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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폐인작가 Sep 13. 2023

[매니저와 꼰대 사이] 고인물 (상)

한곳에 고이면 썩는 게 아니라 불편해진다.



'네가 불편해.'


처음엔 모든 것이 좋았다.

카페를 여는 게 처음인 사장, 오픈 멤버로 뽑힌 나 그리고 다른 근무자들. 처음이란 명목 아래 모든 걸 ‘그저 좋게 좋게’ 대했다. 사장님과 우리는 ‘한 팀’ 이었다. 결속력 강한 팀답게 열정적이고 화기애애했으며 조심스러웠다.

그러다 어느 일정 기간이 지나자 서로에게 거슬리는 ‘선’ 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관계의 친밀도는 제각기 다른 깊이를 냈다. 근무자들인 우리는 서로에 대한 기대가 높아질수록 그만큼 실망했고, 사장이 나타나면 눈을 내리깔고 입을 닫았다.

카페 일은 복잡하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단순하다.

3개월 차: 매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에 들어온다

1년 차 :기본적인 일에 능숙해져 있기 때문에 신입들을 가르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어느 정도 생긴다.

2년 차: ‘나 정도면 이 정도쯤이야… 해도 되겠지?’


이때부터 상사와의 갈등이 시작된다.




오픈 멤버인 땅콩은 작고 귀여운 외모와 달리 빠른 손과 야무진 성격의 반전 매력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우리는 서로 친했지만 각자 위치가 달랐기에 보이지 않는 선은 자연스레 생겼다. 우리는 각자 맡은 선안의 공간을 지키며 묵묵히 할 일을 다했다. 하지만 내가 그어놓은 선을 땅콩이 넘어오면서 나와 땅콩 사이에 균열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정산하기 위해 카페에 들렀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익숙한 매장 안이 낯설었다. 천천히 매장 안을 둘러봤다. 물류의 위치가 바뀌어있었고 새 프린터물이 곳곳에 붙어있었다. 가게 내부에 내가 써 붙인 종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매장 안을 둘러보는 사이 땅콩이 출근했다. ​


"이게 다 뭐야?"

"아. 제가 인쇄해서 다 바꿨어요."​


나는 입을 다물고 땅콩을 쳐다봤다.


‘얼마나 지저분해 보였으면...’ ​


나는 애써 웃음 지었다.

“와-. 어떻게 이걸 다 할 생각했어?”

“헤헤, 아녜요. 어려운 것도 아닌걸요.”

“진짜 고마워. 선물 받은 것 같아!”

“감사합니다.”

나는 이상하게 날뛰는 감정을 숨기느라 애먹었다. 쑥스러워 하는 땅콩을 나는 진심으로 칭찬했다.

하지만 이상한 감정은 낯설지 않았다.

왜일까. 더 있기가 힘들어 서둘러 가게를 나왔다.


나는 땅콩이 불편했다.



이런 불편함을 느끼는 내가 불쾌했다. 자신의 일을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땅콩이 왜 나는 불편할까.

심지어 가게에 도움이 되고자 한 땅콩 선의가 짜증 났다. 나는 매니저로서 땅콩의 선한 노력과 도움을 모른 척 넘길 수 없었기에 사장님께 보고했다. 예상대로, 사장님은 그 누구보다 좋아했고 소정의 사례도 했다.

​​

그날 이후, 나는 땅콩 보기가 껄끄러웠다.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려고 땅콩이 근무하는 시간 외에 매장을 방문했다. 갑자기 피하는 나의 행동에 땅콩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어쩌다 마주칠 때면 날 대할 때 경직된 표정으로 인사했다.


얼굴을 보지 않으니 소통은 현저히 적어지고 오해는풀리지 않은 채 시간은 흘러갔다. 묘한 불편함은 다른 근무자들 사이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화기애애했던 매장 안은 이상한 적막만 남았다.



‘아, 그때처럼 또.’

원인을 알기 위해 계속 생각했다. 마침내 답을 찾았다. 낯설지만 익숙한 감정. 그 이름은 하극상이다.

