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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규 Mar 26. 2023

민간항공 조종사의 유니폼 유래와 그 의미

'제복 효과(enclothed cognition)'라는 용어가 있다.

사람들이 그가 입는 옷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현상을 일컫는 말로 미국 켈로그 대학의 애덤 갤린스키 박사가 정의한 용어이다. 하조 애덤과 애덤 갈린스키가 2012년 실험 사회심리학 저널에 기고한 논문 ‘의복착용과 인식작용’을 보면 잘 나와 있다. 그들은 주의력을 테스트하는 스트룹 테스트(Stroop test)를 진행한 결과, 의사의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가운을 입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실수를 절반 정도만 저지른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의사의 흰 가운을 입었을 때 주의력이 더 높아졌던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도 의사 가운을 입고 있으면 주의력이 강해지고 정확해지며 조심성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즉, 제복이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다.


제복이란 무엇인가?

제복(制服), 또는 유니폼(uniform)은 일정한 기준에 의해 정해진 동일한 양식의 복장으로, 집단이나 조직에 소속된 인원이 조직 활동에 참여할 때 입는 의복을 말한다.

현대의 제복은 군대, 경찰이나 회사, 학교, 감옥과 같은 단체 활동을 하는 기관에서 주로 착용한다. 제복은 다른 복장과 달리 목적에 따라 형태나 색상, 장식, 기능을 구비하고 통일하는 것이 특징으로, 착용자에게 소속감과 일체감을 부여하는 동화의 기능, 외부인과 차별되는 구별의 기능을 한다.

경찰과 같은 일부 국가 단체에서는 소속된 자가 아닌 일반인이 제복을 입는 것을 불법으로 간주한다.

제복에는 교복, 군복, 경찰복, 승무원복 등이 있다.

제복 및 그와 유사한 옷을 착용하는 직종은

군인, 경찰관, 소방관, 법관 (판사, 검사 등), 세관원 등의 법집행기관원 또는 치안과 질서 유지를 위해 무력을 합법적으로 사용하는 직종.(철도경찰, 은행 경비 등의 청원경찰 포함)

해기사(항해사, 기관사, 선장, 기관장), 기관사, 조종사,

의료 종사자 (의사, 간호사, 약사 등),

특정 대학생 (사관학교, 경찰대, 해양대 등), 학생 (특히 중고교생), 보이스카우트 및 걸스카우트,

구세군 등이 있다.



유니폼(제복)은 왜 입을까?

첫번째, 국가 또는 조직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authority)을 의미한다.

제복을 입는 직종의 대부분은 국가로부터 위임받은 일정 부분의 사법적/물리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군에서는 장교가, 사회에서는 경찰과 소방, 철도경찰/세관/출입국관리관 그리고 법원의 판사와 검사가 그러하다.

법정에서 민간인인 변호사는 법복이 아닌 사복을 입지만,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검사와 재판권을 가진 판사는 법복이라는 유니폼을 입는 것이 그 상징이다.

국가의 영토로 간주되는 자국 국적의 여객기내/선내에서 기사법권을 갖는 기장/선장이 유니폼을 입는 것도 같은 의미라고 본다.(여객기 기장의 사법권과 사법경찰권의 법적 근거는 아래에서 다룬다.)

따라서 일반인들은 어떤 사람이 제복을 입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들의 지시에 순응하고, 그들의 발언을 신뢰하며, 권위를 부여한다.(우리가 가냘픈 여경의 지시에 순응하는 것은 그녀가 입은 제복의 위력을 어렸을 때부터 학습했기 때문이며, 결코 그녀가 우리보다 육체적으로 우월하다고 믿기 때문이 아니다.)


두번째, 구성원 간에 동질감을 형성한다.

같은 제복을 입고 일할수록 구성원들 사이 동료의식이 강해진다.


세번째, 제복이 구성원들의 복장에 대한 스트레스와 관련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이건 뭔가 억지스럽다.) 


네번째, 애덤 갈란스키 교수가 주장한 생산성의 증가로, 이런 효과는 결국 구성원의 직업의식을 강화시켜준다는 것인데 이는 세월호 사건에서도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세월호가 침몰할 때 선장은 제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 제복 착용 여부를 떠나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으나 만약 선장이 선장임을 나타내는 제복을 입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주위의 보는 눈 때문에 그렇게 쉽게 가장 먼저 배를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반면 평소 유니폼 규정이 엄격한 항공업계에서는 2009년 US Airways 허드슨강 불시착,2013년 아시아나 샌프란시스코 crash landing, 2016년 일본 하네다공항 대한항공기 비상탈출, 2022년 대한항공 세부 공항 활주로 오버런 등 수많은 항공기 사고와 탈출 과정에서 승무원들이 나도 살고 싶다는 생존 본능과 도망치고 싶다는 공포감을 이겨내면서 승객들의 탈출을 완벽하게 유도한 사례가 있는데 이런 것이 세월호 사고와 반대의 경우가 아닐까 싶다.

