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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Feb 16. 2021

어떤 운동을 좋아해?

정말 좋아한다는 것의 의미

겨울이 되면 떠오르는 질문이 하나 있다. 코로나가 퍼지기 전, 평창 올림픽이 시작하던 때였다. 나는 겨울이 없는 필리핀에 있었지만 당연히 한국에서 개최하는 겨울 올림픽 개막식을 챙겨봤고, 남자 친구도 독일에서 개막식을 봤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동계올림픽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스포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남자 친구는 나에게 어떤 경기를, 스포츠를 좋아하는지 물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경기들이 있었다.


"쇼트트랙은 당연히 보고, 스피드 스케이팅도 재밌고, 피겨 스케이팅도 재밌고, 컬링도 재밌는 것 같은데"


그랬더니 남자 친구가 또 물었다.


"우와. 정말로 그걸 다 좋아하는 거야? 하는 게 재밌어서 좋아하는 거야?"


순간, 음... 내가 정말 그 종목들을 좋아했던 건가?... 가만히 나열해놓고 보니 정말로 내가 그 스포츠 종목 자체를 좋아했던가? 싶었다. 실제로는 해본 적도 눈으로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그런 경기들을 좋아하게 됐을까? 가만히 또 생각해보니 우리나라 선수들이 많은, 그것도 우리나라가 잘하는 종목만 좋아했던 것 같았다.


'흠.....

그럼 난 정말 그 스포츠 종목들을 좋아했던 걸까?

아님 그냥 우리나라가 잘하는 게 좋았던 걸까?'


물론 꼭 무언가를 해봐야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여행을 할 때도, 오히려 가보진 않았지만 봤기 때문에, 보는 것만으로도 해보고 싶고 가보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은 알았다. 그러나 좋아한다면, 좋아한다고 말을 할 때는 정말로 마음을 움직여 그렇게 보기만 했던 곳을 직접 가보고 해보게 하는 결과까지 가져오게 만들었다. 당장 여행을 떠날 순 없지만, 나는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에 결국엔 돈을 모으고 정보를 찾아 여행을 갔고, 그래서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운동은, 특히 꽤나 많은 종목의 운동들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지 아닌지 한 번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우리나라 선수들이 잘하는 종목들도 좋지만, 그걸 넘어서 나도 그 종목들을 한 번쯤 해보고, 그 스포츠 경기, 운동 자체를 좋아해 보고 싶어 졌었다. 그러나 내가 어디에 사는지에 따라, 혹은 다양한 체험을 이것저것 해보기 위해 뒷받침할 수 있는 경제적 배경에 따라 우리의 경험에는 많은 제약이 있었다. 왜 그럴까?


예전에 스웨덴을 여행하다 도서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어느 도시에 가든 나는 도서관에 가는 것을 좋아했는데 함께 여행을 했던 디자이너인 친구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도서관의 의자였다. 핀란드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는 친구 눈에는 나는 잘 모르는 디자인 브랜드의 제품들이 눈에 바로바로 들어오는 듯했다. 나는 그저 책을 보기 위해 앉았던 의자일 뿐이었는데 친구는 이리 저러 자세를 바꿔보며 앉아보더니 역시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왜 이 의자가 뭔가 특별한 거야?"


디자인 제품들을 잘 모르는 나는 그 의자보다 그 의자를 더 신기하게 바라보는 친구가 더 신기해 보였는데, 친구에게 그 의자의 가격을 듣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이 의자가 그렇게 유명한 디자이너의 그렇게 비싼 의자였다고? 도서관에 의자가 얼마나 많은데 의자 하나 가격이 그렇게 비싸다니. 의자의 가격에 놀라고, 그렇게 비싼 의자가 국립도서관도 아니고 일반 시립 도서관에, 이렇게 곳곳이 놓여있는 것도 신기했다.


