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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폐인작가 Apr 14. 2024

[카페매니저 '을'의 푸념] 마감 손님의 특이점


맑은 밤하늘,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열대야. 손님들은 느적느적 집밖으로 나온다. 길을 걷다 문득, 커피 마실까? 오늘은 달달한 거 마시고 싶네. 가는 길에 사갈까?


마감 손님들은 굉장히 여유롭다.


불이 환히 켜진 카페 앞에서 메뉴를 읽으며 마실걸 정하는 손님들. 차가운 음료를 손에 쥔 손님들은 남은 산책길이 좀 더 즐거워진다. 손님들이 여가시간을 즐기는 만큼 카페 직원들도 그만큼 바빠진다. 마감 청소를 해야 한다는 압박아래 음료도 동시에 만든다.


아홉 시가 영업종료라면, 그전에 들어와 아홉 시까지 앉아 있는 손님은 당연하다. 그러나 가게 영업 종료 일 ~이분 전에 오는 손님들은  우리 입장에선 조금 벅찰 때가 있다.


손님들이 영업종료 시간 직전에 올 수록 근무자인 우리는 늦게 퇴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설거지와 청소 그리고 음료 제조 이 삼박자를 동시에 하는 폭풍이 몰아치는 경험을 한다. 아무리 잘해도 내 몸은 두 개가 아니니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어, 눈물을 머금고 퇴근 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입맛과 위장으로 인해  전등이 하나 둘 꺼져가는 카페로 돌진하는 손님들을 나는 이해 한다. 나도 그렇기 때문에.


문 닫았어요!?


우다다다 뛰어오는 소리와 함께 숨 고르며 도착한 손님을 나는 차마 돌려보낼 수 없었다. 오픈때와 마찬가지로 여기까지 발걸음 해준 분을 돌려보내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


이렇게 달려온 건 역시,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던가 차가운 아메리카노라던가 얼음이 담긴…


“다섯 잔 시킬 건데요! 딸기 프라페  두 잔인데 하나는 휘핑 빼주시고요. 아이스 라떼 하나. 그리고 음…”


나는 씻어놓은 믹서기를 다시 꺼내고, 냉장고에 집어넣었던 우유 휘핑기를 다시 바 위에 올리고 탄산수를 창고에서 가져온다. 거의 끝낸 설거지는 조금 더 늘어난 상태로 원상 복구된다.


그나마 내가 이 일에 익숙해 주문한 걸 다 만들어 주는데 십 분 남짓 걸렸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직원은 다섯 잔을 보내고 설거지를 마치는데 장장 오십 분이 걸렸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듣는데 뭐라 할 말이...내가 할 수 있는 건 위로와 함께 마감 순서와 설거지 요령을 알려주는 게 전부였다.)  

   

마지막의 마지막인 손님을 보내고 매장에 필요한 불만 남기고 전등을 전부 껐다. 아, 이제 설거지와 주방바 위만 신속하고 빠르게 정리하면 된다.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 오롯이 나만 있는 마감시간. 마치는 시간이 조금 늦어지긴 했지만, 이 정도인 게 어디냐.


잘 못 하다간 공포물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똑똑


잘 못 들었나?


창문 쪽을 쳐다보았으나 가게 창문 앞엔 어둠만 있을 뿐 어떤 형체도 없었다. 다시 고갤 숙이고 설거지 한걸 정리하고 씻은 행주를 말릴려는데,


“커어.. 피 ㄷ… 요?”


헙. 어두운 홀 가운데서 술냄새가 훅! 하고 풍겼다. 몸을 앞뒤로 조금씩 흔드는 중년 남자가 서있었다. 딱 봐도 카페 근처 술집에서 거하게 한 잔 하고 지나가다 들린 모양이었다.


언제 들어왔지? 이상하다 분명, 문 여는 소리 못 들었는데. 공포영화에서 갑자기 귀신을 마주치는 게 이런 걸까. 내 등위로 닭살이 돋았고 긴장해서 인지 목은 뻣뻣해졌다.