또한 100년도 전인 1912년의 타이타닉호 침몰시 질서정연한 승무원들의 대처도 평소에 입고 근무했던 유니폼이 효과를 미친 동일한 사례라고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꼬리뼈가 부러진 상태에서도 맨발로 부상 승객을 업고 대피하는 아시아나 승무원  



다섯번째, 국가와 community의 leader 또는 leader 후보생을 뜻한다.

양복과 교복, 제복은 근현대 유럽의 육해군 장교들의 군복(Sack Coat)을 개량한 옷이다. 근대화/산업혁명 시기에 의복도 혁명적으로 발전하면서 중산층 서민들이 신분상승과 부의 상징으로 군복을 차용하기 시작했다.

중고등 학생들이 교복을 입는 이유는 19세기말 20세기 초만 해도 중학교는 지금의 대학교/대학원과 같은 수준이었고,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집안에 학교를 보낼 여유가 있고, 학업과 지도력에 관심이 있으며 지적 능력이 갖추어진 community와 국가의 지도자와 간성이 될 사람들이 가는 고등교육기관이었기 때문이다.

그걸 일본이 메이지유신이후 근대화하면서 받아들여 일본화하면서 만든게 가쿠란 : “学ラン(がくらん, 学蘭)이다.

육군과 공군 사관학교 정복과 흡사한 이유가 그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군복을 입혀 국경일에 퍼레이드에 참가시키는 학교가 프랑스의 grandes écoles(그랑제꼴) 중 에콜 폴리테크닉 같은 일부 학교이다. 이런 학교의 졸업생들은 프랑스 각 조직의 핵심 인재로 채용된다.(프랑스에서 빠갈로레아 치르고 아무곳이나 가는 대학교들은 흠... 우리도 지방의 대부분 대학교 수능만 치면 골라서 갈 수 있다.)

그래서 유니폼에는 그 사람의 계급/직급을 나타내는 계급장(견장/수장), 그 사람의 직종/병과/branch를 나타내는 흉장 등이 부착되고, 그 중 특히 사관(officer)에게는 중세 기사들의 투구에서부터 유래된 정모가 따라 붙는다.

이런 양복과 교복의 유래에 대해서는 본인이 쓴 https://af185.tistory.com/m/11751762라는 글을 참조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민간항공의 조종사들이 입는 제복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그 이야기는 이제는 사라진 항공업계의 전설과도 같은 회사 Pan Am(Pan American World Airways)으로부터 시작한다.

1930년대 초 Pan Am이 현재의 여객선 사관들과 유사한 유니폼을 조종사들에게 입히기 전까지 초기 항공사의 조종사들은 1차 대전 시기에 정착된 실용적이고 편안하며 대형 주머니가 앞에 달린 가죽 재킷과 바람으로부터 눈을 보호할 goggle, 인터폰이나 무전기용 헤드셋이 달린 가죽 비행모와 부츠, 목을 감싸기 위한 머플러를 착용했다. 그래야 조종석으로 불어 들어오는 외풍으로 인한 추위로부터 체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여객기도 초기에는 소형이며 원시적이었고, 지금과 같은 flight deck이 아닌 cockpit이라 불리우는 좁고 시끄러운 곳이었다.

1931년 Pan Am은 American Clipper, Southern Clipper 및 Caribbean Clipper라는 이름을 가진 Sikorsky S-38 및 S-40 비행정을 사용하여 남미 항로를 개설하였다. 이 비행정들은 1931년에서 1946년 사이에 Pan Am을 상징하게 된 28대의 Clipper라는 이름을 가진 비행정 시리즈 중 첫 번째였다.

Sikorsky S-38

Sikorsky S-40(승무원 8명, 승객 35명, 최고속도 138mph)


원래 클리퍼는 속도를 중시해서 설계된 19세기 중반 상선의 일종이었다. 클리퍼는 일반적으로 길이가 짧고 19세기 후반 표준에 따라 작았으며 제한된 벌크 화물을 운송할 수 있었고 총 항해 거리가 길었다. Clippers는 중국에서 차를 더 빨리 수입하려는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1843년에 시작되어 주로 영국과 중국 간의 무역로, 대서양 횡단 무역, 848년과 1851년에 캘리포니아와 호주에서 금 발견(골드 러쉬)의 자극적인 영향으로 계속되어 케이프 혼 주변의 뉴욕-샌프란시스코 항로를 통해 전 세계를 항해했지만, 1869년 수에즈 운하의 개통으로 끝났다.

