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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Jan 31. 2021

찻잎에서 찻잔까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사용자 경험관찰기, 1. 차



차 (茶)

'사용자'로서의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나서부터 며칠간 내가 무엇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지 떠올렸다. 그 생각을 할 때마다 내 눈 앞에 있던 것은 이 찻주전자였다. 찻주전자와 찻잔에 대해 생각하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은 내가 차를 마시기 위해 구매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연컨데 (마시는) 차는 요즘은 물론 과거에도 내가 가장 많이 '사용', '애용'하는 것이다. 우리가 마시는 차는 어디서 자랄까 생각해보면 중국이나 일본, 한국 혹은 인도나 스리랑카처럼 아시아 지역이라고 떠오른다. 하지만 이를 지금 마시는 차가 어떻게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해본다면 차를 상품이라는 비즈니스 차원으로 끌어올린 지역은 유럽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차 한 잔을 마시고 있노라면 그 옛날, 유럽 사람들이 그렇게 비단길과 바닷길과 초원길을 통해 동쪽으로 오려고 했던 이유, 그리고 이후 그리도 잔인하게 식민지배를 하게 된 가장 처음의 순수했던 이유 중 하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유럽에선 차보다는 커피나 맥주?

어쩌다 보니 이십 대에 아프리카, 아시아, 그리고 유럽에서 짧고 길게 살아본 경험 덕분에 같은 차 한 잔을 마시더라도 가격은 어떻게 달라고, 그 차를 구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으며 어디에서 구매했고, 또 내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마시는지 다양한 장면의 그림이 떠올랐다. 그리고 어디를 가나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음료는 바로 커피였다.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모두 거리를 지나다 보면 쉽게 마주치는 공간이 카페나 바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주 마시는 음료를 떠올리면 보통은 커피나 주류가 생각난다. 그래서 차를 생각하면 소수의, 특별히 차를 좋아하고 찾는 사람들의 취미라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살아보니, 이는 오산이었다.


매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 해동안 얼마나 많은 커피를 마셨는지, 커피 총소비량에 대한 기사들이 나오긴 하지만 아무리 우리나라 사람들이 커피를 많이 마신다고 해도 유럽이나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의 커피량을 따라가진 못한다. 그만큼 다른 나라 사람들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마시고 있다는 것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커피 생산지인 에티오피아나 베트남, 콜롬비아에서 온 친구들을 만나면 그들의 커피 사랑이 얼마나 당연한지, 마치 우리나 녹차나 보리차를 물 마시는 것과 비슷하게 당연시 여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질 좋은 커피가 생산되는 나라의 친구들이 커피를 좋아하는 것은 이해가 됐지만 반대로 커피를 많이 마시는 나라 중에 개인적으로 놀랐던 곳은 바로 북유럽이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물론 독일, 오스트리아, 베네룩스 3국과 동유럽에도 저마다 자신들의 독특한 커피 문화가 있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정말 커피를 유독 좋아하는 것일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런데 유럽에 살면서 알게 된 한 가지 신기한 차이를 발견했다.


유럽에서 커피는 기본적으로 '따뜻한' 음료로 생각한다. 우리나라처럼 '아이스커피' 주세요 라고 하면 별다방처럼 글로벌한 커피 매장이 아닌 이상 유럽의 대부분의 카페에서는 따뜻한 커피에 아이스크림을 얹어주는 독특한 문화 차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날씨가 자주, 많이 더운 남부, 서부 유럽에서는 우리가 아는 '아아'가 더 보편적일 수도 있지만, 위에서 언급된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춥고 어둡고 축축한 날씨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길게 느껴졌다.


