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꿈이었던 공군사관학교 입학을 위해 노력하던 1986년 고3 여름 옆집 소꿉친구 오빠가 "자기 친구가 공군사관학교 3학년이니 만나게 해주랴?"라고 이야기해줬다. 기쁜 마음에 만나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그 선배님은 공군사관학교에 대한 꿈과 희망에 부푼 학생에게 "사관학교가 너가 생각하는 것같은 그런 곳만은 아니야... 다른 곳도 좋은 학교 많아..."라는 그 당시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을 남기고 떠나셨다.
Anyway, 나는 사관학교 정식 입교 전에 4주간 실시되는 가입교훈련에 대해서 그 세부적인 커리큘럼을 다 알게 되었다.
가입교 첫날은 어떻게 부모님과 헤어지고 뭘 하는지? 그날밤부터는 무슨 푸닥거리가 있는지? 가입교 훈련 지도는 누가 하고, 몇학년이고, 내무지도생도와 훈련지도생도가 따로 있다는 것. 그들이 자신들을 뭐라고 속이고 다니는지? 낮에는 어떤 훈련과 교육을 받고, 밤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첫째주, 둘째주, 셋째주, 마지막 주에는 어떤 훈련을 받고, 각 주말 토요일 밤에는 무슨 이벤트가 있고, 일요일에는 무엇을 하는지, 가입교 훈련의 피날레는 무엇인지 등을 다 들었다.
이제와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선배님 생각에 그 당시 비짝 마르고 머리만 큰 허여멀건한 녀석이 사관학교에 합격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시시콜콜 다 알려주셨던 것 같다.
하여간 나는 그런 세부사항을 다 알았기에, 공사 최종합격자 발표가 난 다음날 아침부터 가입교 내내 이루어질 선착순 달리기와 마지막 10km 완전군장 구보에 대비해서 속초시내를 도는 아침 달리기를 시작했다.(처음에는 2km 정도 뛰던 놈이 점점 늘어서 중앙시장 - 공설운동장 - 영랑호 다리 - 부둣가 - 시청 - 중앙시장까지 얼추 5km 이상 매일 뛴 것 같다.)
공군 군가도 가능한한 많이 외우고 들어가는 건 기본.
1987년 2월 2일 가입교 첫날 공사상징탑 앞부터 좌우로 도열해 우리를 열렬한 박수와 환호로 맞이해 주는 선배님들 사이로 지나갈 때 군기가 바짝들어 허리를 세우고 정면만 쳐다보며 걸어가는 나와 달리, 어슬렁걸으며 웃으면서 손을 같이 흔들면서 "반갑습니다아아~"를 외치는 친구들을 볼 때 오늘 밤 닥칠 푸닥거리가 생각나 마음만 무거워지고 나도 모를 한숨이 났다.
매일매일의 훈련과 교육, 얼차려가 끝나고 잠이 드는 그 순간, "내일은 무슨 일이 벌어질까?"라면서 바로 코고는 동기들과 달리 나는 "오늘 완전 죽을 거 같이 힘들었는데, 내일은 오늘보다 더 힘들텐데 어떻게 잘 할 수 있을까?"를 걱정하다가 잠이 들고는 했다.
그리고 4주동안 소소하게 우리를 찾아오는 깜짝행복들마저 남들만큼 기쁘지 않았다. 밤에 우리를 얼차려로 마구 굴리고 침대 담요 밑에 선배들이 몰래 숨겨둔 맘모스 빵과 쿨피스도 다른 동기들만큼 기쁘지 않았고, 떡파티도 그랬고, 사관학교 뒷산 성무봉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야간 등반동안 나타나는 처녀귀신 선배들을 봐도 심드렁했다. 이미 알고 있기에 기분이 좋기는 해도 남들같은 갑작스런 행복이 아니었으니까!
결론은 이거다.
바꿀 수 없는 미래를 알 수 있는 능력은 행복만은 아니다. 어쩌면 보기에 따라서는 저주일 수도 있다. 미래를 알아도 바꿀 수 없다면, 내가 준비하건 안하건 그 미래는 나에게 오기 마련이다. 사람에 따라 미리 준비해서 그 충격을 경감시킬 수는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미래에 대한 스트레스와 걱정, 그리고 미리 아는 좋은 일들은 좋지가 않다.
그리고 말이다. 미래를 알고 미래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뭐하겠는가? 미래를 내 의지로 바꾸는 순간 그 다음에 펼쳐질 일은 미래를 알 수 있는 능력을 다시 사용하기 전에는 내가 알 수 없는 또다른 미지의 세계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