전형적인 19세기 clipper


Pan Am이 배의 이름을 차용한 이유는 그들이 운용한 여객기가 공항 사정이 열악한 카리브해와 남미의 항구 앞바다에 착륙하는 비행정이었기 때문이다. 잔잔한 바다가 길게 뻗어 있는 항구는 미국과 유럽의 인구 밀집 항구나 호놀룰루, 피지, 자바와 같은 이국적인 목적지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착륙장이었고, 쾌속 범선인 clipper와 빠른 속도로 날아가 바다에 내리는 비행정이 묘하게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Pan Am Sikorsky S-42 Flying Boat(승객 32명)


1937년에 Pan Am은 미국에서 대서양을 건너 아일랜드, 영국, 프랑스로 수상 비행정 운항을 시작했다. 1939년 초에 6대의 대형 장거리Boeing 314 비행정이 팬암에 인도되었다. 보잉 314는 그 시대의 가장 큰 항공기 중 하나였으며 느낌상 오늘날의 보잉 747과 거의 맞먹었다. 날개 길이가 152피트인 이 비행기는 승객과 연료를 실었을 때 무게가 84,000파운드(38,000kg)로, 4기의 1,600마력 Wright Cyclone 엔진을 장착했다.

 본질적으로 하늘을 나는 호화 여객선인 플라잉 보트 기내 서비스는 기내 갤리에서 조리되고 따로 마련된 식당에서 제공되는 미식(gourmet meal)과 함께 독보적인 것이었다. 12명의 승무원과 74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는 보잉 314에는 턴다운( turndown)침대 서비스가 제공되는 수면 공간도 있었다.

탑승권의 가격도 엄청난 것이어서 1940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홍콩까지 편도 비행 비용은 $760($1067)였다. 현대의 가치로 환산하면 거의 $15,000($A21,070)이었다.

이로 인해 1939년 6월 24일 미국과 영국 사이에 매주 정기적인 대서양 횡단 승객 및 항공 우편 노선이 운항을 시작했다. Pan Am은 비행정 즉, flying boat를 운영했기 때문에 1차대전 시기의 군 전투기 조종사의 복장에서 벗어나 해군 장교 및 크루즈 여객선 사관들의 제복과 매우 유사한 복장을 자사 line pilot 들에게 입히기로 결정했다. 당시 Pan Am의 항공승무원들은 조종사라기보다는 skipper 즉, 요트로 항해할 때 그 배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선장에 더 가까웠고, 해상비행을 하는 조종사가 쾌속 여객선의 선장과 유사한 정식 제복을 차려입고 조종실에 앉아 있는 것을 보는 것은 먼 바다를 가로질러 여행해야 하는 승객의 불안감을 없애고 자신감을 심어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Pan Am이 clipper라 불리운 자사의 비행정안에서 제공한 서비스는 대양을 횡단하는 호화 여객선의 서비스와 다르지 않았다. 승객들이 서로간에 담소를 나눌 수 있는 salon 형태의 객실, 4성급 호텔 주방장이 준비된 재료로 조리해서 내어주는 기내식 서비스와 저녁 식사 시간에는 기장이 함께하는 식당, 야간에 잠을 잘 수 있는 독립된 bunk bed, 호텔의 웨이터/웨이트리스와 유사한 복장의 객실 승무원들.

조종실도 여객선과 마찬가지로 captain(기장), 1st Officer(1등 항해사), 2nd officer(2등 항해사), 3rd offcier(3등 항해사), flight engineer(기관사), Radio Operator(무선통신사)가 근무하는 큰 장소가 되었으며, 항법도 여객선이 바다에서 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pilotage, dead reckoning, 육분의와 시계를 이용한 천측 항법을 하였다. 대부분의 비행용어가 항해용어에서 기원하였으며 비행기가 공항이나 수상 이착륙장에 도착해서도 배와 같이 왼쪽으로 접현을 하고, 그곳으로 손님들이 탑승을 하고 하기를 하였다. 그래서 여객선과 동일한 제복을 입혀도 전혀 이질감이 없었다. 더불어 이 때를 기점으로 조종실을 좁은 닭장을 의미하는 cockpit에서 비행기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갑판을 의미하는 flight deck으로 부르게 되었다.(배에서는 조타실만은 wheel house, 배를 조종하고 모든 것을 통제하는 곳을 선교/함교, bridge라고 부른다.)


따라서 조종사에게는 검은색 바지, 검은색 double-breasted blazer(더블 쟈켓 양복), 양복의 소매 하단에 승무원의 계급을 나타내는 수장(袖章 : sleeve braid loops)을 부착하였다. 자켓 안에 받쳐입는 셔츠의 어깨에는 계급을 나타내는 견장을, 자켓과 셔츠의 왼쪽 가슴에는 그 사람이 조종사인지, 기관사인지를 상징하는 조종 흉장을 부착하게 하였다. 또한, 항공사 이름이나 로고가 표시된 금색 또는 은색 휘장이 있는 흰색 장교 스타일 콤비네이션 모자가 지급되었다.


