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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규 Mar 19. 2021

언젠가는 쓰러진다.

아이들도 잘 낳고, 공부도 많이 시키고, 열심히 일하면 돈이 벌리는 사회가 만들어진다. -
잘 사는 나라가 된다 -
잘살게 되니 내 어린 시절의 고생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싫어서 아이들에게 많은 투자를 하고 물질적인 부족함이 없게 해 준다 -
어릴 때부터 헬리콥터 부모의 보살핌 아래 물질적 궁핍이 없이 공부만 하다 보니 사회성이 부모 세대에 비해 부족해진 채 사회로 진출한다 -
동시에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고 여성 인권이 신장되면서 개발시대의 내 어머니처럼 내 딸은 살게 하지 않겠다는 의식을 자녀들에게 불어넣어주고 그렇게 큰 자식은 자아가 확립되어 결혼을 기피하고, 결혼해도 자녀를 가지지 않으려 한다. -
사회에 진출해도 근육을 쓰는 일이나 힘들고 궂은일은 안 하려 한다. -
사회는 모든 면에서 양극단으로 몰린다. 부자와 가난한 자, 전통적 가정을 꾸리는 자와 아예 거부하는 자, 자식을 가지는 자와 자식 낳기를 거부하는 자 -

우리나라는 성장 속도도 유래 없이 빨랐고, 미국/유럽과 같은 선진국의 사회현상을 겪는 속도도 빠르다.

육체적 노동과 궂고 힘든 일을 담당할 젊은 세대는 진공 상태가 되어서 조선족/중국인/동남아인/아프리카 인등이 이미 그 자리를 과반 차지했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그걸 인식하지 못한다.

취업이 안되면 노가다라도 뛰고, 농촌에 일 삵이라도 받으러 나가라고 하지만 그것도 외국인들이 장악한 판에 쉽지가 않다.

뭐가 잘못된 것도 아니고 뭐라 고치기도 힘들다.
어느 누가 "내 딸이, 아니면 내가 1980년대까지의 가부장적 사회구조에서 전업주부로 자기 인생을 희생하면서 사는 것"을 강요하고 그런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어느 누가 내자식보고 취업이 안되면 공사판 노가다라도 나가서 돈 벌어오라라든가 어선 타고 나가서 고기 잡아 오라고 등을 떠밀 것인가?

자본주의가 고도화되고 삶의 수준이 향상될수록 전통적 가정은 붕괴되고, 빈자의 삶의 질은 더더욱 떨어진다.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 길거리의 수많은 거지들 중 유색인종은 흑인을 빼곤 보이지가 않는다. 다들 백인과 흑인들이다. 어느 순간에는 저들도 유복하게 자랐을 사람들이다.
그들이 하급 노동을 회피하고 하급 노동에 종사하면서 제대로 된 가정도 못 갖는 사이, 그들의 일자리는 아메리칸/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가난한 나라의 부지런한 이민자들에게 빼앗겼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 강대했던 로마가 왜 북방의 게르만 민족에게 멸망되었을까 궁금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된다.

세상은 돌고 돈다. 삶이 윤택하면 쾌락과 편안함을 쫓고 체중이 늘며 혈관에 콜레스테롤이 쌓인다. 그러다 사람은 죽는다. 그 사람이 그렇게 두려워하던 교통사고나 숙적의 칼날이 아닌 성인병이나 혈관질환으로 어이없게 죽어 버린다.

이젠 우리나라도 누가 뭐라고 하건 선진국이고 선진국들이 겪는 성인질환을 겪고 있다.

성인병에 걸리지 말라고 죽지 않을 만큼만 먹고살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전통적인 가치관의 가정을 꾸리고 전통적 직업관을 가지고 가라고 어느 한쪽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저 변화된 환경을 인정하고 그것에 적응해서 살아가야 한다.

해는 가장 높은 고도에 오르는 게 정오가 아니고, 한번 높은 고도에 오르면 급격히 떨어진다.

달은 다 차는 순간 다음을 위해 쪼그라들어간다.

삶이 그렇듯 사회도 그렇게 굴러간다.

불멸의 삶이 없고, 내가 쓰러져 죽은 땅 위에 낯선 사람이 두발로 서듯이, 사회도, 종도 그렇게 흥망과 성쇠를 반복하며 바뀌어 간다.

잘살고 강해진다는 것의 다른 뜻은 우리는 죽어가고 약해지며 또 다른 강자의 발아래 쓰러질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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