뜬 내 모습을 보며 남편이 꼭 날개를 계속 푸드덕 거리는 한 마리 치킨 같다고 놀렸지만, 나는 매우 들떴고 그렇게 치킨집을 향해 날아갔다. 드디어 이 도시에도 한국분이 하는 치킨집이 열린 것인가 잔뜩 기대했지만, 역시 한국 음식으로 돈을 가장 먼저 버는 사람들은 장사수완이 좋은 동남아, 중국 사람들이었다.
“Korean” Chicken이라는 단어 때문에 한국 분이 계시면 한국말로 주문해도 되나 싶어 잔뜩 들떠 들어가서는, 사장님 얼굴을 보고 다시 독일어로 수줍게 주문을 했다. 한국 사람이 운영하지 않아 살짝 실망했지만 오픈 주방으로 깨끗한 위생은 바로 확인할 수 있었고, 맛은 한국에서 먹는 수천 가지의 양념통닭과는 달랐지만 뭔가 조금 더 건강한, 엄마가 집에서 해주는 맛이 나서 그것도 좋았다. 아직 한국에서 온 지는 1주일도 채 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먹은 고기라고는 버거킹의 미니 칠리 버거뿐이라 이번에 나는 닭고기의 맛을 온전히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진짜로 좋아했던 맛
한입 먹었을 때부터 양념치킨이 가져다주는 온갖 어릴 적 향수부터 그 매콤 달콤함이 뱃속과 영혼을 채워주는 느낌. 음식에서만큼은 웬만한 독일인에 지지 않을 비평적인 한국 사람들은, 아주 맛있지 않은 이상 ‘나쁘지 않네’ 또는 ‘먹을만하네’로 칭찬을 하곤 하는데, 그 짜디 짠 평가가 삼겹살이나 치킨에 있어서는 대부분 관대한 편이라는 것을 남편은 나 때문에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치킨을 집에서까지 해 먹기는 귀찮고, 오리지널 한국 양념치킨은 아니었지만 이것도 이 주변에서는 처음 생긴 곳이라 얼마나 귀한 치킨이라는 것을 분명 알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나는 몇 조각을 먹고 나선 포크를 놓게 되었다.
분명 나쁘지 않은, 먹을만한 치킨이었는데, 평소 같았으면 다 먹고 나서 한 세트를 더 주문했을지도 모르는데 왜 입맛이 떨어졌을까?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맛있네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 남편의 음성이 왜 더 먹지 않아라고 바뀌었는데 곰곰이 그의 눈을 바라보다 생각했다.
너 때문인 것 같았다. 네가 나와 같이 치킨을 먹지 않아서, 내가 같이 맛있지? 진짜 맛있다고 함께 말할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았다.
남편은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면 같은 말을 세 번 정도 반복한다고 했다. 나는 그걸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남편이 계속 같은 말을 세 번씩 반복하길래 물어봤다가 알게 된 사실이었다.
예를 들면 길가에 꽃이 예쁘면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물었다.
"예쁘다, 진짜 예쁘네! 예쁘지?"
진짜 맛있는 걸 먹다 보면 또 물었다.
"맛있네, 진짜 맛있다! 맛있지?"
내가 마지막 세 번째 말을 할 때는 거의 겁박하듯 혹은 애원하듯 아무튼 짱구의 눈빛 표창이 쏟아지듯 두 눈을 마주치고 말했기 때문에, 남편은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함께 장단을 맞춰주다가 어느새 나를 닮아간 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맛있는 치킨을 먹고 있는데, 맛있다. 진짜 맛있네. 맛있지?를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고기 맛을 떨어 뜨리는지 그동안은 몰랐다.
나는 고기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어쩌면 함께 무언가를 같이 먹는 것을 그만큼 좋아한 사람이었던 걸까? 나는 정말 고기를 좋아했던 걸까? 아니면 사람들과 함께 고기를 먹는 것을 좋아한 것일까? 고기 없이 무언가를 같이 먹는 것도, 그렇게 아주 오랫동안 고기 없이 무언가를 같이 먹는 것도 나는 좋아할까?
고기는 생각보다 더 맛있는 기억으로 남아 있던 것은 아닐까? 고기를 씹는 것인지 생각을 씹는 것인지, 어느새 고기의 맛이 생각처럼 무채색이 되버렸다. 내가 진짜로 좋아했던 맛은 무엇이었을까? 인생의 맛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