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살아남는 것뿐 아니라 그 이상을 누린다는 것
해외 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꼽는다면 단연코 ‘현지 언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공용어인 영어를 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많은 나라에서 살 수 있지만, 공용어라는 것은 현지를 적응하는 데에 필수적 언어 조건이 되지는 않는다.
영어권 나라, 관광지에 특화된 일부 도시들을 제외하고는 각 나라의 ‘현지 언어’ 유무가 삶의 질을 다르게 만들어준다.
독일에 살면서 영어만으로 혹은 한국어만 하면서 사는 한인들을 종종 만나곤 했는데, 그들은 자기의 삶을 굉장히 만족하다는 듯이 얘기를 하면서 언제나 독일의 삶에서 이런저런 불편을 겪고 이런저런 안 좋은 대우를 받는 경험을 마치 ‘독일은 원래 이런 나라다’ 하고 못 박듯이 얘기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말도 안 되는 선입견이라는 것은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사실 공부에는 그리 큰 재능을 갖지 못했다. 중학생까지 곧잘 따라잡던 한국 교과 과정도 고등학생이 된 후 바로 눈에 띄게 뒤쳐졌다.
대신 나는 ‘눈치’라는 재능을 갖고 있었는데, 단순히 생각하는 ‘눈치를 보는 것’을 넘어서 상대의 말투, 성향, 행동 양식 등 을 파악해 그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을 잘했다. 이 재능은 요식업을 하면서 많은 이득을 보게 되었는데, 식당 아르바이트의 위치할 땐 잘릴 걱정이 크게 없었고 손님들에겐 소소하게 그들의 따뜻한 친절을 받을 수 있었다.
그건 나에게 일종의 ‘자신감’이 되어줬는데 독일에 와서는 그 ’ 자신감‘도 ’ 언어‘가 없으면 한계가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독어는 고사하고 영어도 간신히 스몰 토크나 하는 수준이었지 그걸 통해 내가 무언가 이루기엔 턱 없이 부족했으니.
그래서 부족한 시간을 쪼개 가장 이른 시간의 어학원을 수강했다. 하루에 최소 10시간 이상 잠을 자야 했던 나는 5 시간 이상 잘 수가 없었고, 일을 하지 않는 날엔 독일어 능력을 늘리고자 재밌지도 않은 독일 시트콤을 정주행 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주방에서 사실상 0개 국어로 버텨오던 나의 삶에 하나의 빛이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