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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Feb 27. 2021

나를 미소 짓게 했던 길 위의 동물들

독일 생활에서 아쉬운 것 하나



길을 걷는데 누군가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었고, 내가 잘못 느꼈나 하던 차에 풍성한 나뭇잎 사이로 하얀 털이 보였다. 우와. 일본원숭이는 본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하얀 털 원숭이는 길에서 처음 봤다.





인도나 발리에선 길 가다 삥 뜯는 아이들처럼 공원이나 외나무다리 한가운데서 원숭이를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소들은 또 어찌나 많은지, 제 아무리 날랜 오토바이와 릭샤들 사이에서도 소들은 그들만의 느린 속도로 세상을 살아갔다. 심지어 갠지스 강가에서 명상하다 만난 소는 어찌나 고상하던지 같이 명상하는 줄 알았다.





인류학 연구의 방법론을 배우던 때, 필리핀 교수님은 우리가 현장에 나가 관찰을 할 때, 보고 듣고 느낀 것 플러스 냄새까지 적으라고 하셨다. 그때부터 나는 기록할 때 그때의 향기 습도 빛까지 조그맣게 기록하는 습관이 생겼는데, 교수님은 특별히 하나 더 강조한 것이 있었다.


바로 그곳에 어떤 동물들이 어떻게 있었는지도 관찰하라는 것이었다. 수의학과 생물인류학 전공 교수님이라 특별히 자연에 대한 애정이 있으셔서 그런가 했지만 정말이지 다양한 세상을 관찰할수록 그 지역의 동물들을 관찰하면 그 세상이 조금은 더 잘 보이는 것 같다.


학교 캠퍼스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수업 중에도 길고양이들이 교실 안에 들어와 처음 내 다리를 훑고 지나간 날, 나는 나도 모르게 수업 중에 소리를 쳤고, 교수님과 학생들이 모두 웃으며 우리 학교는 동물 친화적인 캠퍼스라고 대답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인도의 네루 대학에선 친구와 길을 걷다 앞에 같이 지나가던 작은 새가 갑자기 꼬리를 펼치더니 어느새 1인용 텐트만 한 공작새가 되어서 깜짝 놀랐던 기억도 난다.






내가 여행하고 살았던 나라들엔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개와 강아지들도 참 많았다. 가끔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것을 같이 보고, 또 사람들이 지키는 것을 같이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 안 믿는 환생도 믿어지게 만드는 묘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또 어떤 아이들은 어찌나 해맑고 순수한지 길가다 우연히 마주친 복실이 세 마리의 순수함에 우리까지 아이 같아지고, 더운 날 굳이 그늘을 찾아 넋 놓고 있는 강아지를 보고 있으면 나 같아서 웃음이 터졌다.






아주 산촌, 어촌 시골에서 만난 동물들은 마치 동네 어르신들처럼 개나 소나 닭이나 상관없이 마실 다녀오는 이웃을 만난 듯 쳐다보고, 사람과 동물 사이 공간의 경계가 옅은 곳에선 동물들도 마음 편히 제 집처럼 휴식을 취한다.






독일에 온지도 어느새 두 해가 훌쩍 넘어가는데, 우연히 예전의 사진첩들을 보다 내가 예전에 살았고 여행했던 곳들에서는 길 가다 마주치는 동물들이 참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원숭이도 만나고 강아지도 만나고 소도 만나고 고양이도 만났는데 독일에선 그런 일이 드물다.


동물들의 천국이라는 소리를 듣고,  그만큼  관리된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나라에서처럼 파양이나 학대에 대한 뉴스는 자주 듣지는 못한다. 다만 오랜만에 예전의 사진들을 보며 문득  관리라는 것이 사람들의 손에 의해 이뤄지고,  손이라는 것이 한편으론  것이라는,  책임과 함께 주어지는  소유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특별히 ‘내 동물’을 소유하지 않은 나 같은 여행자들에겐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하는 동물들이 없어서 길을 걷는데도 다소 심심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내 애완동물이 없는 내가 길을 걷다 우연히 반가워할 수 있는 아이들은 그래서 조류들이 아닌가 싶다. 백조, 까마귀, 비둘기 등등등.


새들이 제일 자유로운가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길가의 동물들을 보면서도 여기는 언어에서도 가리키듯 Alles in Ordnung, 모든 것이 잘 관리되고 정리되어야 하듯이 동물들도 그런 걸까 싶었다. 조금은 관리되지 않아도, 알 수 없어도 그 우연에서 마주하던 나를 미소 짓게 하던 길거리의 동물들이 조금은 그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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