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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폐인작가 Sep 11. 2023

[매니저와 꼰대 사이] 착각

사람을 잘 알아본다는 착각.


“안... 녕하세요...”
수줍게 첫 인사하는 신입을 에이치라 부르겠다. 나는 에이치를 보자마자 성격을 단정 짓는 데 일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테이크아웃 전문으로 하는 작은 프랜차이즈 카페는 회전율이 빨라서 우선적으로 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1년 동안 한자리를 책임지고 성실히 일한다는 게 얼마나 힘에 부치는 일인지 알고 있었기에 걱정이 앞섰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에이치는 뭔가 배울 때마다 표정은 경직되고 이마에 식은땀부터 흘렸다. 예를 들면, 포스기 작동법에서 모르는 부분이 생길 때, 음료 제조 방법 익힐 때, 목청 큰 중년 손님들을 상대할 때, 청소하는 법 등 에이치는 일하다가도 모르는 부분이 생기면 입을 다물고 눈을 굴렸다.

이대로 가면 곧 금방 두지 않을까?

일을 시작한 후 몇 달이 지나도 나에게 적극적으로 근무 관련 불평불만을 털어놓지 않는 것에 답답함을 느꼈다. 근무시간에 차질이 생겨도 자신의 일을 털어놓지 않았다. 이에 대한 나의 오해의 깊이는 1년 동안 높이 쌓여 거대한 벽을 이뤘다.

내 마음에 쌓인 그 벽이 에이치가 가진 강한 내면을 알아보는데 실패하게 만들었다.

에이치는 예상을 깨고, 약속한 1년 근무기간을 빠지는 날 없이 빼곡히 채웠다. 에이치는 뭐든 배우는 게 느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에이치는 어느 정도 일이 손에 익자 신메뉴가 나오면 누구보다 빨리 레시피를 익혔고, '진상 손님’의 무례함도 묵묵히 견뎌냈으며, 자신의 실수로 문제가 생기면 끝까지 책임졌다.


에이치가 퇴사하고 나서야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나는 오만과 편견 덩어리였다. 일도 오래 했고 나이도 상대보다 많아서 항상 사람을 잘 알아본다고 착각했다. 돌이켜보니, 소극적으로 보였던 에이치의 행동은 누군가에게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 조심스러움과 배려였다.


매니저로서 가게 운영에 대한 책임감 가지는 것과 아르바이트생 들의 개개인을 최대한 이해하고 존중해 줘야 하는 것. 이 사이에서 몇 년째 이어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이 줄타기가 한 번씩 버겁다는 핑계로 사람을 하나로 규정지어 그 규정으로만 대했다. 정말 부끄러웠다. 에이치가 자신의 자리를 끝까지 책임지고 떠난 성숙함이 지금도 내겐 고마움과 미안함으로 남았다.



한 달 후, 새로운 에이치들이 들어왔다.


이번에도 매니저로서 근무자들에 대해 편협하게 판단하고 오해하는 부분은 없는지, 그때의 경험을 통해 배운 걸 계속 적용하려 애쓰는 중이다.


새로 들어온 에이치들은 mbti가 E든 I든 상관없이 근무시간 외 매장 관련 엄청 급한 일이 아닌 이상 연락하는 걸 꺼려한다. 이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관리자나 사장님들이 불편해한다.  심지어 어떤 분들은   ‘싸가지 없다’ 라고 언급한다.


하지만 겪어본 바, 그 싸가지없는 에이치들은 근무시간 동안에 같이 있으면 소통하려 애쓰며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책임지고 있다. 오히려 시키지도 않은 일을 더 하다 다쳐서 내가 놀랄 때가 있다.

나도 한 번씩 관리자로서 ‘요즘 애들은’ 하며 꼰대스러움이 불쑥 올라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생각한다. 나도 누군가에게 싸가지없는 에이치일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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