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이라는 말에는, 때때로 과한 자신감이 붙는다.
“나는 요즘, 디자인이라는 말을 조심해서 쓴다”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땐, 나는 그 말이 참 멋있었다.
말끝마다 디자인을 붙이던 사람들, 디자인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목소리들,
디자인이 곧 철학이라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나도 그 말들 속에 있었고, 그게 멋있는 줄 알았다.
나는 원래 공간 디자인이 아니라 건축 설계를 전공했다.
스무 살 대학 시절, 과제는 늘 콘셉트부터 시작했다.
‘이 건축물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이 파사드의 형태는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가.’
그 시절 나에게 디자인은 설명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었다.
누군가 “왜 이렇게 했어요?”라고 물으면,
논리와 철학으로 멈추지 않고 말할 수 있어야만 했으니까.
그런데 요즘은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그때의 그 정의로 보면, 지금의 공간 디자이너들은 과연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취향을 담아 직접 꾸민 사람들,
그들이 더 ‘공간 디자이너’에 가까운 건 아닐까?
‘이게 예뻐요.’ ‘요즘은 다 이렇게 해요.’
디자이너라는 이름 아래 너무 쉽게 말해버리는 것들.
비싼 마감재를 권하거나, 몰딩을 없애고 마감선을 없애는 걸
‘디자인’이라 단정 짓는 태도.
나도 그랬고, 지금도 그런 습관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인테리어 상담을 받아본 적 있다면
많은 디자이너들의 태도가 서로 닮아 있다는 걸 느낄 거다.
정답을 아는 듯한 어조, 더 좋다는 객관적 판단,
예산이 모자라다는 말을 들으면
‘그럼 깔끔하게 수리만 하시죠’라고 정리해 버리는 무심함.
왜 그렇게 말했을까.
왜 그런 말투로 설명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디자인이라는 말에 과한 자신감이 붙어 있기 때문이었고,
그 단어를 쓰는 순간부터 상대방이 무언가 기대하게 될 거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디자인’이라는 말을 조금씩 멀리 두기 시작했다.
내가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뭔가를 ‘디자인’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그저 하루를 살아내고
공간 안에서 조용한 위로를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 앞에서 ,
“이 타일은 스페인산이에요” 같은 말을 잘하지 않게 됐다.
( 하긴 하는데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거다 그냥 취향에 맞으면 되는 거니까 )
그래서 요즘 나는
‘공간을 디자인한다’는 말 대신,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집을 같이 찾아간다’는 말을 더 자주 쓴다.
누군가에게는 조명이 그 역할을 하고,
누군가에게는 손잡이 하나가 그렇다.
누군가는 아침에 커피를 내리는 작은 수납장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그걸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나는 아무리 대단한 마감법을 써도 디자이너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나는 매일 디자인을 한다.
하지만 그 단어에 너무 쉽게 이름을 붙이지 않으려 한다.
그 대신,
살아가는 온도를 함께 조율하는 사람,
그게 내가 요즘 나를 부르고 싶은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