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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규 Mar 28. 2021

봄비가 온단다.

앵커리지는 아직도 영하이고 온 천지에 눈으로 가득한데, 서울에는 비가 온단다.


비가 올 때면 지금은 없어진 고향집 내방 창밖으로 올려다 보이던 기와지붕 처마에서 조르르 떨어지던 낙숫물이 생각난다.
그냥 떨어지는 낙숫물을 바라보며 그 낙수가 바닥에 패인 물구덩이에 부딪치는 그 소리를 듣기만 해도 좋았다.

고무장화 신고 우산 들고 등교하다 비포장 언덕 길가의 턱을 따라 탁류처럼 흐르는 빗물에 버들잎 띄워놓고 넋이 나가 쳐다보고, 친구가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뛰어서 학교까지 뛰어가고 보면 비에 젖은 건지 땀에 젖은 건지 모를 물에 빠진 생쥐들이 옹기종기 60여 마리가 모여 있었다.

고1 가을 머리 털나고 처음으로 했던 미팅에서 파트너와 같이 우산을 쓰고 걸었던 영랑호에서, 수면에 무수히 생기고 사라지던 동심원을 바라보면서도 내 신경은 온통 내 오른팔에 맞닿은 뭉클거리는 내 몸에는 없는 그 무언가에 집중되어 있었다.(그 파트너가 교련 선생님 막내 동생이라 그다음 날 참가자 전원이 빠따 맞은 건 안 자랑)

사관생도 시절 정복에 레인코트를 입고 도착했던 우리 동네 가게 앞에서 나를 바라보고는 환하게 표정이 달라지던 그녀의 눈빛

비가 장대처럼 쏟아지는 공설운동장 벤치에 쪼그리고 앉아 한 시간이 넘도록 비비대던 입술.

"야! 빗방울 떨어진다! 비행 접자!"
"전달! 전달! 전달! 8비 비행 stand by due to weather. 각 대대 조종사들은 운동 복장으로 갈아입고 연병장으로 집합할 것. 대대 대항 축구시합 개최 예정. 이상!"
그리고 벌어진 피 튀기던 수상 전투 축구.
위아래도 없고, 동기생도 없이 벌어지던 유혈이 낭자했던 전투 축구.

어느 이름 없는 국도가에 세워놓은 차 안에서 후드득 차창에 부딪치는 빗소리를 들으며 말없이 듣던 노래들.


이제는 추억을 먹으며 살아가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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