Pan Am은 1930년대의 비행정을 이용한 여객 운송의 성공과 1950년대의 확장으로 인해 가장 크고 가장 잘 알려진 세계적 수준의 항공사 중 하나가 되었고, 이러한 Pan Am의 성공을 모방하고자 하는 다른 많은 항공사들은 자신의 승무원을 위해 Pan Am 조종사의 세련된 외관을 채택했던 것이다.  

1988년 첫비행한 Boeing B-747-400과 1990년 첫비행을 한 맥도널 더글라스 MD-11부터 흔히 steam gage cockpit로 불리는 수많은 원형 아날로그 계기로 가득찬 계기판에서 glass cockpit이라 불리우는 컴퓨터 기반 디지털 첨단 통합 조종석 시스템이 개발되었다. 이에 따라, 여객기 조종사들은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work load가 비약적으로 감소, 특히 항법에 관한 부담이 줄어들어 현재는 주로 2인 1조로 여객기를 운용하고 있다. 대부분의 승무원은 2명의 조종사로 구성되며 그 중 한 명은 임무 지휘조종사(PIC)인 기장(captain)이고, 시스템 통합 및 그에 따른 작업 부담 감소로 인해 항공기관사, 항법사 또는 항공무선사와 같은 추가 승무원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지만 여전히 제복에서의 기장과 1등 항해사(부기장), 2등/3등 항해사의 유니폼은 살아 남았다. 또한, 일부 구형 여객기가 여전히 화물 운송에 사용되기 때문에 그들의 제복 또한 남아 있다.

기장은 함장/선장과 마찬가지로 4줄의 견장/수장을 부착하고, 대부분의 항공사가 가슴에 패용하는 조종흉장에 원형의 월계수를 두른다.(원형의 월계수를 두르는 것은 대부분 국가의 해공군에서 commanding officer, 지휘관을 의미한다.) 만일 어떤 4줄의 수장을 패용하는 기장이 줄 안에 별이 표시된다면 그 기장은 수석기장 또는 선임기장이다.

부기장은 해군 중령과 유사한 3줄의 견장/수장을 부착하고, 가슴에 패용하는 조종흉장에는 월계수관이 없다.(일부 항공사의 부기장 조종흉장에 별이 있다면 그 사람은 선임부기장이다.) 항법사/기관사와 무선통신사는 해군 대위와 유사한 2줄의 견장/수장을 부착한다.

국내 항공사의 경우 대한항공이 채용한 군경력/민경력 조종사들이 제주 정석공항에서 기본 비행교육을 받는 동안 2줄의 수장/견장을 패용하는 2nd officer로 대우하고 있으며, 외국의 다수의 항공사(KLM 등)는 장거리 운항에 한하여 20,000피트 이상의 non critical flight phases인 항로 상에서의 순항 동안만 부기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조종사를 2nd officer/Cruise pilot로 운용하고 있고, 라이언 에어에서는 갓 임용된 저경력 부기장에게 2줄의 견장/수장을 패용하는 2nd officer로 지위를 부여한다. 일부 항공사는 자사에서 채용한 비행경험이 전혀 없는 조종학생을 3rd officer/cadet으로 지위를 부여하기도 한다.



현대 민항 조종사들에게 제복과 모자의 의미란?

 항공안전법과 해난구조법에 의하면 기장/선장과 고급 승무원(사관)들은 사법권을 부여받으며, 동시에 여객기나 여객선에 사고가 발생시 승무원들은 승객의 탈출을 최우선시 하게 되어있으며, 기장/선장은 기내/선내에 남아있는 승객의 유무를 확인 후 최후로 탈출하게 되어 있다.


여객기 기장의 경우 다음의 각 법에 의해 사법권을 부여받는다.

항공안전법 제62조

1항. 항공기의 운항 안전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사람(이하 “기장”이라 한다)은 그 항공기의 승무원을 지휘ㆍ감독한다.

3항. 기장은 항공기나 여객에 위난(危難)이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될 때에는 항공기에 있는 여객에게 피난방법과 그 밖에 안전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명할 수 있다.


항공보안법 제22조(기장 등의 권한)

① 기장이나 기장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승무원(이하 "기장등"이라 한다) 또는 승객의 항공기 탑승 관련 업무를 지원하는 항공운송사업자 소속 직원 중 기장의 지원요청을 받은 사람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려는 사람에 대하여 그 행위를 저지하기 위한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

1. 항공기의 보안을 해치는 행위

2. 인명이나 재산에 위해를 주는 행위

3. 항공기 내의 질서를 어지럽히거나 규율을 위반하는 행위

② 항공기 내에 있는 사람은 제1항에 따른 조치에 관하여 기장등의 요청이 있으면 협조하여야 한다.