유럽에 살아보니 날은 더 어두워 잠은 잘 오고, 날이 추우니 따뜻한 것을 더 찾고 싶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유럽 사람들이 특별히 커피 맛을 좋아서 커피를 마시기도 하겠지만 오히려 춥고 잠이 오기 때문에 커피가 굳이 아니더라도 따뜻하고 잠이 오지 않는 무언가를 마시고 싶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마시는 '차' 시장이라는 것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산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별한 사람들의 취향과 선호에 의해 만들어진 차 마니아의 문화만이 아닌 유난히 어둡고 추운 날씨와 더불어 무언가를 '마신다'는 습관, 사람들의 행동 안에 차 산업이 클 수 있는 배경을 발견했다.




티백으로 100개까지 들어 있는 차는 유럽에선 흔치 않다. 출처: 구글 이미지




아프리카, 아시아에서 기억하는 차 (茶)

반대로 남아프리카 공화국, 인도, 동남아시아 등 차를 직접 생산하는 지역에 살았던 나는 이곳에 사는 현지 사람들은 유럽 사람들과는 꽤나 다르게 차를 마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차 유통지의 중심인 중국이나 일본, 대만, 스리랑카 등의 지역은 제외).


첫째로 오히려 차가 많이 생산되는 나라들에서는 자국에서 자라는 차 외에 다른 나라에서 자라는 차의 맛을 잘 찾아볼 수 없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음용되는 차 중 하나인 녹차만 하더라도 유럽에 나오기 전까지 일본이나 중국, 대만의 녹차를 찾아 마셔본 적이 없었다. 우리나라 녹차 안에도 다양한 품질과 브랜드가 있어서 굳이 다른 나라의 차를 마실 필요를 느끼지 못했지만 그만큼 알려진 차도, 구할 수 있는 차도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녹차'가 있다는 것도 유럽에 나와서 알게 되었다. 아마 자세히 살펴보진 않았지만 일본이나 중국, 대만에서도 비슷하게 우리나라의 녹차를 쉽게 찾을 수 있을까 싶었다. 분명 자국에 충분한 물자가 있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커피 산업처럼 오히려 커피 생산국일수록 자국의 커피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나라의 커피 수입을 제약하는 것이 차 산업에도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반면 이러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다국적 차 기업인 TWG, 포트넘 앤 메이슨, 쿠스미 티 등은 세계 어디든 일반인이 취급하지 않거나 취급할 수 없는 차들을 브랜딩 해서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것이 신기한 일이었다. 특정 지역의 품질 좋은 대만산, 일본산, 중국산 녹차들을 개인이 구매한다면 복잡하고 어려운 일들이 그 앞에 공차, TWG, 쿠스미라는 이름이 붙으면 신기하게 그 차들이 되는 것, 그것이 브랜드의 힘인가 보다.


반면에 인도 같은 경우엔 아무리 다즐링, 아쌈, 닐기리 등 서양사람들이 많이 마시는 품질 좋은 홍차가 재배되는 곳이라고 해도 정작 한 달 내내 인도에서 봤던 인도 사람들이 마시는 티는 짜이와 라씨였다. 홍차 앞에 붙은 그 유명한 이름들의 차들은 잘 사는 친구들의 집이나 관광지, 공항 면세점에서 찾아본 것이 전부였다. 또한 현지에서 마셔본 차 역시 슈퍼마켓에서 티백 형태로 샀는지 티샵에서 티 잎으로 샀는지에 따라 내가 알고 있던 차의 맛보다 현저히 좋지 않거나 훨씬 좋거나 혹은 아주 다를 때가 있어서 이 차가 내가 알고 있던 차가 맞는지 질문하기도 했다. 다즐링이나 아쌈이라고 이름 붙여진,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차는 정말 인도차가 맞을까? 이름만 같은 다른 차인 느낌.