몇 년 전, 다른 카페에서 내가 아르바이트 생일 때도 다른 근무자와 이와 비슷한 문제로 힘들었다. 서로 다른 근무방식과 막혀버린 의사소통. 그때 나는 후배에게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모든 상황을 왜곡해 받아들였다.


하루하루 견디기가 너무 괴로워 내가 선택한 방법 은 회피였다. 사장님께 말해서 서로 최대한 마주치지 않게 근무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결국 한 명씩 카페를 순차적으로 관뒀다. 도망치기로 한 것이다.

서로 대화로 마음을 풀어갈 새도 없이 갈등은 끝났다.​


그때도 불편했고, 지금도 불편하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누군가 대신해서 싫었다.

내가 적은 것들을 상의 없이 없앤 게 불쾌했다.

그리고 관리자로서 내 수준이 지적당한 것 같았다.

하지만 다시 되풀이되는 상황은 나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렸다. 사회에서 만난 사이는 생각보다 나이가 장벽이 된다. 거기다 알량한 계급장까지 달면 친해지고 싶어도 넘을 수 없는 어려움이 생긴다.

보통 아르바이트생들은 마음이 상하거나 불만이 생겨도 상사에게 문제가 될만한 건 먼저 입 밖에 꺼내는 일이 없다.

이럴 때 눈치 빠른 상사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가야 한다. 이걸 확실한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생각보다 근무자들은 상사의 눈치를 살피며 하고 싶은 말을 다듬고 또 다듬는다.

혼날까 봐. 불이익 당할까 봐. 싸울까 봐.

나는 그때처럼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폰에 저장된 땅콩의 번호를 꾹 눌렀다. 신호음이 가는 동안 땀나는 두 손을 바짓단에 번갈아 닦으며 목청을 가다듬었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까.



​​

전화 한 통으로 진심은 전달되었다. 서로 엉킨 감정들이 실타래 풀 듯 풀렸다. 땅콩도 자신의 행동이 상사에게 불쾌함을 줄 수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그렇기에 먼저 내게 다가올 수 없었다. ​


이후 우리는 더 잘 지냈다. 땅콩은 선을 지키면서도 근무 중 불편한 점이 있으면 두 발 벗고 나서서 효율적으로 바꿨다. 나는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리고 덕분에 매장관리가 훨씬 수월했다. (땅콩은 현재 퇴사했지만 서로 안부도 물으며 잘 지내고 있다.)

우리는 감정이 앞선 나머지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한다. 특히 상사 위치에 있는 사람일수록 이성적인 판단과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을 자주 맞이하게 된다. 이럴 때 일 수록 마음 중심잡기는 필수다.

근무자들이 일터에 뭔가 도움이 되고자 행동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윗 사람이 어떤 이상한 의도로 해석하는 순간 불편함은 시작된다.

사회에서 만난 관계는 불편함이 기본값이다.

그렇기에 서로에게 더 무 기대하거나 실망하지 말자. 우리는 서로 각자 다른 곳에서 태어나고 자라 같은 목적을 위해 한곳에 모였다. 서로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수용하면 관계는 편안해진다.



근무자로서 근무 중 불편함이 있으면

사장에게 ‘통보’ 가 아니라 '제안' 하는 게 좋다.

(요즘 생각보다 통보하는 사람들이 많아 곤란하다.)

사장님들마다 성격이 달라 어떻다 말은 할 수 없지만 (내가 여러 사장님들을 겪어본 바로는) 말없이 하는 것보다 말하고 하는 게 좋았다. ​


최대한 부드러운 말투를 사용하자.

예시: ~괜찮나요? 괜찮을까요?/ ~해도 될까요?/ ~어떤가요?/~필요해요.(남은 재고 수도 정확히 말하는 센스.)

그리고 무엇보다 거짓말은 하지 말자.

하지만 아르바이트생 입장에서 거짓말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그렇다면, 해도 그럴 듯 한걸로하자.

최대한 신빙성 있는 걸로 하면 된다.

그렇게 매니저로서 근무자들과 잘 지내던 중,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네가 불편해.’

또 다른 감정 난관에 부딪혔다.

그 일을 생각하며

나는 오늘도 근무 중에 글을 다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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