③ 기장등은 제1항 각 호의 행위를 한 사람을 체포한 경우에 항공기가 착륙하였을 때에는 체포된 사람이 그 상태로 계속 탑승하는 것에 동의하거나 체포된 사람을 항공기에서 내리게 할 수 없는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체포한 상태로 이륙하여서는 아니 된다.

④ 기장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승무원 또는 승객의 항공기 탑승 관련 업무를 지원하는 항공운송사업자 소속 직원 중 기장의 지원요청을 받은 사람이 제1항에 따른 조치를 할 때에는 기장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

사법경찰직무법 제7조(선장과 해원 등) ① 해선(海船)[연해항로(沿海航路) 이상의 항로를 항행구역으로 하는 총톤수 20톤 이상 또는 적석수(積石數) 2백 석 이상의 것] 안에서 발생하는 범죄에 관하여는 선장은 사법경찰관의 직무를, 사무장 또는 갑판부, 기관부, 사무부의 해원(海員) 중 선장의 지명을 받은 자는 사법경찰리의 직무를 수행한다.

② 항공기 안에서 발생하는 범죄에 관하여는 기장과 승무원이 제1항에 준하여 사법경찰관 및 사법경찰리의 직무를 수행한다.


항공기내에서 행한 범죄 및 기타 행위에 관한 협약(동경협약 제6조)

제6조 1. 항공기 기장은 항공기내에서 어떤 자가 제1조제1항에 규정된 범죄나 행위를 범하였거나 범하려고 한다는 것을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그 자에 대하여 다음을 위하여 요구되는 감금을 포함한 필요한 조치를 부과할 수 있다.

(a) 항공기와 기내의 인명 및 재산의 안전의 보호

(b) 기내의 질서와 규율의 유지

(c) 본 장의 규정에 따라 상기 자를 관계당국에 인도하거나 또는 항공기에서 하기조치 (Disembarkation)를 취할 수 있는 기장의 권한 확보

2. 항공기 기장은 자기가 감금할 권한이 있는 자를 감금하기 위하여 다른 승무원의 원조를 요구하거나 권한을 부여할 수 있으며, 승객의 원조를 요청하거나 권한을 부여할 수 있으나 이를 요구할 수는 없다. 승무원이나 승객도 누구를 막론하고 항공기와 기내의 인명 및 재산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하여 합리적인 예방조치가 필요하다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기장의 권한부여가 없어도 즉각적으로 상기 조치를 취할 수 있다.


leader를 뜻하는 영어 captain 은 프랑스어 capitaine 에서 유래했다. Capitaine 은 머리를 뜻하는 caput를 어근으로 머리 자리에 있는 자라는 capitaneus에서 유래한다. 함장이나 기장 모두 우두머리 장 자를 쓰는데 한글 전용 때문인지 그게 절대적인 지위를 갖는다는 의미를 잘 모르는 이들이 많다.

먼저 기장/선장과 상급 사관들에게 사법권이 부여되는 이유는 여객기와 여객선이 그 나라의 영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영토의 일부이지만 국가의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공중이나 해상 또는 타국의 영공이나 영해, 공해상을 항해하기에 최고 책임자인 기장/선장과 상급 사관들에게 국가가 질서유지와 안전을 위해 사법권을 위임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장/선장의 권한을 위임받은 승무원이 안전을 저해하는 승객을 체포하거나 구금하고 도착지에서 사법경찰에게 인계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다.

항공안전법에 의하면 승무원은 기장 또는 기장에게 위임받은 자의 승인 없이는 함부로 승객을 체포/구금하거나 기타 안전유지를 위한 행위를 임의로 수행할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여객기와 여객선에서는 지휘권(command authority)라는 개념이 존재할까? 여객기와 여객선은 그 자체로 개별의 승무원이 부여된 고유 임무와 역할을 수행하여야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는 인간과 기계의 복합적 기능 수행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임의로 자신의 임무와 역할을 해석해서 수행하거나 수행하지 않을 경우 전체의 안전에 큰 위협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군대와 같은 조직체계와 계급에 의한 위계질서가 적용된다.


