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생활에서 아쉬운 것 하나
길을 걷는데 누군가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었고, 내가 잘못 느꼈나 하던 차에 풍성한 나뭇잎 사이로 하얀 털이 보였다. 우와. 일본원숭이는 본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하얀 털 원숭이는 길에서 처음 봤다.
인도나 발리에선 길 가다 삥 뜯는 아이들처럼 공원이나 외나무다리 한가운데서 원숭이를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소들은 또 어찌나 많은지, 제 아무리 날랜 오토바이와 릭샤들 사이에서도 소들은 그들만의 느린 속도로 세상을 살아갔다. 심지어 갠지스 강가에서 명상하다 만난 소는 어찌나 고상하던지 같이 명상하는 줄 알았다.
인류학 연구의 방법론을 배우던 때, 필리핀 교수님은 우리가 현장에 나가 관찰을 할 때, 보고 듣고 느낀 것 플러스 냄새까지 적으라고 하셨다. 그때부터 나는 기록할 때 그때의 향기 습도 빛까지 조그맣게 기록하는 습관이 생겼는데, 교수님은 특별히 하나 더 강조한 것이 있었다.
바로 그곳에 어떤 동물들이 어떻게 있었는지도 관찰하라는 것이었다. 수의학과 생물인류학 전공 교수님이라 특별히 자연에 대한 애정이 있으셔서 그런가 했지만 정말이지 다양한 세상을 관찰할수록 그 지역의 동물들을 관찰하면 그 세상이 조금은 더 잘 보이는 것 같다.
학교 캠퍼스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수업 중에도 길고양이들이 교실 안에 들어와 처음 내 다리를 훑고 지나간 날, 나는 나도 모르게 수업 중에 소리를 쳤고, 교수님과 학생들이 모두 웃으며 우리 학교는 동물 친화적인 캠퍼스라고 대답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인도의 네루 대학에선 친구와 길을 걷다 앞에 같이 지나가던 작은 새가 갑자기 꼬리를 펼치더니 어느새 1인용 텐트만 한 공작새가 되어서 깜짝 놀랐던 기억도 난다.
내가 여행하고 살았던 나라들엔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개와 강아지들도 참 많았다. 가끔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것을 같이 보고, 또 사람들이 지키는 것을 같이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 안 믿는 환생도 믿어지게 만드는 묘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또 어떤 아이들은 어찌나 해맑고 순수한지 길가다 우연히 마주친 복실이 세 마리의 순수함에 우리까지 아이 같아지고, 더운 날 굳이 그늘을 찾아 넋 놓고 있는 강아지를 보고 있으면 나 같아서 웃음이 터졌다.
아주 산촌, 어촌 시골에서 만난 동물들은 마치 동네 어르신들처럼 개나 소나 닭이나 상관없이 마실 다녀오는 이웃을 만난 듯 쳐다보고, 사람과 동물 사이 공간의 경계가 옅은 곳에선 동물들도 마음 편히 제 집처럼 휴식을 취한다.
독일에 온지도 어느새 두 해가 훌쩍 넘어가는데, 우연히 예전의 사진첩들을 보다 내가 예전에 살았고 여행했던 곳들에서는 길 가다 마주치는 동물들이 참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원숭이도 만나고 강아지도 만나고 소도 만나고 고양이도 만났는데 독일에선 그런 일이 드물다.
동물들의 천국이라는 소리를 듣고, 또 그만큼 잘 관리된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나라에서처럼 파양이나 학대에 대한 뉴스는 자주 듣지는 못한다. 다만 오랜만에 예전의 사진들을 보며 문득 그 관리라는 것이 사람들의 손에 의해 이뤄지고, 그 손이라는 것이 한편으론 내 것이라는, 내 책임과 함께 주어지는 내 소유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특별히 ‘내 동물’을 소유하지 않은 나 같은 여행자들에겐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하는 동물들이 없어서 길을 걷는데도 다소 심심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내 애완동물이 없는 내가 길을 걷다 우연히 반가워할 수 있는 아이들은 그래서 조류들이 아닌가 싶다. 백조, 까마귀, 비둘기 등등등.
새들이 제일 자유로운가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길가의 동물들을 보면서도 여기는 언어에서도 가리키듯 Alles in Ordnung, 모든 것이 잘 관리되고 정리되어야 하듯이 동물들도 그런 걸까 싶었다. 조금은 관리되지 않아도, 알 수 없어도 그 우연에서 마주하던 나를 미소 짓게 하던 길거리의 동물들이 조금은 그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