왜 이렇게 비싼 의자를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일반 도서관에서 산 걸까? 그러자 친구는 그게 디자이너로써 북유럽에서 가장 부러운 점 중 하나라는 이야기를 했다. 사실 무언가를 디자인하고 만들 때, 아무리 화려하고 고상한 이유가 있더라도 궁극적으로는 그 제품이 사람들에게 쓰임을 받을 때 빛이 난다. 그러나 문제는 대량생산이 아닌 이상 사람들의 필요와 편의를 최대화시키면서도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은 디자이너들은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하다 보면 당연히 가격이 올라가게 되고, 그러다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과는 멀어지게 되는 간극 발생하곤 했다. 그래서 디자이너들은 이상을 포기하게 되거나 혹은 현실에 어느 정도 타협을 하면서 조금은 '일반적'인 상품을 내놓게 되는 상황이 곳곳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북유럽에서는 이렇게 공적인 공간,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도서관 같은 곳에서 그런 디자이너들의 제품을 공적으로 구매함으로써 사람들과 디자이너들의 필요와 편의를 연결하고 있었다. 도서관은 가난하거나 부자이거나 상관없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곳이었고,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은 그렇게 예쁘고 편안한 고가의 디자이너 의자에 앉아 편하게 책을 읽었고, 이렇게 사람들이 편안하다는 경험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디자이너 제품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구매로까지 이어지게 되면서 디자이너들도 자신의 제품들을 판매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또 다른 창의력을 이어가는 선구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항상 가격이라는 큰 장벽처럼 느껴지는 장애물 때문에 디자이너들의 제품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여행을 하며,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그 가격적으론 무척 화려했지만 경험상으론 무척 편안했던 그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어보면서 나는 정말 가격이 문제인가라는 생각을 처음 했었다.


우리는 잘 모르고 있었지만 사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원과 인프라들이 그렇게 부족한 것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분명 각각 떨어져 있는 주체들의 원래의 목적인, 많은 사람들에게 공평한 경험의 기회를 나눠준다는 것을 잘 되짚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더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남자 친구의 질문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나도 모르게 쇼트트랙을 좋아하고, 양궁을 좋아하고, 피겨 스케이트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단순히 우리나라가 잘해서만이 아니라 정말 조금이라도 한 번 해봤더니 재미도 있는데 심지어 우리나라가 잘하니 더 좋아졌다는 말이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도 운동 자체를 경험해보고, 좋아한다면 그 운동을 하는 선수들도 결과만이 아닌 과정에서도 운동 자체를 즐기고 결과에 대한 과한 비난이나 부담도 조금은 덜어질 수 있지 않을까.


사실 한국은 트렌드가 언제나 생기고 그 트렌드는 주제에 따라 항상 우리보다 더 나은 나라를 찾는 것 같았다. 어떨 때는 미국이었고 일본이었고 그러다 독일이었고 그러다 최근엔 북유럽 국가들까지 항상 '***' 스타일에 대한 키워드들이 눈에 띄곤 했었다. 그러나 막상 그 나라들에 살아보면 우리가 부러워하는 부분들이 있지만 또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문제나 어려움이 있었고, 또 그들에겐 없지만 우리는 가지고 있는 강점들도 있었다. 해외에 살면 살수록 우리나라가 무언가가 부족하거나 없어서 어려운 나라는 아닌 것 같았다. 다만 그 가지고 있는 것들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불평등한 기회나, 또 그것을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우리나라가 유독 더 살기 힘든 느낌인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은 이미 지구촌이고 산업화가 진행됐고 정보화가 일반화된 세계라 어딜 가나 우리나라보다 특별히 더 잘 산다는 느낌을 받진 않지만 한 가지 무언가 차이가 느껴지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취미인 것 같았다. 스포츠, 운동을 왜 우리는 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해보면 운동 종목에 따라 나는 목적이 달라지는 느낌이었다. 요가나 등산이나 수영 같은 것은 집에서도 할 수 있고 건강을 위해 하는 운동이라면 쇼트트랙이나 양궁이나 컬링 같은 건 정말 선수들이 하는, 운동경기에서 하는 내 삶과는 떨어진, 보기 위한 운동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나라에선 그런 운동들도 운동경기에서 우승하기 위한 목적이 먼저가 아니라 그저 그 운동을 해봤더니 재밌어서, 취미로 하고 싶고 할 수 있어서 하게 된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정말 경기에 나가고 싶고 그만큼 훈련과 실력을 쌓고 싶고, 그러다 보니 경쟁에서 우승하고 싶은 사람들이 선수가 되고 그래서 경기에 나가면 이기면 이겨서 기쁘고 져도 큰 경기에 나가본 것에 대한 뿌듯함과 과정에 대해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던 것 같았다.


물론 이런 경험 역시 외국이라고 보편적이진 않을 거란 생각이 들지만, 누가 아는가. 도서관에서 그 화려한 디자이너의 의자를 우리에게 익숙한 플라스틱 의자만큼이나 누구나 앉을 수 있듯이 스포츠 경기도 그것이 스키든 수영이든 컬링이든 쇼트트랙이든 누구나 한 번쯤 해볼 수 있는 운동일 수도 있을지. 어쩌면 그게 선수들도 체육회도 국가도 그리고 일반 사람들도 그 운동을 진짜 사랑하게 되고 사람들 개인의 행복과 여가생활, 그리고 우리나라 스포츠 팀의 미래도 더 건강하게 만들 방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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