또 한편으로는 사략선(私掠船, privateer/corsair ship)에서 기원을 찾을 수도 있다. 사략(私掠, privateer, corsair)은 중세말부터 근대 초기 유럽국가로부터 특허장을 받은 개인이 자신의 비용으로 선박을 무장시켜 적성국가의 상선을 노략질하는 것을 뜻한다. 유럽 국가들은 부족한 상비 해군력을 보충하기 위해 사략선에 교전자격을 부여했다. 이 사략해적의 기동력과 해상 무장이 영국과 오스만 등 국가권력에 의해 이용된 예도 있어 어떤 의미에서는 해군의 선구적 형태였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해적은 Pirate이지만 이들은 공인받지 못한 해적으로 그 활동은 불법이었다. 이와 달리 왕실이나 총독 등으로 부터 사략 특허장을 부여받아 공인받은 사략선원들은 합법적으로 약탈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이들 중에 중세 시절에 지중해에서 활동하던 사략해적은 코르세어(영어 Corsair)라 불리었고, 근세 들어서 활동한 사략해적들은 Privateer라 불리었다. 또한 카리브해를 거점으로 하여 활동하던 사략해적들은 버커니어(Buccaneer)라 칭하기도 했다.

이들은 사략질을 통해 번 수익의 일정량을 국가에 상납해야 했으며 전쟁시 참전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특허장을 발부한 국가의 상선과 중립국 상선을 공격할 수는 없었으나 간혹 한도를 넘는 약탈을 하여 중립국과의 분쟁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특허기간이 만료된 후와 적국의 선박을 만나지 못했을 경우에는 일반 상선으로서 운용되었다.  

동인도 회사 소속의 선박 켄트와 프랑스 사략선 콩피앙스의 전투


이런 사략선의 전통과 원래부터 거칠고 위험한 대양 항해의 특성상 민간선박에서도 군대와 같은 위계와 규율이 강조되는 계급체계가 적용되었다.  

사략선의 전통과 국가 사법기관의 영향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환경, 그리고 선박의 항해를 담당하는 사관이 되기 위해서는 고등교육을 받아야 했으며,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귀족과 상공업에 종사하는 브르조아 계급이었기에 이들은 군대의 장교와 같은 계급을 부여받고, 전문지식과 leadership을 갖춘 엘리트였다.

그리고 본인의 다른 글에서 나오지만 근대의 장교는 말을 타고 다니는 기병과 유사한 복장을 갖추었다. 그 복장은 목의 경동맥을 보호하기 위한 두꺼운 collar(카라)와 어깨를 보호하기 위한 견장이 달린, 셔츠와 그 바깥에 입는 sack/flock coat로 구성이 되고, 머리에는 비바람을 막아주고, 장교의 신분과 소속을 나타내는 (중세 기사의 투구가 변형이 된) 모자를 착용하게 된다. 넥타이는 카라를 단단히 여며주던 끈의 매듭이 발전한 것이고, 현대 양복과 셔츠의 카라는 목을 보호하던 collar을 프러시아의 장군이 답답해서 펼쳐서 접었던 것에서 유래한다.

마찬가지로 모자에 있어서 기사가 투구를 쓰고 상대방으로부터 눈을 가리면 상대방은 위압감을 느끼듯이 비바람을 막아주기 위해 모자에 붙인 챙은 내려써서 상대방으로부터 눈을 가리면 상대방에게 위압감을 주게 된다.

동시에 눈을 가린 모자 챙으로 인해 모자를 쓴 사람은 상대방을 쳐다보기 위해서는 살짝 턱을 쳐들어야 하고 이 모습은 상대방에게 모자 착용자의 거만함과 위에서 아래로 내려보는 위압감을 더 한번 느끼게 한다.

여담으로 이러한 모자의 디자인과 착용법에도 이데올로기가 들어간다. 계급과 자본주의가 기본이 된 서방국가들의 군인/경찰/사법집행관들은 공식행사에서 모자를 눌러써서 챙이 눈을 가리게 하여 위압감을 주는 반면, 러시아/중국/북한 등의 사회주의 국가 군인/경찰/사법집행관들은 평평한 챙이 달린 빵이 큰 정모를 추켜써서 눈이 훤히 보이게 한다. 사회주의 프로레탈리아 계급의 사회에서 사회계급은 단 하나, 당신과 나는 동지라는 의미이다.


 모자를 눌러쓰는 영국 왕실 근위대 기병(Dragoon)들


정모를 올려 써서 눈이 훤히 보이게 하는 중국인민해방군 공군 의장대


 

정모는 사관의 상징이자, 지휘권을 가진 commanding officer의 상징이자, 정부로부터 사법집행권을 위임받은 authority의 상징이다.

민항 조종사에게 유니폼은 승무원임을 나타내는 상징이고, 정모는 기내에서 지휘권과 사법집행권을 행사하는 authority의 상징이다.

