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과 주방을 이해한 자
나는 주방에서 제대로 일해 본 것은 이곳이 처음이라 홀서빙 아르바이트 할 시절에는 언제나 주방의 업무 수행 능력을 비난하곤 했다. ‘음식은 왜 늦게 나오지’ ‘왜 추가 요청사항대로 조리를 안 한 거지’ ‘손님 응대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고작 자기 일만 잘하면 되는 걸 그리 못하나’ 등등.
그러나 주방에서 일을 시작하니 홀파트가 어쩜 그렇게 한량같이 보였을까. 나는 하루종일 쉬는 시간이 없어서 죽겠는데 밖을 쳐다보면 그들은 소소한 농담을 나누며 웃고 떠드는 게 어쩜 저리 편하게 일할까 생각이 들었다.
홀파트로 옮기게 된 후 사실 좀 설렜다.
왠지 덜 일하고 더 벌 수 있을 것 같았으니.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파트가 다를 뿐 힘든 건 똑같다. 여긴 또 여기 나름대로의 고충이 많다. 주방은 노가다의 영역이라 치면, 홀은 말 그대로 서비스 업의 최전선이었다.
수많은 요청사항과 고객 응대, 테이블 정리 및 재세팅. 쉬는 시간이라고는 고객이 식사에 돌입해 한동안 고요한 아주 작은 틈. 그때 같은 파트원들끼리 스몰 토크를 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도 예전의 나와 마찬가지로 주방 파트를 적잖이 힐난했다.
그리고 한국처럼 홀, 주방을 넘나들며 일하는 분위기가 독일에선 쉽지 않기에 홀 파트는 홀만 일하고, 주방은 주방만 담당했다.
내가 그들과 다른 단 한 가지는 주방에서 일해봤다는 것. 그것만으로 나는 순식간에 식당의 에이스가 되어 버렸다.
독일의 요식업 서비스는 한국에 비하면 처참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들은 한국처럼 ‘고객이 왕이다’라는 모토를 삼지 않는다.
‘내가 당신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나도 인간이기에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이런 태도의 느낌으로 일을 한다. 그 말인즉슨, 지나가다 ‘저기요’를 하는 것은 홀서버에게 무례인 행동이고 서버가 해당 테이블에 주문을 받으러 가기 전에 다가가서 주문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면 열에 여덟은 ‘네 차례가 아니니 자리에서 기다려. 곧 갈게’로 응답할 뿐인 게 독일 요식 서비스 분위기였다. 여담으로 이런 문화다 보니 손님이 주문을 기다리는데 서버가 해당 테이블 주문받는 것을 까먹어 1시간 이상 주문대기를 하는 경우도 종종 일어난다.
그러나 나 그리고 여러 한인 서버들은 누구인가. 바로 서비스 왕국 대한민국에서 왔다. 이들의 가장 불친절한 업무 태도도 독일에선 중간 이상은 평가받는 서비스 품질을 자랑한다. 그렇기에 한국에서 일한 정도로 일을 하면 큰 문제없이 고객과 웃으며 일할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주방을 이해하고 있던 나는 종종 주방 업무가 포화 상태에 이르면 주방에 들어가 그들의 업무를 도와주곤 했는데 그러한 내 업무 스타일이 동료들이 나를 에이스로 올려주었다.
다른 서버가 주방에 들어가면 사무적이던 분위기도 내가 들어가면 농담도 던지며 즐거운 분위기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사장의 나에 대한 평가가 ‘언제든 자를 놈’에서 ‘쓸모 있는 놈’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많은 현지 손님들을 응대하면서 나의 독일어 스킬이 빠르게 상승하였다.
정작 잘 해내야 하는 내 전공은 여전히 정체되어 있는데 언어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니 이것도 꿈의 연장선이다 자기 합리화를 하며 상승감을 만끽했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 가득한 불안함은 여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