잎, 차맛 자체가 좋은 차를 마시게 되면 현지에선 굳이 별다른 첨가를 하지 않아도 이미 좋기 때문에 가장 본연의 찻잎을 마신다는 느낌이라면 먼 나라에 갈수록 차향과 맛이 변해 유럽에서는 더 가공한 차가 발전되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반면 찻잎 자체가 떫고 맛이 없는 차들도 있는데 그런 차들은 기술이 부족한 현지에선 저렴한 가격에 티백에 팔리는 느낌이라면 기술이 좋은 나라들에서는 혼합차를 만들어 어떻게든 좋은 차로 둔갑시키는 힘을 가진 듯했다. 따라서 찻잎을 둘러싸고 차를 가공하기 위한 절차가 얼마나 까다로우며 복잡할 수 있고 천차만별의 차를 만들 수 있는지 브랜드와 가공의 중요성도 알게 된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아무리 다른 나라에서는 고풍스러운 컵 한 잔 속에 고상하게 담긴 차라도 차 생산국가에서는 같은 차를 물처럼 마시는 현상을 발견하는 순간도 있다. 예를 들면 포트넘 앤 메이슨이나 쿠스미 티, 타바론 티와 같은 해외의 고급차 회사에서 녹차의 한 종류로 "Genmaincha"라는 낯선 이름의 차가 있다. 왠지 처음 보는 이름임에도 마셔보면 한국 사람들은 무척 익숙한 느낌을 받게 된다. 게 마인 차라는 이름의 그 차를 우리나라 사람들은 동서****라는 익숙한 이름으로 도시나 시골 어느 곳의 동네 슈퍼마켓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 분명 저렇게 비싸 보이는 포장에 장식에 이름까지 붙이고 나면 뭔가 더 특별한 맛이 나야 할 것 같지만 정확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현미녹차'맛이 게 마인 차의 맛이다.  


그렇게 유럽 사람들에겐 굉장히 동양적이고 특별한 차처럼 생각되는 게 마인 차를 우리나라 사람들은 현미녹차라는 이름으로 보리차나 둥굴레차와 함께 물처럼 자주 마신다. 이처럼 내가 처음 살았던 남아공 사람들은 루이보스티를 우리네 보리차처럼 마셨다. 루이보스라는 이름과 붉은색 때문에 어렴풋이 서양에서 왔겠지 싶었던 루이보스차도 사실 원산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다. 그래서 남아공의 슈퍼마켓에 가면 네모난 직사각형 종이 박스에 동서***처럼 딱 고만한 사이즈와 합리적인 가격으로 'Freschpak'이라는 이름의 루이보스티가 있었고, 남아공 사람들은 우리가 현미녹차를 마시듯 루이보스차를 물처럼 마셨다. 또한 인도네시아에서는 딱 그만한 사이즈의 'Sariwangi Teh'라는 재스민차를 일반 가정에서 물처럼 마셨다. 또한 마테의 나라인 아르헨티나에선 역시 수많은 브랜드에서 대용량의 마테 티백차를 판매한다.


어쩌다 보니 그동안 차를 브랜딩 하는 나라들보다는 차를 생산하는 나라에 지낸 시간이 많다 보니 나에겐 차를 물처럼 마시는 습관이 생겼다. 이런 습관을 그대로 갖고 온 내가 독일에 와서 남편에게 '보리차'를 주며 나도 모르게 '물'마셔라고 하면, 남편은 내게 왜 '차'를 주면서 '물'을 마시라고 하냐며 물었다. 나는 내가 그동안 머물었던 곳에서처럼 독일에 와서도 현미녹차나 루이보스나 재스민차를 커다란 주전자에 끓여놓고 물처럼 마시고 있었는데 나에겐 물 같은 그런 차들이 남편에겐 엄연한 물이 아닌 차라서 초반에 우리는 예상치 않은 문화 차이를 겪었었다.