승객들이 보기에는 그닥 차이가 나지 않는 유니폼과 흉장 견장을 착용하는 남자 객실 승무원들이 정모를 착용하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들은 비행이라는 임무와 기능에서 사관으로서의 전문성과 commanding authority가 부여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행이라는 임무 중에는 그들은 NCO(부사관) 갑판장/사무장과 수병(sailor)와 동일한 임무를 수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승무원들과 승객들은 기장/부기장이 단정한 제복을 입고 단정하게 정모를 착용했을 때 그 사람의 권위와 함께 신뢰감과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제복을 단정하게 입지 않거나 더럽거나 구겨진 상태로 입고 정모를 함부로 쓰거나 탈모하고 다닌다면 그런 기장/부기장에게 승무원들과 승객들은 권위도 신뢰감도 안정감도 느끼지 못하고, 그들의 지휘(command)에 협조적으로 따르지 않게 된다.


그리고 항공안전법에는 재난 상황에서 기장/선장은 승객의 안전과 잔류 인원 여부를 확인 후 최후로 탈출하게 끔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규정은 1852년부터 관습적으로 내려오다가 명문화된 규정이다. 


1852년 1월, 영국 해군 수송함 버큰헤드호(HMS Birkenhead)는 영국 보병 2연대와 74연대를 태우고 선장 로버트 새먼드의 지휘 아래 마지막 항해를 시작했다. 버큰헤드호의 임무는 알고아 만으로 병사들을 수송하는 것이었다. 2월 23일에는 케이프 타운 근처의 사이먼스 타운에 정박해 말과 건초, 석탄을 보급받았다. 침몰 하루 전인 2월 25일, 버큰헤드호에는 승조원과 군인, 그들의 가족들을 합쳐 총 643명의 남녀가 탑승해 있었다.  

1852년 2월 26일 오전 2시경, 버큰헤드호는 데인저 곶 부근에서 수면 아래 2미터 가량까지 솟아오른 암초와 충돌했다.  2차 충돌 이후 10여분 뒤 뱃머리가 부서지며 밑바닥 앞부분과 기관실이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100명에 가까운 수병이 익사했다. 충돌한 지 20분만에 배는 완전히 부서졌다. 몇몇 병사들은 해안까지 2.3km를 헤엄쳐 가 살아남았다. 또 몇몇 병사들은 난파선 조각에 매달려 하루를 버틴 끝에 지나가던 범선 '라이오네스'의 구조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병사들은 익사하거나 상어떼에게 죽임을 당했다.


살아남은 수병들은 갑판 위에 집합해 명령을 기다렸다. 버큰헤드호의 구명정은 단 5척뿐이었다. 그나저도 한 척은 물에 잠겼고 다른 한 척은 정비 불량으로 고장이 난 상태였기에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구명정은 3척이 전부로 180명만 탑승할 수 있었다. 이 수역은 상어떼가 우글거리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고 유일한 육지인 암초는 독성을 가진 해초가 빽빽하게 자라나 있었기 때문에 구명정에 오르지 못한다면 죽음은 곧 확정이었다.
새먼드 선장은 새튼 중령에게 여자와 어린이들을 먼저 구명정으로 보내도록 지시했다. 그런 다음, 병사들 전부를 갑판 위에 부동자세로 서 있게 했다. 침몰 이후에도 구명정을 향해 헤엄치지 못하게 했는데, 병사들이 앞다투어 구명정으로 뛰어든다면 구명정에 오른 사람들의 목숨까지 위험해지기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는 사고 7년 이후 스코틀랜드 작가 새뮤얼 스마일즈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으며, 오늘날까지 해난사고시 약자를 먼저 구조한다는 원칙으로 자리잡았다.

버큰헤드호의 침몰

이런 희생정신은 1912년 4월, 북대서양에서 빙산과 충돌한 타이타닉호 침몰 때 큰 역할을 했다. 2224명이 탑승했던 타이타닉 호의 스미스 선장은 먼저 여성과 어린이들을 구조한 뒤에 남성 승객들을 구조하고, 그 후에 승무원들이 탈출하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 여성과 어린이 중심의 생존자 710명을 제외한 1,514명이 사망했고, 스미스 선장은 선교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그뿐만 아니라 타이타닉 호의 상급 사관들 대부분이 살고자 하는 본능을 억누르고 그들의 임무를 최후까지 수행했다.

타이타닉 호의 웨드워드 존 스미스 선장(오른쪽 첫번째)과 사관들  


윌리엄 맥마스터 머독. 타이타닉호의 1등항해사.

보트를 타는 것을 거부하고 배에 남아 끝까지 승객들을 구조하고 자신은 물에 빠져 저체온증으로 얼어 죽고 만다. 그가 졸업한 학교에서는 그를 기리기 위해 공덕비가 세워졌고 고향에서는 영웅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우왕좌왕 하는 승객들을 제지하기 위해 총을 발사하다 잭과 파브리지오의 친구인 토미를 죽이게 되어 그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걸로 나온다. 이것 때문에 영화사는 그의 유족들과 그가 졸업했던 학교에 손해배상을 해야했다.  