중년 남자는 카드 지갑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어눌한 발음으로 아이스 달달한 거 한 잔 달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때 ‘지금부터 나는 로봇인 거야.'라고 생각했다. 표정은 무표정하게 톤은 낮은 톤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카페 안 까지 들어와 주문하려는 취객은 경험상 대화가 가능한 이들이 많았기에, 경찰 신고는 최후의 보루다.)


“죄송하지만, 저희가 마감을 해서. 문을. 닫아야 합니다.”


“... 잉? 스무디도 아, 안 되나…?”


“네, 손님. 끝났습니다. 가게 문을 잠가야 해서요.

 다음 날 방문 부탁드릴게요.”


죄송합니다. 나는 눈썹을 최대한 팔자로 그리며 손을 공손히 모아 문 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취객은 언짢아하면서도 별말 없이 돌아갔다. (간혹 가다, 아이고! 내가 미안하게 됐어요~!라고 정말 자식 대하듯 사과하는 중년 취객들도 있다.)


필요하다면 팔을 들어 X표시를 확실히 해도 좋다. 하지만 여럿이 밀고 들어오면 그것만큼 막기에 역부족인 게 없다. 어떤 손님들은 굳게 잠긴 창문을 부술 듯 흔들고, 영업시간 십 분 후에 전화하고, 전화해서 왜 지금 문 닫냐고 화낸다.  


이럴 때면 마감할 때 혼자든 둘이든 셋이든 손님을 대하기가 영 힘들어, ‘매니저님 저 그만두고 싶어요. 진짜. 엉엉.’ ‘ 나, 카페일을 그나마 괜찮다고 생각해서 들어왔는데. 흐어어.’


직원들의 우는 소리를 여름과 가을이 다 지나갈 때까지 몇 번 듣는다. 그래서 교육할 때 가장 힘든 게 바로 마감교육이다. 다른 시간대보다 동시에 처리해야 할 것이 체감상 세 배는 많은 것 같다.

음료 제조하랴, 손님 응대하랴, 청소하랴, 기구 씻으랴.. 라.. 라… 그렇게 버티다 보면 이제 좀 쉬나? 하다가 또 다른 지옥명절을 맞이하지만 하하.


찬 공기가 팡팡 터지는 에어컨 밑에서 일을 해도 땀이 멈추지 않는 카페 일을 선택한 이상 응당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지, 그럼. 겸허히 받아들여야지… 어쩌겠는가.  그런 시답잖은 꼰대스런 마음이 들면서도,

지금 이 밤중 어딘가 나처럼 공포물을 찍고 있을 카페 근무자들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


카페 직원들이 오늘 하루도 별 탈 없이 퇴근했길.




(끝으로 마감 시 주의할 점을 간단히 말하자면.)

*프랜차이즈 카페 기준입니다.


-마감 30분~40분 전, 식기류 행주 등 마지막까지 쓸 것은 필요한 두세 개만 남기고 꼭 미리! 다 씻기

- 음식물 쓰레기, 분리배출 등 버릴 거 미리 다 묶어 놓기

-영업 종료 3분 전 매장 내 음악 끄기 (이건 사장님 재량에 따라가면 된다. 나 같은 경우는 십분 전이나 십 오 분 전에 끄고 일하면 자연스레 손님들이 마감이라는 걸 안다.)

-‘저희 매장 00시가 마감인데 괜찮으세요?’ 혹은 ‘드시고 가세요? 홀 이용하시는 거면 지금 삼 십분 정도 남았는데 괜찮으실까요?” 등 손님에게 안내 멘트 날리는 거 어려워하지 말기.

(이거 은근 안내하는 거 어려워하는 직원들 있다. 손님 불만에 면역이 없어서인데, 이럴 때일수록 당당한 태도로 말하는 게 중요하다. 왜냐면 나는 여기에 고용된 근로 자니까!)

-필요한 전등 빼고 다 끄기.

-영업 끝나는 시간 되자마자 매장문과 창문 꼭 잠그고 마무리하기. (특히 다른 파트너 없이 혼자 일 할 때 조심 또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영업시간이 끝난 후 전화받지 말기.

-나갈 때 창문, 뒷문 잘 잠겼는지 확인, 화장실 안 쓰레기와 전등확인.

그리고 제일 중요한 에어컨, 제빙기 전원 껐는지 확인하기! (이거 전기세 많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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