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7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사랑해도 익숙해지지 않던 것들

의도하지 않은 비건의 영향

by 따뜻한 선인장 Mar 11. 2025
아래로


두 달 만에 껴안은 남편

기차역으로 마중을 나온 남편을 거의 두 달 만에 껴안았을 때, 그는 여전히 푹신했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 그를 다시 안았을 때, 내 두 손이 그의 허리에 딱 맞는 허리띠처럼 딱 감겨 돌아와 잡히고도 한참 남았다. 보통은 한 손으로 다른 한 손의 손목을 잡곤 했는데 이번엔 거의 팔꿈치까지도 잡힐 것 같았다. 이상했다. 이 정도로 그가 날씬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기차역에서 내 품에 들어왔던 그의 허리는 패딩 점퍼가 예전의 그의 뱃살을 대신하고 있던 것이었다. 약 두 달이 채 못되게 비건식을 유지하고 있다는 남편. 얼굴을 보면 특별히 두 달 전과 달라진 것을 발견할 수 없었지만, 내가 그의 품에 쏙 들어갔을 때 내 팔이 꽤 많이 남는다는 것은 커다란 변화였다. 그의 허리둘레가, 뱃살이 꽤 많이 줄어 있었다.


예쁜 키차이를 갖고 있는 커플의 고충

5년 동안 한결같던 뱃살이 이렇게 두 달 만에 줄어드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이것은 분명 신기한 일이었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변화가 있다는 것은 하루가 지난 뒤에 알게 되었다.


그가 나를 안아줄 때면, 보통 그의 턱은 내 머리 정수리에 딱 걸터앉을 정도로 우리는 사람들이 상상할 때 예쁜 키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보기에는 분명 예쁜 키 차이였지만, 남편에게는 없는, 나에게만 있는 나름의 고충이 한 가지 있었다.


우리가 서로를 안아줄 때, 그의 얼굴은 내 머리 위에 얹으면 되니 아마 그는 숨을 쉴 때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길 바란다). 하지만 나의 사정은 달랐다. 내가 그의 가슴팍에 코를 묻을 때면 괜찮은데, 가끔 그가 움직여버리면 나의 코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의 어깨 아래에 파묻힐 때가 있었다. 샤워를 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면 행운이었지만, 그날 날씨가 조금이라도 더웠거나 그래서 땀을 이미 좀 흘렸다면 남편이 언제 샤워를 했는지는 상관없이 그에겐 한국인에게는 드문 향이 났다.


사랑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

한국 사람들끼리 살 때는 모르고 지나칠 때가 많은데,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나는 사람 사는 곳 다 똑같지 싶다가도 아니지, 내가 외국에 살고 있구나 순간 정신을 번쩍 차리게 만드는 순간에 놓이곤 했다. 현지 사람들의 일상에 나도 함께 부대끼게 되는 지하철이나 버스 안, 헬스클럽과 사우나 같은 곳에 가면 나는 한국에선 쉽사리 맡지 못하는 특유의 체취들과 조우하게 된다.


생김새와 언어만큼이나 다양한 개개인의 체취는 당사자들은 알아채지 못하거나 어쩌면 당사자들도 어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평균적으로 그 체취라는 것이 신기하리만큼 무채색으로 여겨지는 한국사람들은 생전 맡아보지 않은 사람 냄새에 깜짝 놀라곤 한다.


국경 없는 사랑도 넘는 사람 향기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고 하지만 체취는 잊고 있던 국경을 다시 그어버리기도 한다.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남편의 체취가 지금껏 세계를 돌아다니며 맡아본 냄새 중에 그리 심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냄새에 예민한 나는 아주 종종 날이 덥거나 자전거를 너무 많이 탔거나 사우나를 너무 많이 한 날이면 우리 사이의 물리적 선을 종종 긋곤 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보낸 여름이 어느새 다섯 번이나 지났고, 그 많은 시간들을 함께 보내며 체취라는 것은 아무리 샤워를 열심히 하고 진한 화장품을 쓴다고 한들 본인도 결국 어쩌지 못한다는 결론을 나도 받아들이고 있던 중이었다.


딸기향이 없는 딸기와 치즈향이 없는 치즈

그런데 지금, 이렇게 그를 꼭 안고 있는데도, 안고 있으면 언제나 코 끝에 맴돌던 그의 체취가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다. 마치 버스에 타면 좌석들이 있고 그 한자리에는 미세하게든 강력하게든 그의 체취가 앉아 있었다면, 지금은 그 자리가 그대로 남아 있는데 체취만 흔적도 없이 사라진 느낌이랄까. 딸기향이 없는 딸기나 치즈향이 없는 치즈처럼, 분명 형상은 있는데 같이 있어야 할 향이 사라지고 나니 내가 알고 있던 남편이 맞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아쉽다는 말은 절대 아니었지만, 그야말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순간이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고,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라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 제목들처럼 나는 궁금해졌다. 남편의 체취는 누가 데리고 간 것일까? 소금이었을까 고기였을까 아니면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남편의 비건식이 궁금해졌다.

이전 01화 비건이 된 남편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