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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eM Jul 04. 2024

유학을 빙자한 일자리 찾기(3)

이상한 조합

한식당이라는 울타리에 들어있는 주방에는 한국인이 나뿐이었다.

한국인을 싫어하지만 한식을 파는 조선족 사장.

한국을 가본 적이 없는 중국인 총 주방장.

10남매를 먹여 살리려 혼자 독일에 넘어온 베트남 청년.

이 사람들을 보조해줘야 하는 나.


아이러니 한 건 이들 중 대화가 통하는 건 사장뿐이었다.

총주방장은 중국어만 할 줄 알고,

베트남 친구는 독어만 하고(그것도 아주 낮은 수준의),

나는 한국어만 했으니.


어느 곳이건 팀 단위 업무는 ‘의사소통’이 중요하고, 그것의 근간은 당연히 ‘언어’일 텐데도 이러한 관계 속에서 그것을 극복할 수 있음을 느꼈다.

이들과는 고작 5개 미만의 동사와 식재료 이름만으로 하루를 같이 보내는데, 나중엔 고작 이것만으로도 이들과 2시간 이상 농담이 가능해졌다.


사장은 한국인들에게 받은 상처가 많은지 한국인에 대한 불신이 가득했다.

‘한국 아새끼들은 항상 뒤가 구려. 너도 조심해. 나는 다 보고 있다’


총주방장은 자기만의 요리 철학이 있다. 그리고 그는 요리에 너무 진심이기에 요리에 관련된 건 가리지 않고 전부 알려주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 중엔 보통 주방장들은 자기의 스킬과 노하우를 쉽게 알려주지 않는단다. 그걸 배우기 위해 그 주방장 밑에서 몇 년을 고생해 배움을 청하는 게 일반적인 주방 분위기라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러나 이 아저씨는 요리 얘기만 하면 눈이 빛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덕분에 많은 주방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다.

언어만 서로 더 잘했으면 더 많이 배웠을 텐데. 아쉬움이 여전히 남는다.


베트남 청년은 이제 막 21살이 된 어린 친구였다. 한국이었으면 찬란한 대학 시절을 보냈을 그 어린 나이에 10남매의 큰 아들로 가족을 부양하고자 먼 독일에 넘어와 돈을 버는 그런 청년이었다. 배움도, 언어도, 예의도 모든 게 부족했지만 그 건실함과 순박함만은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서도 손에 꼽는다.


내가 이들보다 나은 건 고작 4년제 대학 졸업장 정도일까.

처음엔 이들의 무식함과 불합리함을 놓고 무시하는 마음만 있었다.

그런데 이 주방에서 가장 민폐는 정작 나였다.

그들이 1시간 만에 해내는 일들이 내 손에 들어오면 2-3시간이 되어버리고, 나는 자주 다쳤기에 그들은 나의 빈자리마저 채워줘야 했다.


그렇게 2개월쯤 일했을까.

사장이 불렀다.

‘니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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