찰스 라이톨러. 타이타닉호의 2등 항해사

허둥지둥하는 승객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총을 겨누며 정리한다.

선장의 명령을 받고 여자와 아이들부터 태우게 주도한 인물이기도 한다. 나중에 배를 타고 생존한다.

그후 1차 세계대전에 참전 하여 유보트를 격침 시키고 2차 세계대전에서 덩케르크에서 130명을 구조한다.


 

로우 헤럴드 고드프리

타이타닉호의 5등 항해사였던 인물로 유일하게 조를 짜서 생존자들을 찾으러 갔다.

나중에 로즈가 이 보트를 타고 생존한다.


제임스 무디

타이타닉호의 6등 항해사로 당시 승무원들중엔 최연소 항해사 였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승객들의 탈출을 돕다가 사망했다.


헨리 와일드

선임항해사였던 인물로 승객들을 구하고 본인은 사망했다.

로버트 허친스

타이타닉의 조타수였던 인물

전방에 빙산이 있다는 보고를 받고 우현 전타를 명령 받았지만 갑작 스러운 상황에 당황해서 키를 반대로 돌렸다고 한다. 금방 다시 돌렸지만 결과는 이미 늦었고 보트를 타고 생존했지만 생존자를 찾으러 가자는 몰리 브라운의 제안을 거절한다. 빙산 충돌의 원인이 이 사람에게도 조금은 있지만 애초에 감시원들도 너무 어두컴컴하여 전방을 제대로 확인도 못했던 상태였다.   


반면, 우리나라는 세월호라는 매우 부끄러운 재난사고 기록이 있다. 2014년 4월 16일 인천 - 제주간 페리여객선인 "세월호"가 전라남도 진도 맹골 수도 상에서 복원력을 잃고 전복 침몰되었다. 당시 선장이었던 이준석은 선장 제복을 안 입고 있었다. 그는 평상복 상의에 사각팬티 차림이었다. 그 순간 그는 제복뿐만 아니라 승객 450여명의 목숨을 걸머진 선장으로서 책임감도 함께 벗어던진 모습이었다.




어떤 학자들은 만약 당시 그가 선장들이 입는 제복을 입고 있었다면 승객들을 버리고 먼저 탈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지적을 한다. 구조에 나선 해경이 그가 선장임을 알아보고 "배로 다시 돌아가 승객들을 구조하라"고 지시했을 것 아니냐는 가정이다. 일부 승무원은 그 점이 두려웠는지 실제로 세월호에서 탈출하기 직전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고 합동수사본부 관계자들이 전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해경을 피하고 말고가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박성현 목포해양대 교수는 "중요한 것은 제복을 입었을 때의 마음가짐은 사복을 입었을 때와 다르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세월호 선장이나 선원이 유니폼을 제대로 갖춰 입고 있었더라면 승객들이 보는 앞에서 떳떳하게 배를 버리고 떠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니폼을 입는다는 것은 선장의 막중한 책무를 각인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 박 교수의 설명이다.(당시는 연안 여객선 선원은 제복을 입도록 강제되지 않았지만 사고 이후 반드시 유니폼을 입도록 법제화되었다.)


그것이 이 글의 처음에서 말한 제복의 효과 중 하나이다.

재난 상황에서도 살고자 하는 본능을 억누르고 마지막까지 부여된 임무를 다하게 하는 힘.

그 힘은 평소부터 프로페셔널리즘으로서 길러지기도 하지만 제복에 의해서 강제되기도 한다.  


세계 어느나라나 제복을 입고 근무하는 사람들이 있다.

군인, 경찰, 소방관, 교도관, 조종사, 비행기나 배, 기차의 승무원 등등 제복의 의미는 그 사람에게 주어진 권위(autority)와 함께 그 제복의 값을 하라는 의미가 부여된다.

제복을 입으면 대부분에 사람은 남을 의식하게 되고 자신 스스로도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게 된다.

911테러 당시 소방관들은 붕괴 직전의 세계무역센타 건물에 모든 사람들이 대피하고 있는 과정에도 꺼꾸로 그 건물속으로 들어갔다. 그 것이 바로 소방관 제복을 입은 그들의 사명과 책임 때문이기도 했다.


민항 조종사들은 급여를 받고 노동을 제공하는 노동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국가로부터 사법권을 위임받고 청원경찰로서 근무하는 commanding officer이기도 하다.

제복을 입고 출근을 하는 순간부터 익명의 민간인 A가 아니라 대한항공/아시아나 항공이라는 항공사에서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비행기를 지휘하는 officer가 되는 것이다.


때로는 귀찮고 때로는 거추장스러운 제복에는 국가와 군대 또는 회사가 조종사에게 부여한 권한과 책임과 leadership이 녹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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