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료 없이, 13년만에 글쓰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기억을 떠올려보면, 초등학교 4학년 쯤 엄마의 등쌀에 못이겨 우리집에서 20분거리에 있는 독서논술글짓기 까치 글짓기가 처음이었다. 학원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건, 항상 속으로 '까치가 뭐냐? 촌스럽게...'라는 생각이 있었기때문에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 내가 11살이었을테니, 2002년도 무렵부터 중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잠깐 다녔다. 당시에 같이 학원을 다니던 친구들도 기억에 잘 나지 않고, 선생님도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곳에서 하기도 싫은 글짓기를 해야하는게 너무 짜증났었다. 그런데 웬걸, 이렇게 싫었는데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우리 엄마한테 "따님이 글짓기에 재능이 있습니다."라는 피드백을 받은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은 나름의 영업이 아니었을까 싶고, 당시 친구들의 글짓기와 달리 내 글은 태반이 나의 솔직한 감정을 쓰는게 대부분이 었으니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다 함께 이번주에 쓴 글을 읽고 서로 피드백을 주곤 했는데, 다들 자신의 일상을 정리정돈하고 교훈을 얻었다는 것으로 끝나는 초등학생들의 글짓기와 다르게 나는 내가 왜 학원에 다녀야하는지, 이런게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되는지, 왔다갔다 하면서 운동되는게 더 큰 것 같다는 둥 상당히 괴랄한 성격의 내가 쓴 글에 깔깔 웃는 친구들 반응도 좋았다. 게다 선생님도 혼내지 않아 이런 내용을 자주 썼었다. 심지어 같은 반 친구가 교회를 다니는 아이었는데, 그 친구 따라 교회에 가서 떡볶이를 사 먹으려니 '달란트'를 가져와야한다고, 그건 주말에 교회에 나오는 친구들만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친구한테 엄청 짜증내고 먼저 집에 온 나의 일상을 글짓기로 쓰곤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독후감부터 다양한 글을 숙제로 써야했지만 그때도 여전히 적당히 써서 내곤 했다. 공부를 꽤나 잘 하는 편이었고, 반에서 항상 5등안에 들었던 나는 적당히 교과서 말투와 선생님들이 추천하는 책의 작가의 말투와 기교를 베끼며 '글 잘쓰는 척'을 해왔다. 특히 어려운 비유나 미사여구를 쓰며 뭔 소리인지 하는 망작을 써내면, 선생님들은 오히려 어린 친구가 생각이 깊다며 칭찬을 해주셨다.
사실 내 글쓰기는 문장의 앞뒤구조나 호응이 완벽한 것도 아니고, 이 말 했다 저 말 했다 중구난방인 경우가 많아서 긴 글을 써내는 건 무리겠구나 느꼈다. 그래서 난 내가 한번도 글을 잘쓴다고 생각하진 않았으나, 돈 받고 글을 써온 세월이 벌써 10년이 넘은 걸 보면 꼭 잘한다고 돈을 버는 건 아닌가보다. 뭐든 일이 그렇겠지만, 의외로 비전공자가 잘나가거나 잘 사는걸 보면, 아무래도 내가 못한다는 것에 큰 쪽팔림이 없으니 더 아무거나 찔러보다가 얻어걸리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누군가가 실력이 없다, 못한다고 악플이나 비판을 달아도 상처보단 공감이 먼저되고 웃기기까지하니, 오히려 이 만큼 온 게 아닐까.
2011년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대학내일> 대학생 필진으로 처음 돈을 받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간 뒤, 논술이나 글쓰기는 항상 뒷전이었지만 가끔 유학생 커뮤니티나 당시 유행하던 페이스북에 내 나름 미국 고등학교 생활, 적응하는 방법 등 소소하게 글을 올린게 꽤 인기가 좋았다. 한국에 사는 친구들의 부러움이나 미국 유학생들의 공감을 받으며, 당시에 내 나름 무척 힘들었던 유학생활 속 좋은 모습만 보여주며 응원과 칭찬을 받을 수 있어 자주 글을 올리곤 했다. 나름 소심한 관종이었달까...
당시 한국에서 친했던 친구들에게 내 고민을 털어 놓기엔, 내가 힘든 한국 고등학교 생활을 하는 친구들에게 별것도 아닌걸로 투정하는 친구가 되어 있어 기분만 상했다. 그래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커뮤니티에 올리는 내 일상과 글에서 댓글을 주고 받다가, 쪽지를 나누기도하고, 친구가 되면 그게 참 재밌고 좋았다. 이런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글쓰기가 꽤 모여 10편은 족히 되었다. 우연찮게 페이스북에서 본 <대학내일> 대학생 필진 모집 공고를 보고, 마감날짜 하루를 남기고 아슬아슬하게 지원서를 이메일로 보냈다.
당시 대학생 필진은 한국에 있는 학생들을 상대로 모집하는 것이었으나, 또 한번 나는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라는 생각으로 지원했다. 심지어 지원서에 직접 쓴 글 포트폴리오를 첨부하라해서, 커뮤니티에 올린 이모티콘이 난자한 글을 링크로 첨부했었다. 그러고 면접을 보러 올 수 있냐는 말에, 학교 개강 전 한국에 있었기 때문에 바로 만나고 인천 공항에서 뉴욕으로 출국했었다. 당시 면접을 보셨던 에디터님 지금 생각해도 나한텐 귀인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긍정적이고 이런저런 것들을 많이 가르쳐주셨다. 특히 내가 마음대로 주절주절 써내려 간 글들을 잡지에 실릴 수 있게 깔끔하게 첨삭해주시고, 혼내지 않으면서 읽어보라고 다독여주셨고, 내 글이 가진 개성이 무엇인지도 알려주시는 등 지금 수 많은 상사를 만나본 후 돌아보면 정말 좋은 상사의 대표적 인물이라 생각한다.
<대학내일>이라는 역사깊은 잡지에서 처음으로 '원고료'라는 걸 받으며 글을 써보니, 생각보다 너무 재밌었다. 특히 내가 쓴 똥 글이 프린트되어 잡지로 나오는 걸 보며 신기했다. 뉴욕에서 패션 디자인 전공생이라는 타이틀 외에, 새로운 세계에서 일을 하며 돈을 받을 수 있어 아주 기뻤다. <대학내일>에서 내 대학생활내내 함께하며 많은 글을 썼다. 이 과정에서 모인 <대학내일> 기사는 내 포트폴리오가 되어 주었고, 수 많은 블로그 기자단이나 대학생 리포터에 지원해 활동했다. 몇몇은 중간에 하기 싫어서 스리슬쩍 빠지기도 하고, 참 철없는 짓도 많이 했으나 몇몇곳은 5-10년씩 근무했다.
2024년 1월 1일, 오늘 처음으로 나는 '돈' 안받고 글을 써보기로 했다. 2011년부터 오늘까지, 무려 13년 동안 원고료를 받지 않고 글을 써본적이 없다. 그게 단돈 몇만원이라는 푼 돈일지 언정, 돈도 안받고 주제도 정해지지 않은 글을 쓰는건 처음이다. 13년간 어영부영 여기저기서 글을 쓰며 돈을 받아왔지만, 최근 2-3년간 글쓰는게 너무 힘들고 언제는 최고의 부업이라며 감사해하던 내가 '짤려도 되니까, 안쓸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공짜로 글을 써보기로 했다. 다들 새해엔 뭐든 하나씩 새로 해보기도 하고, 목표도 세우니 나는 올해 목표로 맨날 구경만 하던 브런치에 과감히 한 번 글을 써보려고 한다. 한 달에 한 편, 1년 12개 글은 쓸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