베를린의 버블티집 / 출처:구글 이미지


더불어 아직 단편적인 관찰의 느낌이지만 코카콜라나 스프라이트 등 탄산음료가 많이 소비되는 나라들에서는 상대적으로 고유한 상태의 차 자체는 덜 소비되는 느낌이었다. 더불어 더운 나라들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맛의 '따뜻한' 차의 소비는 적었다. 반대로 그 차를 차갑게 먹거나 혹은 설탕을 듬뿍 넣어 달게 마시는 경향도 크다. 대신 이런 나라들에서 거대한 차 산업으로 급부상한 차가운 밀크티가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고유한 티와 더불어 달콤한 맛을 겸한 다양한 과일 맛의 시럽과 타피오카, 젤리, 알로에, 타로 등의 여러 가지의 열대과일 첨가물을 겸비한 음료는 차를 좋아하지 않은 사람들도 한 번에 끌어들이는 마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반면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을 가진 유럽에서 밀크티의 영향은 가끔씩 부는 동양문화의 열풍처럼 자주는 아니더라도 주기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다가 사라지고 다시 생기길 반복했다. 신기한 것은 열풍이 꺼졌다가 다시 일어날 때는 밀크티의 브랜딩이 스타벅스나 포트넘처럼 꽤나 전문적이고 젊은 느낌으로 재탄생해 나타나는 것이다. 동남아시아 지역에 있을 때는 워낙 유명한 밀크티 집이 많아서 그리 눈에 띄지 않았던 Comebuy라는 밀크티 브랜드는 코로나 사태가 생기기 전 최근까지 베를린에 공격적인 수의 매장들을 오픈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티를 우리고 내리는 기계들이었는데 마치 커피를 내릴 때도 에스프레소와 필터 커피 등 다양한 방법이 있듯이 차를 내리는 전문적인 기계를 가져와 밀크티를 만들어서 시선을 끌었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에서

내가 사랑했던 차들


이처럼 차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딴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 같은 마시는 차는 자세히 떠올려보니 세계 어디에서든 광범위하게 소비되고 있는 품목 중 하나였다. 차는 생각해보니 단지 목이 말라서 찾는 음료를 넘어 더우면 더워서 찾게 되고 추우면 추워서 찾게 되며, 깨어나기 위해 마시는 차가 있는 반면 잠이 오지 않아 찾는 차 등 계절과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품목이었다. 또한 이런저런 이유보다는 녹차, 보이차, 홍차, 녹차, 재스민차 등 그 특유의 맛이 좋아 찾아 마시는 차 마니아층까지 두터운 소비자층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사용자 리서치와 데이터 분석, 인류학적인 생각을 연결하는 연습을 하고 싶어 써 내려간 첫 번째 기록에서 그 외에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고 싶은 질문들을 마지막으로 함께 나열해본다.



오랫동안 매일 '차를 마시면서도' 떠올려보지 않았던 질문들

- 우리는 왜 차를 마시는가?

- 차는 어디에서 주로 생산되며 어떻게 유통되는가?

- 차는 어디에서 어떤 형태로 소비되는가 (티백, 티 잎, 혼합 티 등등)?

- 서로 다른 티 형태에 따라 보관방법이나 유통기한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 세상 사람들은 어떤 비슷한 이유로 혹은 다른 이유로 차를 소비하는가?

- 어떤 상황에서 차는 꼭 필요한 상품이 되거나 반대로 취향 상품이 되는가?

- 사람들은 차를 마시며 무엇을 하는가?

- 차를 마실 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 사람들은 차를 어디에서 어떻게 구매하는가?

- 차와 관련된 것들 중 어떤 것은 소유하고 싶고 어떤 것은 공유해도 괜찮은가

- 차를 다 마시고 난 뒤 사람들은 차를 어떻게 처리하는가?

- 사람들이 차 대신 자주 마시는 것들은 무엇이 있는가?

- 기후변화가 심화되면 차 산업에 미칠 영향들은 무엇이 있을까?

- 차와 관련된 특별한 법률들이 있는가?

- 차 생산 지역의 노동자들의 삶은 어떤 모습인가?

- 차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사람들의 이미지는?

- 차와 관련된 산업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 광고 속에서 자주 사용되는 이미지들은 어떤 것이며 나라마다 어떻게 다른가?

- 성별, 연령별, 가족형태 등의 다양한 형태의 이유로 선호하거나 선호하지 않는 차들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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